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심마니' 전훈일 변호사 산에서 약초 캐며 활력 재충전… "산삼이 아닌 건강을 캐러 갑니다"

“홍(紅)더덕이다~.”

몇 걸음만 떨어져도 서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울창한 참나무 숲에서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뿌리가 빨간 색을 띠는 홍더덕은 더덕 중에서도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것. 100뿌리를 캐면 겨우 한두 뿌리를 캘까 말까 할 정도로 귀하다. “아까도 캤는데 또 나왔단 말이야?”

4일 충북 영동의 삼도봉 자락의 깊은 산속에서는 두런거리는 말소리와 함께 희열에 찬 외침이 간간이 들렸다. 어두컴컴한 삼림 비탈에서 땅을 헤집는 사람들 가운데 건장한 체구의 한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능숙하게 산을 타고 다니며 더덕 넝쿨을 발견하고 이를 캐내는 솜씨가 영락없는 산사람이다.

낡은 전투화에 군복바지, 점퍼를 걸쳐 입고 산을 누비고 다니는 이 사내는 전훈일(39) 변호사. 2년 전만 해도 법정을 드나들었던 검사였고 현재는 대형 로펌에서 꽤나 잘 나가는 변호사이다.

이쯤하면 그가 취미로 산에 다니며 산나물이나 뜯는 사람이겠거니 하겠지만 알고 보면 두 차례에 걸쳐 산삼을 14뿌리나 캐낸 진짜 심마니이다. 주말에만 심마니로 변신하지만 1년 내내 산에서 사는 웬만한 심마니들보다 ‘심’을 많이 본 것이다.

그는 골프나 등산 등 고상한 취미를 제쳐두고 왜 주말마다 곡괭이를 들고 다니는 심마니가 됐을까.

“공직에서 물러난 후 좀 여유가 생기다보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오랜만에 맡아보는 산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 건강도 다지고 운 좋으면 산삼도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게 어디 있나요?”

전북 진안 마령 출신인 그는 중학교 졸업 때까지 시골에서 농사도 짓고, 심도 찾으러 다녔던 ‘깡촌놈’이었다. 산야에서 나는 각종 나물과 약초를 구별하는 방법도 그때 익혔다.

공직 물러난 뒤 본격 산행 시작

그가 신비의 영초를 만난 것은 산에 오른 지 두어 달 만이다.

2004년 7월4일 새벽 전국에 태풍주의보가 내리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가운데 10여 분쯤 산행을 했을 무렵이었다. 산 정상 부근의 바위 벼랑 밑 참나무가 우거진 부분에 산삼이 호방한 자세로 이파리를 하늘을 향해 내민 채 버티고 있었다.

“정말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나 같은 초보 심마니 앞에 산삼이 나타나다니 믿어지지 않았죠. 같이 산에 오른 일행을 향해 ‘심봤다’를 외쳤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어요. 세 번째 외치니까 그때서야 사람들이 오더군요. 나중에 들어보니 모두들 ‘흥, 산삼이 아무 때나 나타나는 줄 알아?’하면서 코웃음 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일행들이 도착하자 우선 산삼을 향해 3배부터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심을 캤다. 산삼에 쇠가 닿으면 상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뿌리 하나라도 끊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캐고 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정말 감격스러웠죠.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고, 발 아래에는 구름이 밀려왔습니다. 산삼을 캐고 있을 때 산허리를 휘감고 돌아오는 구름이 얼마나 신비스럽던지,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발견된 산삼은 모두 씨앗이 자연적으로 떨어져 싹을 틔운 천종으로 이 가운데 한 개는 가지가 세 개인 3지(枝)에 30~40년생이었다. 나머지는 가지가 2개인 20~30년 생과 가지가 한 개짜리였다. 가격으로 치면 모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것이었다.

열 뿌리 가운데 한 뿌리는 종자를 남겨두기 위해 캐지 않았고, 아홉 뿌리만 거두었다. 그는 한 뿌리는 산삼을 캐는 걸 도와준 일행에게 주고 나머지 여덟 뿌리를 챙겨 곧바로 고향집으로 가서 부모와 가족들이 한 뿌리씩 나눠 먹었다고 한다.

“당뇨로 고생하는 아버님께 제일 큰 것을 드리고, 그 다음은 어머니, 저, 아내, 애들 3명이 순서대로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나니 한 뿌리가 남았습니다. 고민했죠. 작은 아버지를 드릴까, 아니면 동생을 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버님이 ‘야 내가 한 뿌리 더 먹을란다’하시며 일시에 고민을 해결해주었습니다.”

그는 산삼을 캐기 전날 밤에 꾸었던 꿈 얘기도 들려주었다.

“어떤 골목과 큰 길이 만나는 곳에서 사람의 시신을 봤어요. 머리가 없는 시신이었죠. 산에 오르면서도 희한한 꿈이다 싶어 한편으로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산삼을 발견한 곳에 이르렀을 때, 꿈에서 본 골목길이 떠올랐어요. 왜냐하면 앞의 바위절벽과 절벽 밑의 평평한 곳이 꿈 속에서 본 골목길과 담벽과 비슷했습니다. 바로 머리 없는 시신이 놓여있던 곳에 산삼이 있었던 것입니다.”

산삼을 먹은 다음 어떤 변화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당뇨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던 아버님의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전에는 어깨든 허리든 아프지 않은 데가 없으셨는데 그걸 드시고는 거의 그런 말씀을 안 하십니다. 저도 한 뿌리 먹었는데, 특별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다만 음주량이 전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어나도 취하는지를 모르겠더군요.”

하루에 야생더덕 200뿌리는 너끈

▲ 주말이면 심마니로 변신하는 전훈일 변호사. 요즘에는 주로 산더덕을 캐러 다니지만 가끔씩 산삼을 찾기 위해 산을 쏘다니기도 한다.

그는 올해 5월 5일 경상북도 영덕의 칠보산에서도 네 뿌리를 더 캤고 역시 친지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요즘 관심은 산삼 찾기보다는 자연과 호흡하며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두 차례나 운 좋게 산삼을 만날 수 있었지만 앞으로 그러한 행운을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상쾌한 공기를 쐬며 도심 속에서 찌든 속때를 날려버리는 것만으로도 얻는 게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에는 심보다는 더덕을 주로 노린다. 실제로 한 번 산에 오를 때마다 야생 더덕 200뿌리 정도는 너끈히 캔단다.

그는 출근 때면 직접 캐온 야생더덕을 가지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 뿌리씩 나눠주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한다. “산에 가서 직접 캐온 더덕이라고 설명하면 다들 좋아합니다. 반드시 그 자리에서 먹도록 하는데 그러고 나면 저를 오랫동안 잊지 않더라고요.”

그가 매주 산을 쏘다니면서 얻은 것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건강이다. 따라서 하루종일 산을 쏘다닌 후 하산할 때 배낭이 가벼워도 마음만은 흐뭇하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산삼이나 더덕을 먹는 사람보다 그것을 캐러 다니는 사람이 더욱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등산이 아니라 산에 몸을 맡기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과 호흡하는 게 최고의 건강비결이죠. 산에서 캐는 것은 약초가 아니라 바로 건강입니다.”


영동=글·사진 최진환 기자 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