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포스코·LG전자 등 기업들 직장 내 보육시설 설립 적극 나서

▲ SK C&C 이남희 과장은 출퇴근을 아이와 함께 한다. / 박철중 기자
“한 총리, 직장 내 보육시설 확충해주세요.”

취업포털 커리어(www.career.co.kr)가 여성신문과 공동으로 새 총리가 우선 수행해야 할 최우선 과제에 대해 4월 22일부터 7일간 직장인 1,1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9.1%가 ‘직장 내 탁아소 설치 및 보육시설 확충’을 1위로 꼽았다.

이는 ‘소득 양극화 해소’나 ‘물가 및 부동산 가격 안정’ 등 분야별 주요 사안 20가지 항목 중에 으뜸으로 꼽힌 것이라 의미가 크다. 그만큼 보육시설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저출산이 국가적 재앙이라며 온 나라가 대책 마련에 소란스럽지만, 그나마 한 명 낳은 아기도 맡길 곳이 없어 헤매는 맞벌이 부부들이 주변에는 허다하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25,319개 보육시설 중 국·공립 1,344개소(5.3%), 직장 237개소(0.9%)로, 보육은 아직도 민간시설이나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져 있는 실정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고작 1%도 되지 않는 직장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맞벌이 부부는 그야말로 ‘선택 받은’ 부모인 셈이다.

업무 효율성 · 기업 경쟁력에 도움 인식

IT서비스 업체인 SK C&C의 주부 사원 이남희(31) 과장은 그러한 선택 받은 엄마 중 한 사람이다. 매일 아침 29개월 된 아들 지호의 손을 잡고 출근한다. 지난해 7월 SK C&C가 경기 분당으로 사옥을 이전하면서 사내에 보육시설을 설립한 덕이다.

이 과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월 1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입주 아주머니를 고용해 집에서 아이를 키웠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며 “이제는 아이와 같이 출근하고 퇴근도 하니 안심”이라고 흡족해 했다.

“아이가 몰라보게 안정감이 생겼어요. 엄마 아빠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든지, 정원 산책을 한다든지 하는 어린이집 행사를 통해 엄마가 자꾸 나타나니까, 항상 가까이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아요.” 이 과장은 “연내 ‘둘째’ 출산계획을 갖고 있다”고도 귀띔했다.

“주변에 보면 능력 있고 배울 것 다 배운 엄마들이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잖아요. 솔직히 저도 회사 다니면서 한 명 이상 낳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많이 도와주니까 둘째 출산도 가능할 것 같아요.”

월 이용료는 다른 일반 시설에 비해 최고 70% 가까이 저렴한 15~25만원. 위탁 운영임에도 회사측에서 일정 부분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큰 비용 부담 없이 아이를 맡길 수 있다. 게다가 출근 준비로 바쁜 엄마를 위해 보육 시설에서 아이들의 아침 식사까지 세심하게 챙겨줄 정도로 가족적(?)이다.

“사내 어린이집만 많이 퍼져도 저출산 문제가 많이 개선될 겁니다.” 이 과장은 어느새 사내 보육시설 예찬론자가 다 돼 있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기업들이 잇따라 직장 보육시설 마련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LG전자는 올해 상반기내로 가산동 MC연구소에 만 6세 미만의 자녀들을 위한 100여 평 규모의 보육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또 연말까지 창원과 구미, 평택 등 주요 사업장에도 보육시설 설립을 확대키로 방침을 정하고, 사업장별 여성인력 비중 등을 감안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포스코는 서울 본사에 보육시설을 설치할 장소가 없어 하나은행, IBM등과 공동 출자해 ‘푸르니 어린이집’을 세우고 서초, 일산, 분당 등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 1월부터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포항에는 효자제철유치원 건물을 리모델링한 ‘포스코 어린이집’을 3월 문열었다. 또 광양의 광양제철유치원 건물에도 보육시설을 설립할 방침이다.

이 외 ▲대교(대구, 울산) ▲삼성전기(수원) ▲태산엘시디(경기도) ▲증권선물거래소 ▲SK C&C(서울) 등도 올 1월 이후 보육시설을 개원했거나 개원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보육시설 마련에 팔을 걷고 나선 것은 직원들의 육아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4월부터 어린이집을 운영해온 LG CNS의 조영식 대리는 “여성 우대정책이 아니라 육아 때문에 직장생활에 지장을 받기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라며 “덕분에 퇴사하거나 이직하는 비율도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고 장점을 소개했다.

실제로 동종 업계 이직률(퇴직자 포함)은 20% 가까이 이르지만, LG CNS의 경우 10% 미만에 그치고 있다.

한편, 양육비를 지원하거나 육아 휴직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저출산 대책을 내놓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육아 휴직 확대 등 다양한 지원책 마련

동문건설은 지난해 7월 셋째 자녀를 낳을 경우 축하금 100만원에 매월 10만원의 양육비를 지원하기로 한 사원복리후생제도를 처음 도입한 데 이어 올 초에는 지원금을 늘렸다.

임직원이 셋째 자녀를 낳으면 출산 축하금 500만원을 우선 지급하고 이후 매월 50만원의 양육비를 대학 졸업 때까지 지원한다. 둘째 자녀에 대해서도 출산 축하금 300만원에 매월 10만원의 양육비를 지원해주고 있으며 첫째 자녀에 대해서는 출산 축하금만 100만원을 주고 있다.

현진에버빌은 올 2월부터 셋째를 낳을 경우 격려금과 양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격려금은 1,000만원, 양육비는 매년 500만원을 7년 동안 지원해 준다. 둘째를 낳을 경우에는 격려금만 1,000만원을 준다.

여직원 비율이 높은 IT기업 네오위즈는 법정 휴가인 3개월의 출산 휴가 외에도 한 달의 유급 휴가를 추가로 더 주며, 배우자가 출산한 남자직원에게도 10일의 출산 휴가를 보내주고 있다. 또 임산부 건강을 위해 매월 하루의 검진 휴가를 주고 있다.

LG필립스 LCD도 임신부 직원의 건강을 위해 출산 한 달 전부터 휴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대학까지 직원 자녀의 학자금을 전액 지원하고 있다.

네오위즈 관계자는 “치열한 경쟁시대에 직원들이 출산이나 육아 등 집안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관건이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