아동 성폭력 피해자 아버지의 절규

“누가 보면 우리 큰 딸은 그저 착하고 얌전하게만 보여요. 속으로 혼자 아픔을 삭이느라 그런 것인 줄도 모르고…”

올해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큰 딸은 유난히 말수가 적다. 워낙 내성적이라 그러려니 했더니 언제부터인가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는 심한 탈모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아이의 머리맡 베개와 이불에는 긴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쌓였다. 하도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다보니 이젠 아예 두피가 허옇게 다 들여다 보일 정도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쾌활한 작은 딸마저 원인 모를 코피를 수시로 쏟아내는 증세가 나타났다. 아침이면 휴지로 코를 틀어 막느라 난리통이다. 겨우 열다섯, 열네 살인 꽃같은 나이의 아이들에게 왜 이런 고통이 생겨난 걸까.

A씨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TV에 나오는 성폭행 장면을 보면서 작은 딸이 “나도 저렇게 당했는데” 하고 우발적으로 내뱉은 말이 단서가 됐다.

순간 A씨는 귀를 의심했다. ‘그럴 리 없겠지’ 하며 재차 되물었지만 아이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으려 했다.

“눈물을 흘리며 설득했습니다. 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소리 높여 외치는 것도 다 그런 나쁜 놈을 벌하기 위해서라고 매달렸어요. 너희들이 얘기를 안 하면 우리가 더 불행해진다고 애원했죠.”

행여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 A씨는 큰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애써 웃음 지으며 아이들과 공기놀이도 하고 장난도 쳤다. 그러고도 사건의 실체를 알기까지는 한 달이 더 걸렸다.

각오했지만, 상처는 훨씬 더 깊고, 심각했다. 아이들이 예닐곱 살이던 지난 1998년 무렵, 세들어 살던 집주인에게 두 딸이 수 차례 성폭력을 당해왔던 것이었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 모두. 기가 막혔습니다.” 아버지는 피눈물을 쏟으며 다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들을 짓밟은 자에게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아이 두 번 죽이는 경찰수사

성폭력 상담소에 문의한 끝에 올해 1월 중순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조사는 ‘고문’과 다름없었다. “너 몇 번 했니”, “몇 시에 했니”, “어떻게 했니” … 어린 애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잔인하고 집요했다.

“3년 동안 그 집에서 살았는데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악몽같은 그 순간들을 애들이 어떻게 육하원칙에 맞춰 또박또박 얘기하겠습니까.

그건 아이들을 이리 죽이고, 또 저리 죽이는 것과 진배없었어요.”

그래도 아이들은 치떨리는 모멸감을 이겨내며 용케 괴로운 조사를 버텨냈다. 하지만 조사가 끝난 후 경찰로부터 들은 얘기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정황상 아이들이 성폭력을 당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공소시효가 끝나 수사를 할 수 없다”는 허무한 답변이었다. 원통했다. 분노가 치밀었다.

더 이상 참기 어려워 억울함을 호소하자, 한 경찰의 차디찬 음성이 귀에 꽂힌다. “그렇게 억울하면 인터넷에나 올리시든가요”라고…

고통의 세포는 더 늘어나고, 상처는 더 커져 버렸다. A씨가 살고 있는 광주, 전남 지역에는 아동 성폭력이 사흘에 한 번꼴로 신고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해바라기아동센터에 신고한 아동ㆍ청소년 성폭력 사건은 지난 연말까지 81건. 그러나 이중 45명만이 성폭력 용의자를 수사기관에 고소했고, 그 가운데 23건만이 기소됐으며 실형을 받은 것은 단 2건에 불과했다.

“도대체 법이란게 뭡니까.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법이 법입니까. 정말로 원망스럽습니다. 왜 거리를 버젓이 활보하는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합니까. 왜 그토록 국민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피해자들의 절규를 듣지 못합니까”

불합리한 법·수사관행 바로잡기 투쟁

영상관련 일을 하던 A씨는 이제 생업(生業)을 접었다. “예술가로선, 껍데기만 남았죠. 아이들이 정체성에 상처받고 신음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해맑은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겠어요?”

대신, 거리에 나선다. ‘한국 아동성폭력피해가족모임 지원센터(www.c112.or.kr)’에서 같은 아픔을 가진 가족들을 위로하고, 불합리한 법을 고치고 경찰의 비도덕적인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투쟁하고, 호소한다.

“밤이고 새벽이고 피해자들의 도움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뛰어가고, 때로는 경찰서도 뒤엎죠. 피해자의 권리도 제대로 못 지켜주면서 무슨 가해자의 인권을 운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어린 딸들이 성폭력 당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돌아오는 길은 그러나 두렵고, 외로움이 엄습한다. “한 가정의 치부를 드러내고 호소해도 결코 그 높은 벽을 깨지 못할 것 같아 점점 상실감이 더해갑니다.

무엇 때문에 피해자 가족은 화면에 나와도 포커스 아웃 시키고, 음성 변조해가면서 얘기해야 하는지 그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딸들 앞에서 아빠는 이제 고개조차 제대로 들 수가 없다. “죄인도 이런 죄인이 없지요. 왜 이런 나라에서 저 아이들을 낳았는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그는 애끊는 심정을 토해냈다. “밤에 애들 자고 있는 모습 보면 눈물이 치밀어 올라요. 이건 아이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입니다. 정신적 살인 행위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절규하는 그의 음성은 인터뷰 내내 가늘게 떨렸다.

누가 이 가정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인면수심의 성폭력범, 미지근한 법, 방관하는 경찰,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합작한 비극이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