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을 만드는 사람들자극적인 성적 묘사, 은밀한 신체 부위 지칭 등 표현 · 스토리 구성에 금기 사항 많아 글쓰기 애로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두 번쯤 야한 책을 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소위 ‘빨간 책’이라 불리는 외국 잡지(야한 사진 위주의)는 물론이고 은밀히 유통되던 일본의 야한 소설 번역본도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영화 <음란서생>은 이런 야한 책이 조선 시대 양반들 사이에도 나돌았을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현실은 어떨까.

성에 대한 금기의 벽이 낮아지면서 야한 사진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주변에 널려 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모바일을 통해 연예인의 누드도 감상할 수 있는 세상이다.

무엇보다 야설이 난무한다. PC통신이 도입되던 시기부터 등장한 야설은 모바일 열풍을 타고 그 활동 영역을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넓혀가고 있다.

성인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은 휴대폰을 통해 야설을 즐기는 마니아까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야설 작가들은 어떤 이들일까. 그들만의 세상을 은밀히 엿봤다.

매주 한 편씩 쓸 경우 월 60만원 수입

야설계에 입문한 지 3개월된 야설 작가 신모씨는 그 바닥에서 요즘 잘 나가는 신예로 알려져 있다.

입문 석달 만에 ‘A급 작가’(야설 공급업체에서는 작가를 급수로 구분해 원고료를 차등 지급한다. A급이 가장 높은 급수)로 성장했을 정도.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 중인 신 씨는 지인의 소개로 야설계에 발을 들여놨다.

“처음에는 재미있겠다 싶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신씨는 “어차피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며 살아가는 프리랜서 작가로서 야설도 하나의 영역이라 생각했다”라며 입문 계기를 설명한다.

야설의 경우 한 편이 20회에서 25회로 나뉘어 서비스된다. 25회 짜리 한 편이면 원고지 80매 분량. 원고료는 20회 기준 10만원, 25회는 15만원 수준이다.(이는 A급 기준이며 급수에 따라 몇 만원씩 차이가 난다) 신씨의 경우 매주 한 편씩 원고를 마감하고 있어 야설을 통한 월수입이 60만원 선이다.

야설 작가를 본업으로 삼아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이런 이유로 현재 활동 중인 야설 작가 대부분이 투잡족들로 본업은 따로 있고 부업삼아 야설을 쓴다.

물론 야설 전문 작가로서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러려면 동시에 여러 공급업체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세 업체와 계약해 매주 세 편씩 야설을 쓰면 180만원 정도의 수익이 생긴다. 그러나 신씨는 “매주 원고지 240매를 소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야설은 자극적인 상황을 얼마나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느냐에 따라 작가의 능력이 판가름난다. 야설을 읽는 독자들이 생생한 상황을 연상할 수 있도록 쓰여져야 하기 때문.

따라서 소재 선택, 스토리, 구성 등 일반 소설의 기본 요소들보다는 상황 ‘묘사력’ 하나가 갖는 비중이 더 크다. 그런데 야설의 검열 기준이 엄격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그것에 맞춰 제대로 묘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신씨의 설명이다.

“처음 야설을 시작하면서 공급업체로부터 가이드라인이 적힌 자료를 받았습니다. 피해야 할 부적절한 소재와 단어 등을 명시했는데 이를 보니 글쓰기가 만만치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자극적인 소재는 모두 금지 사항이고 성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단어들 역시 제한이 심했습니다.”

신씨는 외부 유출이 금지된 문서라며 야설 공급업체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보여줬다. 이를 살펴보면 야설이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알 수 있다.

우선 금지 소재를 살펴보면 스와핑, 윤간, 강간, 근친상간, 혼음 등이다. 또한 배설, 성매매, 몰카, 동성애, 성기구 이용, 변태적 성행위 등도 금지된다. 당연히 미성년자 소재는 금기다.

사용할 수 없는 단어 항목에선 더욱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남녀의 은밀한 신체 부위를 지칭하는 단어는 대부분 사용 불가다.

여성의 가슴 부위까지만 허용되는 까닭에 “‘젖가슴’ ‘젖꼭지’ 등의 단어 사용을 적극 권장함”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이런 금지 사항을 다 지켜 야설을 쓰라고 하면 어떻게 독자들을 흥분시킬 수 있겠느냐”고 신씨는 항변한다.

흥미로운 것은 야설의 금지 사항 중 상당수가 다른 영역에서는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경우 스와핑(<클럽 버터플라이> 등), 근친상간(<올드보이> 등) 등의 소재로 만든 작품이 개봉돼도 별 문제가 없다.

강간, 성매매, 동성애, 성기구 이용, 변태적 성행위 등의 소재도 영화나 연극, 일반 소설 등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일반 소설의 경우 소재와 단어의 제약이 극히 적은데 비해 유독 야설에서는 폭넓게 금지된다는 것.

이에 대해 신 씨는 “야설이 아직 문학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제약이 많은 이유를 물어봤더니 문학성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문학성이 뒷받침된 일반 소설의 경우 이런 표현이 가능하지만 야설은 그것이 결여돼 제약이 가해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기준이 애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야설 작가인 이모씨는 이미 몇 년째 야설 작가로 활동해온 베테랑이다. 현재 직업은 보습학원 강사로 예전에는 에로비디오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에로 업계를 떠나 국어 강사로 활동 중인 그는 에로물 관계자의 권유로 야설을 쓰게 됐다. 그는 야설 업계가 야설 작가의 희생을 발판삼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야설과 같은 성인 콘텐츠 제작에 관련된 사람과 친해 업계 정황을 잘 알고 있다”는 이씨는 “모바일 시장이 태동하면서 야설 콘텐츠는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시장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대략 30여 개의 야설 공급업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각 회사마다 10여 명의 야설 작가들이 소속돼 있다고 한다. 야설의 경우 마니아층이 두터운 데다 호기심으로 클릭하는 이들도 많아 확실한 시장을 확보하고 있지만 야설 작가에 대한 대우는 열악하다.

30여개 공급업체서 300여 작가 활동

“야설 작가의 경우 이름을 잃은 지 오래됐습니다. 모바일에 서비스되는 야설은 제목만 나오고 작가 이름은 빠져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 <음란서생>의 ‘인봉거사’ ‘추월색’과 같은 인기를 끄는 필명작가의 탄생은 현 상황에선 불가능합니다. 독자 입장에서도 재밌게 읽은 작가의 후속작을 보고 싶은 게 당연한데 이 역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야설 작가의 개인 능력이 잘 드러나지 않아 수입이 애초 정해진 원고료로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능력있는 야설 작가들이 하나 둘 업계를 떠나면서 야설의 수준이 나날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야설 역시 하나의 장르로 인정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야설 전반의 수준 향상이 시급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는 얘기다.

이렇게 두 작가를 만나 야설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뒤 필자는 직접 휴대폰으로 야설을 몇 편 살펴봤다.

두 작가의 설명처럼 자극적인 소재와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난잡한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저것 피해갈 것이 많은 때문인지 야설은 성관계 자체에 집중하며 지루한 묘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창작의 원동력은 표현의 자유에 있다. 이를 강압적으로 규제하면 그 힘은 엉뚱한 곳으로 튄다. 이런 까닭에 야설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오히려 야설을 더욱 난잡스럽게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재진 자유기고가 dicalazzi@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