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하객·방청객 등 보수 높은 '단타 알바' 선호

배추장수, 이종격투기 선수, 백 댄서, 공사장 인부, 치어리더 매니저, 인디밴드 가수, 게임업체 대표 등….

올해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홍라열(30) 씨의 고교 졸업 후 화려한 아르바이트 이력이다. 무려 50여 가지의 일을 경험해 봤다고 하니 안해본 일이 없는 셈이다.

여대 4학년생 김모(22) 씨는 최근 2년 동안에 홍보지 돌리기, 신용카드 회원모집, 텔레마케터, 백화점 점원, 출판사 교정 등 10여 가지 직종의 아르바이트를 다양하게 체험했다. 단순히 돈을 벌기보다는 조금씩이나마 뭐든지 다 한 번 해보고 싶어서였다.

대학교 2년생 박진영(22) 씨는 얼마 전 1년간 근무하던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서빙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다. 대신 전공(일어 통역)을 살릴 수 있는 여행사나 국제 행사 등의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박 씨는 “친구들 대부분이 장기 아르바이트를 꺼린다”라며 특히 음식점 서빙 등 노동 강도가 세고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소득은 적은 3D 아르바이트 업종은 맛만 잠깐 보고 피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처럼, 짧은 대학시절 동안 다양한 직종 경험을 쌓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는 대학생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초고속 시대의 새로운 젊은 문화 풍속도이다.

알바생 절반 가까이가 '투 알바족'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포털 사이트 알바누리의 조사를 보면 요즘 대학생 아르바이트 세태가 뚜렷이 나타난다.

올해 4월 현재 알바누리에 등록된 채용 공고 약 19,300건을 분석한 결과, 1개월 미만의 단기 아르바이트는 공고 1개당 평균 7.59명이 지원하는 반면, 6개월 이상 장기 아르바이트는 4.16명이 지원하고 있다. 1개월 미만의 단기 아르바이트는 자기 시간에 맞춰 짧게 근무하는 만큼 토막시간 활용에 좋고 독특한 직종이 많아 특이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기다.

또 알바누리가 지난해 전국 남녀 대학생 3,556명을 대상으로 아르바이트 현황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아르바이트 학생 5명 중 2명(41.6%)이 2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가지고 있는 ‘문어발 알바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메뚜기처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하루에 몇 탕씩 뛰는 ‘투 알바족’은 이제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단기 아르바이트 종류는 다양하다. 중고생 과외, 관공서 근무, 기업 人턴 등은 옛말. 요즘 드라마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 역할 대행 부업은 단기 아르바이트 중에서도 단연 인기순위 상위권에 든다.

결혼식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 조모(26) 씨는 예식 당일 처음 만나는 고객 및 같은 대행 아르바이트 학생과도 서슴없이 농담을 건넬 수 있는 ‘능청함’이 그의 무기다. 대행업체에서 미리 준비해준 축의금 봉투를 내고 예식에 참석한 후 사진까지 찍으면 그날 일은OK. 일당 2만~3만원에 예식 장소가 호텔일 경우 고급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재미는 덤이다.

▲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론조사기관의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투표소 앞에서 출구조사를 하고 있다. / 최흥수 기자

선거철을 맞은 요즘엔 리서치 회사의 5·31 지방선거 출구조사 요원 아르바이트도 한시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31일 하루 동안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조사하고 받는 돈은 일당 10만~11만원. 한 번에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어 대학생 조사원 500명 선착순 모집이 이틀 만에 마감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지금 하고 있는 과외 수입 30만원으로 용돈이 부족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겸한다”는 대학생 이모(21) 씨는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TV프로그램 방청객, 좌담회에 참석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방청객으로 보통 1시간짜리 프로그램 녹화에 참여하여 받는 돈은 7,000원.

각종 식품, 전자기기,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의 신상품을 테스트해보거나 사용한 소감을 참석자들끼리 2시간 정도 토론하는 좌담회에 가면 분야에 따라 1만5,000원~8만원 선의 짭짤한 사례금을 챙긴다.

욕심은 금물, 발전 가능성 고려해야

물론 각 학과의 특징에 따라 알선되는 단기 아르바이트도 많다.

약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의 경우 한 번쯤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는다. 일명 ‘마루타’로 불리는 임상실험 요원 아르바이트이다. 실험 요원은 일정 기간 동안 약을 복용하고 채혈 등을 통해 효능을 확인하는 것을 돕는다. 보통 1~2주 이내로 실험이 끝나지만 보수는 위험 수당을 감안해 3만~40만원 대에 달해 다른 직종에 비해 비교적 높다.

방송 관련 학과 학생들에게는 각종 촬영 아르바이트 제의가 잇따른다. 대학생 박상희(24) 씨는 지난 겨울, 방학캠프 기간 내 활동 모습을 지급된 장비로 촬영해주는 대신 2주간의 영어 캠프(200만원 상당)에 무료로 참가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박 씨는 “아직까지 동영상 촬영, 편집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인력이 많지 않아 각종 행사를 촬영, 편집하는 일당은 보통 10만원을 호가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만 투자하고 겉핥기 식으로 너무 많은 직종을 체험해보겠다는 욕심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다 보면 자신의 적성을 찾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직업에 대해 쉽게 싫증낼 수 있고 나중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이직률이 높은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단기간에 돈을 벌려는 욕심은 편법적인 아르바이트를 양산하기도 한다.

대학생 주모(23) 씨는 인터넷을 통해 ‘리포트 대행업’을 하고 있다. 각종 리포트 자료 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다른 학생들과 내용이 겹칠 것을 걱정하거나 편집해야하는 수고조차 덜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주요 고객이다.

보수는 10페이지당 2만5,000원 선으로 “교양 과목이 아닌 외국문학, 법학, 생물학 등처럼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경우는 추가 금액이 붙는다”는 것이 주 씨의 설명이다. 일부 미대생의 경우 중·고등학교 수행 평가에 필요한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는 소문도 있다.

이에 대해 한 취업 사이트 관계자는 “아르바이트를 선택할 때 높은 보수나 다양한 경험도 좋지만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졸업 후 기업 공채 때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3개월 이상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것이 구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충고했다.


방지현 객원기자 leina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