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연예인·스포츠 스타 풍자하고 비틀고…

요즘 사이버 공간은 이들 충격(?) 3종 시리즈로 술렁인다.

하루라도 이들 시리즈가 없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듯, 수많은 네티즌들이 파문과 굴욕, 자책의 내용이 담기 새로운 시리즈를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며 발굴해내고 있다. 먼저 ‘굴욕’ 시리즈부터 살펴보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는 남녀 각 네 명이 미팅 중인 것으로 보인다. 파트너를 정하는 방식은 1990년대 미팅의 방식으로 유행했던 일명 ‘사랑의 작대기’. 커다란 손 모양이 달린 작대기를 마음에 드는 상대 앞으로 쭉 내밀어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한 여성의 경우 아무도 ‘찜’을 보낸 사람이 없다. ‘핑클’의 옥주현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옥주현 굴욕시리즈’의 일부다. 5월 19일 인터넷 포털 ‘다음’에 올려진 이래 일주일새 달린 댓글만 400개에 육박할 정도로 큰 인기다.

‘굴욕 시리즈’는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민망한 장면이나 과거 촌스러운 모습을 포착해 인터넷상에 퍼트리는 일종의 네티즌 놀이다.

수십 명의 팬들에게 꽃다발을 받는 송일국 옆에서 빈손으로 서 있는 손예진의 굴욕, 초등학생 몇 명만이 모인 썰렁한 팬 미팅 현장에 자리한 서지영의 굴욕, 상대 배우보다 한 계단 위에 서 있는 데도 키가 커 보이지 않는 김태희의 굴욕 등 스타의 돌발적인 모습을 포착해 웃음을 주고 있다.

최근 거의 매일 등장하다시피 하는 ‘굴욕시리즈’는 지난해 11월 한국과의 평가전을 위해 내한했던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마테야 케즈만(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에게서 비롯됐다.

당시 한국 방문 중 용산을 찾았던 모습이 한 네티즌의 카메라에 포착됐는데 소속사 유니폼을 입고 있음에도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이 실소를 자아냈다. 이 사진은 ‘케즈만의 굴욕’이란 이름으로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굴욕시리즈’의 첫 희생양이 됐다.

이같이 ‘굴욕시리즈’가 스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낸다면, ‘파문’과 ‘자책’ 시리즈는 일종의 ‘말 장난’이다.

“아인슈타인 ‘왜 이리 과학을 못할까’ 자책”, “안정환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자책”, “고이즈미 ‘망언 잘 안 된다’ 자책”, “박찬호 ‘내 공은 너무 느리다’ 자책” ….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을 흉내내 무언가 ‘폭탄선언’을 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거의 허무 개그에 가깝다.

일명 ‘자책놀이’라 불리는 이 네티즌 유머는 축구선수 이영표로 인해 불이 붙었다. 5월 22일 축구대표팀의 훈련 상황에 대해 인터뷰 도중 “잠들기 전 ‘난 왜 이리 축구를 못하는 것일까’하고 자책한다”라고 말해 네티즌들에게 화제를 뿌렸다.

말 한마디가 씨앗 된 파문놀이

이에 앞서 등장했던 ‘파문놀이’도 이와 유사하다. “박지성 ‘내 피부는 왜 이렇게 고울까’ 파문”, “마이클잭슨 ‘내 얼굴은 천연이다’ 파문” “빌 게이츠 ‘사실 난 컴맹이다’ 파문”, “이승엽 ‘홈런 한 번 쳐보고 싶다’ 파문” 등등. 이 역시 스타의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됐다.

꽃미남 배우 강동원이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외모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정말 못생겼다. 절대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지나치게 겸손하게 한 말이 무려 5,000여 개에 육박하는 댓글로 확산된 ‘파문놀이’를 불러왔다.

동원되는 ‘굴욕’ ‘파문’ ‘자책’ 시리즈에 동원되는 과장법도 재미있다. 보통 대중을 불러모으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 황당할 정도로 강한 어휘가 이용되기도 한다.

기성 세대 어른들이야 “뭐 하는 짓인가” 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지만, 신세대 네티즌들은 이 같은 놀이를 통해 낯선 이들과 소통하고, 교류한다.

대부분 재미를 추구하는 장난 수준이지만, “최연희 ‘가슴 만지는 게 성추행인 줄 몰랐다’ 파문, 이해찬 “사실 그때 팡야(인터넷 골프 게임)했다” 파문 등 사회적 사건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날카로운 풍자도 읽을 수 있다.

이 같은 시리즈의 양산에 대해 전문가들은 네티즌들이 단순한 대중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현상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한다.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 씨는 “다수의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많이 보고 즐길 뿐 아니라, 정보를 찾아내고 가공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며 “매스미디어에서 스타에 대한 콘텐츠를 일일이 짚어주지 않더라도 네티즌들이 모여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단계에 이른 것”이라고 분석한다.

과거 대중문화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용자에서 이를 재해석하여 생산하는 생산자로 진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그 기저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발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인터넷 문화의 힘이 내재돼 있다는 것.

대중문화평론가 배국남 씨는 또 스타의 망가진 모습을 즐기는 현상에 대해 “나와 멀리 있는 동경의 대상을 ‘일상’으로 끌어내려 동질화하고 싶어하는 심리”라며 “그러한 작업에 ‘내’가 주체가 된 것에서 더욱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생산자로의 네티즌의 진화는 앞으로 대중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강 씨는 “기존 매스미디어 이상으로 커다란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에 배 씨는 “날카로운 문제 의식 없이 그저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한 자극적ㆍ선정적 소재로 치닫는다면, 스타 이미지 하락과 더불어 대중문화 자체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추락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주체적 콘텐츠 생산과 선정성이라는 두 얼굴을 지닌 ‘인물(현상) 비틀기’. 그 역기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미래 대중문화의 건강성이 달려있음을 말해준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