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중 13년 전 후원자 나성윤씨와 '아름다운 상견례'

▲ 하인스 워드와 어머니 김영희씨가 8일 오후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혼혈아동 100명과의 만남 '희망 나누기' 행사에 참석. 가수 인순이씨의 감사말을 들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 김주성 기자
한국계 흑인 혼혈 출신으로 미국 프로풋볼(NFL) 슈퍼볼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하인스 워드.

미국에서 대통령보다 더 인기가 높다는 ‘하늘 같은’ 스타인 그가 한국 방문 기간 중 짬을 내 10여 년 전 자신을 성원했던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후원자를 깜짝 방문했다.

9박10일간의 방한 일정 중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가는 곳마다 몰려드는 엄청난 인파에 놀란 워드는 국내 일정을 일체 비밀에 부쳤다. 워낙에 일정이 빠듯해 갈 곳도, 오라는 곳도 많았던 그가 시간을 방해 받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자신을 격려해줬던 후원자를 찾아가는데 기꺼이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도 언론과 카메라의 관심을 피해서….

당사자 나씨가 더 놀란 슈퍼 스타의 방문

지난 12일 미국으로 출국하기 앞선 주말인 8일. 워드는 서울 서초동의 불고기전문점인 사리원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인 8일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께 저녁 식사 예약을 하려는데 주인인 나성윤씨를 만나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TV로만 보아 왔던 슈퍼 스타의 전화를 받은 직원이 크게 당황한 것은 불문가지. 즉시 대표인 나씨에게 연락해 내용을 전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놀란 사람은 나씨 자신. ‘설마 직접 찾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목기술사로 일하던 나씨와 하인스 워드와의 조그만 인연이 시작된 것은 13년 전인 1993년. 건축회사에서 일하던 나씨는 한인회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혼혈 흑인인 프로풋볼 유망주 가정을 돕는 바자를 연다며 후원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때가 하인스 워드란 이름을 처음 접한 시기.

당시 하인스 워드는 조지아대 진학을 앞두고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는 등 지역 신문에도 대서특필되면서 일찌감치 기대주로 지역사회에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약간의 성금을 보낸 나씨는 하지만 바자에 참석하지 못해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뒤늦게 지역 신문을 통해 바자가 열렸던 기사를 읽으면서 행사를 확인했을 정도.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사이지만 13년 만의 첫 만남은 우연히 이뤄졌다. 올해 슈퍼볼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MVP로 선정된 하인스 워드가 ‘그 때 그 선수’라는 것을 알아본 나씨는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를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하겠지만 10여 년 전 애틀랜타에서 열린 후원 바자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입니다.…그 때의 주인공이었던 당신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장면을 지켜 보니 가슴이 정말 뿌듯했습니다.…마주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다니 시간이 허락되면 옛날 얘기를 나누며 꼭 식사 한끼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애틀랜타 시청에도 근무했던 나씨는 당시 명함도 동봉해 보냈다. 물론 연락이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마음만을 전할 수 있다는데 의미를 뒀다.

그런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는지 슈퍼볼 스타가 된 후 산더미처럼 쌓인 편지와 전화 공세 속에서도 어머니 김영희씨는 이 편지를 찾아내 읽었다. 편지는 이어 아들에게도 건네졌다.

“감격스러웠던 마음만 전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직접 전화하고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나씨는 워드 모자가 방문 전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 “TV카메라나 언론에는 절대 알려서는 안 된다라는 확인을 여러 번 했다”고 전했다.

20여 명의 경호원과 관계자들이 바깥에서 일반의 출입을 막으며 2층 별실에서 시작된 저녁 식사는 1시간 넘게 진행됐다

. “어머니와 에버랜드에 갔어요. 미국에서 디즈니랜드에 한 번도 못 가보셨는데 이번에 놀이공원에 처음 가신거죠. 디즈니랜드와 비교해 사실 전 별로였지만…그래도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셔서 기뻤어요.” 효자로 소문난 워드는 역시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세 명만이 함께한 식탁에서 불고기와 갈비를 시킨 하인스는 와인을 곁들이며 즐겁게 얘기들을 털어놨다.

▲ 1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하인스 워드와 어머니 김영희씨가 출국하기전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 인천국제공항=홍인기 기자

“슈퍼볼에서 우승한 날 축하파티 때도 와인을 마셨어요. 그때 마신 품종보다 맛이 더 좋은 것 같네요.” 워드가 어묵도 좋아한다고 말하자 주방에서는 서둘러 어묵조림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애틀랜타 시청에도 근무했던 나씨는 시청사 안에 있던 헬스클럽에도 즐겨 다녔는데 워드 역시 이 곳을 애용했다. 워드는 ‘370파운드 역기도 거뜬히 든다’는 자랑부터 가족, 친구, 고향 학교 얘기 등 대화는 즐겁게 이어졌다.

“어머니는 워드에게 ‘많이 먹으라’고 보채시고 아들은 ‘됐다’고 말하는 모습부터 역시 같은 피가 흐르는 한국인의 가정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국인 모자 사이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이지요.” 나씨는 “워드가 워낙 겸손해 스타라는 사실이 잊혀질 정도로 편한 자리였다”고 만남 당시를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진정한 스타의 진면목 보여준 워드

식사 후에는 간단히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를 든 사람이 당황해 미처 렌즈 뚜껑을 열지 않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워드는 친절하게도 웃으며 뚜껑이 닫혔다고 지적해줬다. 사진을 찍는 이도 대스타 앞이라서 긴장해서인지 카메라를 든 손이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

“뒤늦게라도 하인스 워드 모자의 방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나씨는 일체의 방문 사실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했는데 부탁을 받았는데 워드에게 누가 될까봐 내내 곤혹스러워했다.

“그 바쁜 일정에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후원자를 찾아와 식사 시간까지 배려해주는 두 모자의 겸손함과 인간적인 매력에 또 한 번 반했습니다.”

나씨는 “슈퍼볼 MVP와 인터뷰 한 번 하는데 15억원을 낸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식사까지 했으니 20억원짜리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한 셈”이라며 “팬을 생각해 주는 진정한 슈퍼스타의 진면목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