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노트북에서 휠체어까지… 주인 잃은 세상만물 다 모여

지난 2월 어느날 서울 지하철 3호선 약수역에서 열차를 탄 대학생 S씨.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앗” 하는 외마디 탄식을 내질렀다. 노트북 가방을 플랫폼 의자에 둔 채 지하철을 탄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것. 그는 황급히 약수역으로 되돌아 갔지만 가방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얼굴이 잔뜩 상기된 S씨는 역무원을 찾아 사정을 설명하고 가방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자신도 보름 동안 약수역을 헤매면서 가방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하지만 애타는 노력에도 별무소득. S씨는 쓰린 속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석 달여 지난 5월 초. S씨는 서울지방경찰청 유실물관리센터로부터 “노트북을 찾아가라”는 뜻밖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반갑기 그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경찰이 어떻게 자신을 찾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가방에는 인적사항이나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트북의 귀환,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까. 유실물관리센터 김우식 경사가 밝힌 자초지종은 이랬다.

처음 약수역에서 수거된 S씨의 노트북 가방은 주인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없었던 까닭에 서울메트로(옛 서울지하철공사) 유실물센터- 관할 경찰서- 서울경찰청 유실물관리센터 순으로 차례로 이관됐다.

김 경사는 혹시 하는 마음에 가방을 다시 한 번 샅샅이 뒤진 끝에 실낱 같은 단서를 발견했다.

구겨지고 빛바랜 항공권이었다. 즉시 항공사에 항공권을 이용한 승객을 찾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며칠 뒤 반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전화 예매 기록을 뒤져본 결과 2년 전 해당 항공권을 사용한 승객의 연락처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노트북 가방은 극적으로 S씨의 품에 돌아갈 수 있었다. 더욱 극적이었던 것은 항공권 승객이 S씨의 형이라는 점이었다. S씨의 형이 자신이 쓰던 노트북 가방을 동생에게 물려줬는데, 가방 안쪽에 단서가 된 항공권이 있었던 것.

하지만 S씨의 사례는 아주 예외적이면서도 운이 좋은 경우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면 되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아무런 인적 사항이나 연락처가 없는 물건의 경우 찾을 확률은 크게 낮아진다.

서울메트로 충무로센터, 하루 20여 건 접수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행하는 서울메트로가 지난해 관할 노선 열차와 역사 등지에서 수거한 유실물은 총 2만6,800여 건. 이 가운데 주인에게 되돌아간 물건은 대략 1만8,800여 건으로 70% 선을 기록했다. 외관상으론 괜찮은 반환율이다.

그러나 곧바로 주인을 찾지 못하고 시청역과 충무로역에 설치된 유실물센터까지 흘러 들어간 물건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 유실물 가운데 주인에게 반환된 것은 30%를 조금 웃돌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단계를 거칠수록, 반환 가능성이 낮은 유실물만 남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서울메트로 유실물센터 보관 창고에는 주인 잃은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루 평균 접수 건수는 대략 23건. 짧게는 당일 접수된 것부터 길게는 1년 6개월 가까이 보관 중인 것까지 모두 합쳐 6,000건을 훌쩍 넘는다.

접수된 유실물은 일단 분류 과정을 거쳐 1,000원 이상의 현금과 신분증, 휴대폰, 노트북, 전자제품, 귀금속 등 고가품은 관할 경찰서로 넘겨지고 나머지는 유실물센터에 보관된다.

최장 1년 6개월 동안 보관되지만 그때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유실물은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하거나 폐기 처분한다.

고가품을 건네 받은 관할 경찰서는 이후 14일 내에 유실물 공고를 내는 한편 각종 단서를 활용해 최대한 주인들에게 물건을 되돌려준다. 여기서도 주인을 못 찾은 물건들은 마지막 집하장인 서울경찰청 유실물관리센터로 가게 된다.

서울메트로 유실물센터는 그야말로 잡동사니 백화점이나 다름없다.

철제 선반을 층층이 가득 메운 유실물은 대부분 가방과 쇼핑백인데 내용물은 의류, 책자, 서류, 생활용품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특이한 사실은 가방의 경우 주인이 일용직이나 공장 노동자로 추정되는 물건들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 충무로역 유실물센터 이종금 대리는 “가방을 열어 보면 공장이나 건설현장서 일하는 분들의 작업복이 나오는 경우가 가장 많다. 술 한잔 하고 퇴근하다가 깜박하고 내린 게 아닌가 추측되는데 어쨌든 이런 가방을 살필 때는 어렵게 사는 서민들의 애환이 잔뜩 느껴진다”고 말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식기류, 가전 제품, 선물 세트 등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간혹 특이한 유실물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 대리는 “한번은 유실물을 정리하다가 신발까지 신겨진 의족 한 쪽이 나와 기겁을 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전동 휠체어가 들어온 경우도 있다. 주인들은 분명 거동이 불편한 분들일 텐데 도대체 어떻게 잃어버리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 했다.

지하철 유실물의 대부분은 종착역 역무원들이 수거하고 시민들이 직접 습득 신고를 해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특히 지갑은 현금이 들어 있는 채로 수거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 중간에 다른 누군가의 손을 타는 것이다.

유실물센터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하철을 돌며 주인 없이 방치된 물건을 쓸어 담는 ‘꾼’들도 적잖이 활동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 유실물관리센터 이현세 경사는 “보통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지갑 분실 신고가 50여 건 가량 쏟아지는데 습득 신고는 1~2건에 불과하다. 지갑에 현금이 들었다면 신고하지 않을 확률은 95% 이상 될 것”이라고 견물생심의 세태를 꼬집었다.

1년 지나면 습득자에 소유권

유실물은 접수된 날로부터 1년이 지나면 유실물 관련법상 습득자에게 소유권이 주어진다. 이때 습득자는 감정가액의 20%를 소득세로 내야 한다.

노트북이나 카메라 등 고가품의 경우 가끔 습득자가 잊지 않고 연락해 찾아가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안 찾아간다고 한다.

서울경찰청 유실물관리센터는 1년 6개월의 보관 기간이 지나면 재산 가치가 있는 유실물을 경매 처분해 국고에 귀속시킨다. 유실물 경매는 3개월마다 한 번씩 열리는데 대개 중고 물품을 취급하는 업자들이 늘 참여한다고 한다.

소유물은 한 번 자신의 손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 유실물센터 사람들은 그래서 가지고 있을 때 조금만 더 신경 쓰라고 충고한다.

웬만한 소지품에는 모두 이름과 연락처 등을 기록하는 버릇을 들이고, 지하철을 탈 때는 가급적 선반보다는 무릎 위에 물건을 올려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물건을 잃어버릴 공산이 줄어들 뿐 아니라 설령 분실한 경우에도 되찾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각 유실물 센터에 보관 중인 물건들을 쉽게 검색할 수 있어 이를 적극 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특히 유실물종합정보센터(www.lost114.com)는 지하철, 공항, 공공장소 등 분실 장소에 관계 없이 모든 유실물 정보를 실물 사진과 함께 볼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