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개원, 양·한방 협진 실험

▲ 통합암센터의 진료실 내부. 최원철 센터장(가운데)이 스텝들과 함께 컴퓨터 자료를 보면서 말기 암 환자의 치료 방향을 협의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세계 의학의 주류는 서양의학이다. 과학 기술 발달과 연구를 통해 꾸준하게 신약을 개발하고 새로운 수술법을 도입하면서 각종 질병 치료에 획기적인 실적을 거두어온 때문이다.

하지만 5,000년에 걸친 역사와 임상 경험을 가진 동양의학에는 서양의학에 없는 숱한 장점과 지혜가 숨어 있다. 최근 미국, 유럽 등지에서 침술과 대체 의학 등이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전통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모두 제도권 의학으로 인정하는 이원적 의료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두 의학의 장점을 융합하는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경희대가 12일 공식 개원하는 동서신의학병원(원장 유명철)이 주인공.

이 병원은 본관 18층, 별관 8층 건물에 800병상을 갖춘 서울 강동지역의 대형 종합병원이다. 인근에 있는 서울아산병원의 병상 수가 2,000병상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규모로는 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병원을 굴지의 종합병원들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진료 시스템부터가 판이한 까닭이다.

이 병원이 주목 받는 이유는 양ㆍ한방 협진을 통한 신의학의 기치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양방과 한방을 한 공간에서 함께 진료하는 단순한 협진체제를 넘어 전통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장점을 합쳐 전혀 새로운 의학, 즉 신의학을 창조하겠다는 선언이다.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드문 일이다.

양ㆍ한방 협진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그동안 대학병원 산하의 일부 한방병원 등에서 수 차례 시도한 바 있다. 경희대도 35년 전 병원 출범 당시부터 양ㆍ한방 병원 체제를 갖추었고 7년 전부터는 한방병원을 중심으로 양ㆍ한방 협진시스템을 운영해온 터다.

왜 신의학인가

양ㆍ한방 협진에 대한 그동안의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번번히 좌절을 겪었다.

전통과 치료 관점이 판이한 양ㆍ한방이 한 곳에서 공존한다는 게 말처럼 쉬울 리 없다. 협진의 어려움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실은 진료영역을 둘러싼 양ㆍ한방 의사들 간의 극심한 이해 대립이 결정적인 장애물이었다.

양ㆍ한방 협진은 고사하고 몇 년 전부터 국내 대학병원들이 경쟁적으로 도입 중인 전문센터체제에 의한 진료과목별 협진체제 조차 진료영역을 둘러싼 전문의들 간의 신경전으로 현재도 삐걱대고 있다.

“7년간의 양ㆍ한방 협진체제 가동 경험이 신의학병원 설립의 밑바탕이 된 것”이라는 이 병원 유지홍(소화기내과 교수) 협진처장은 “양방과 한방의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큰 것으로 확인된 진료 분야에 국한해 신의학에 대해 열린 마인드를 가진 의사들이 주축”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다른가

양ㆍ한방을 하나로 아우르는 이 병원의 협진센터는 진료과를 한 센터 내에 모아 놓은 질환 중심의 체제다.

병원을 찾은 환자가 증상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는 불편함 없이 원하는 진료 서비스를 한 곳에서, 언제든지 받을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서로 다른 이론과 배경을 가진 양ㆍ한방 의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 명의 환자에 대한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내자는 취지다.

이를 보완하는 코디네이터 시스템도 도입했다. 코디네이터는 검사, 진료, 수술 등 치료 과정마다 환자와 동행하면서 이들의 번거로움과 대기 시간을 줄여주는 것은 물론 전문적인 의학적 식견을 갖추고 치료 조언까지 해준다.

▲ 동서신의학 류마티스·관절센터에서 한 환자가 봉독치료를 받고 있다.

이 병원 진료시스템의 중심축인 ‘동서협진센터’는 중풍ㆍ뇌질환, 통합암센터, 관절ㆍ류마티스와 척추, 한방음악치료, 건강증진 분야 등 9개의 센터를 산하에 두고 있다. 환자들이 양ㆍ한방 어느 한 쪽의 진료를 받다가도 원할 경우 즉시 다른 쪽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병원의 진료ㆍ치료실 풍경은 다른 병원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통합암센터에서는 모든 암 환자를 보지 않는다. 전이가 된 말기암 환자 치료 분야에 중점을 둔다.

암센터 최원철 교수는 “생약을 자외선으로 태워 그 기운을 말기 암 환자에게 투여함으로써 생존율을 높일 것”이라며 “암 치료는 1기, 2기, 3기, 4기 등 증상 단계별로 전문화해야 치료 효과가 높다”고 암 치료 방향에 대한 나름의 해법까지 내놓았다.

한방음악치료센터는 ‘한방음악 치료’라는 전혀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한의학의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음양오행 이론은 간신비폐신(肝心脾肺腎)의 오장육부, 각치궁상우(角徵宮商羽)의 국악 5음계 등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오행과 사상체질의 이론에 따른 순수 학의학적 치료법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암 환자, 뇌경색 등 심혈관 질환, 당뇨환자들이 치료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주변 반응과 앞으로의 과제

신의학병원의 출범에 대한 의학계 안팎의 반응이 환영 일색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아우르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의사들이 있는가 하면 마뜩찮아 하는 의사들도 상당하다.

또한 양ㆍ한방을 아우르는 신의학이란 게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관망파도 있고 양방과 한방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의 보조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론자도 있다.

신의학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게 그 중 하나다. 기존 의료법에 따르면 양방과 한방 병원을 한 공간에서 진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 동서신의학병원 본관 건물.

이 병원의 경우 양방과 한방을 층별로 별도의 공간에 분리 배치하는 고육책을 썼다. 그리고 양ㆍ한방 통합의 우수성을 실제 검증해 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양방과 한방병원의 진료를 각각 따로 받을 때보다 비용도 저렴하고 치료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것.

동서신의학병원 측은 이에 대해 “오랫동안의 협진 경험에서 이미 치료 효과와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확인된 분야를 위주로 시스템이 운영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송강섭 차장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