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수준의 수학·과학 수업, 체육·봉사활동 등 전인교육도 힘써

“작지만 강한 학교.”
“조용하지만 실속있는 학교.”

부산에 있는 해운대고등학교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다. 자립형 사립고(이하 자사고)로 전환한 후 첫 졸업생들의 유명 대학 입학률은 주변의 학교들이 놀랄 정도다.

졸업생 240명 중에 법대 3명을 비롯해 서울대 합격생이 16명이나 되었고, 의대39명, 한의대 12명 등 들어가기 힘든 의·치·한의대 입학생이 51명이나 되었다. 연·고대 입학생은 모두 60명. 이상의 상위권 명문대 입학생이 졸업생의 절반이 넘는 127명이나 되었다.

재수생들은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 시절의 학생이라 거의 포함되지 않은 걸 감안한다면 놀랄 만한 진학률이란 분석이다.

이외에도 부산대 40명, 서강대 11명, 성균관대 8명, 한양대 12명의 합격생을 배출했고, 경찰대(1명), 포항공대(2명), 육군사관학교(1명) 등을 감안한다면 세칭 명문대에 90% 가깝게 합격시킨 셈이다.

그러면서도 부산 지역 밖에선 이 학교의 놀라운 입시성적이 알려지지 않았다. 합격생과 관련해 한 번도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부근 교감은 “한 학년에 10학급이던 학생이 자사고로 전환하며 6학급으로 인가받았기 때문에 올해 입학생은 182명으로 줄었다”며 “작지만 좋은 성적을 내는 학교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2008 입시대비 통합교과형 논술 수업

우수한 학생이 들어오는 만큼 이 학교의 수업도 많이 달라졌다. 3학년이 되면 수학2나 물리2 등 고등학교 수준에서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고등학교와 같이 대학수준의 고급 수학이나 고급 과학을 배운다.

2008학년도 입시를 대비해 국·영·수는 물론이고 사회와 과학에서도 통합교과형 논술을 대비한다. 바뀌는 입시에 대비한 전략적인 접근을 한다는 설명이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한 야간 특별강좌는 학생들의 개인차를 고려한 수준별 학습이 이루어진다. 현재 20여 개 과목이 개설되어 있어 학생들이 자기 수준에 맞는 과목을 선택, 공부할 수 있다.

선생님들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외부강사 초청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3개의 유명 논술학원에게 1, 2, 3학년을 나누어 지도시켰을 정도다.

해외유학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선 미국 대학에서 요구하는 수능 격인 ACT강좌를 방과 후 하루 3시간씩 개설하고 있는 것도 이 학교의 특징이다.

모든 학생들의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지난해부터 선발한 국제반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란 설명이다. 현재 해외대학으로 직행한다는 목표를 가진 국제반 학생은 1, 2학년 모두 14명이다.

선생님도 학생들의 요구가 다양해짐에 따라 계약직 선생님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 특히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11개나 되는 사회과목은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선생님의 채용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잡무를 없앴다는 대목에선 유명학원의 시스템을 보는 듯하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평가 문항을 개발하고, 학생 상담만 하면 된다. 시간표를 작성하거나 보고서 작성, 공문발송 등에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교무실 내에 행정요원이 3명이나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해운대고등학교는 유명 입시학원의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비슷한 수준의 학생을 더욱 세분해 수준별 학습을 하고, 선생님들은 학생교육에 전념하는 모습은 유명 학원들이 자랑하는 장점이다.

▲ 체육 양궁.

그렇다고 해운대고등학교가 모두 교육을 입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정신교육을 위해 백범일지를 2학년에 필수과목으로 채택했다. 민족을 위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백범선생을 꼭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체육 봉사활동 등을 통한 전인교육에도 신경쓰고 있다. 1학년 체육시간에는 수영, 2학년에는 볼링, 3학년 때는 양궁을 집중해서 가르치고 있다. 이 학교 졸업생이면 이 세 가지 운동은 모두 잘한다고 보면 된다. 학교에 있는 잔디가 깔린 축구장, 우레탄 농구장은 물론이고, 86아시안게임 배구경기가 열렸던 실내체육관을 이용해 체육행사도 자주 열린다.

학생 15%에 장학금 지급

봉사활동도 해운대고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다. 형식적인 봉사활동이 아니라 실질적인 봉사활동을 요구한다.

학교 주변의 독거노인들을 위해 학교에서 반찬과 도시락을 준비해주면 학생들이 직접 어른들을 위해 매주 토요일 배달해준다. 양로원과 고아원의 봉사활동도 학교측이 학생들에게 권하는 봉사활동이다. ‘아름다운 가게’ 점포에도 참가, 물품을 모아 판매하고 기금을 전달하는 사회참여 활동도 하고 있다.

윤 교감은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측면도 있겠지만 배우고 느끼는 것이 더 많을 것이란 생각에서 봉사활동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 필리핀 해외체험학습.

해외문화 체험도 이 학교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프로그램. 올해도 5월 중순 1, 2학년 학생들이 호주,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일본 등을 방문하고 있어 3학년만 남은 교정이 호젓하다. 1주일 전후의 해외문화 체험 이외에도 중국, 일본, 미국 등의 자매학교와 학생들을 교환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자사고인 만큼 장학제도도 잘 갖추어져 있다. 학생의 15%에게 장학금을 주어야 한다는 규정을 상회할 정도로 여러 가지 장학금을 주고 있다.

자시고로 전환한 뒤에 등록금의 20%를 충분히 상회할 정도로 법인 전입금이 들어오고 있어 학교 운영은 원만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윤 교감은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자사고와 관련된 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고 본격적인 자사고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없는 시범기간이라서 등록금 책정 등의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교칙 위반… 학생자치법원서 징계

"피고에게 사회봉사활동 20시간을 선고합니다."

법원에서나 있을 만한 이야기지만 해운대고등학교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해운대고등학교는 학생들의 교칙 위반 등으로 인해 징계를 받을 사안에 대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벌을 내리는 '학생자치법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자치법원의 판결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 퇴교를 제외한 처벌에 대해서 선생님들이 판결을 번복할 수는 없다. 이제까지 13회에 걸쳐 비공개로 진행된 학생자치법원의 결정은 절대적으로 집행되었다.

한 학년에 10명씩 모두 3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판사, 변호사, 검사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학생들은 입학 후에 시험에 의해 선발된다. 평균 7대 1정도의 경쟁률을 뚫어야 학생자치법원의 멤버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경쟁률이 치열한 것은 자치법원이 엘리트 학생들이 모이는 특활부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이들에게는 자치법원장학금이 제공되는 장점 때문이기도 하다. 시험에 합격한 후에 선배와 선생님들에게 교육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법원이나 검찰청을 방문, 판결의 진행과정을 실제로 느낄 기회를 갖는다.

자치법원을 만든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기회를 갖고, 토론 문화를 정립하기 위해서였다"고 윤부근 교감은 설명했다. 이 목적을 달성한 것은 물론이고 처벌받는 학생들의 불만도 거의 없어 좋은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학생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이 선도규정을 위반한 학생들에게 내리는 처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무부에 가서 학생자치법원의 진행과정을 시연하기도 했고, 많은 학교에서 이 제도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황치혁 교육전문 객원기자 sunspap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