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여중·강남초등학교 르포교사·학생·학부모가 함께 만들어가는 '사랑이 꽃피는 학교'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학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또 다른 중학교 여교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 지난 5월, 스승의 은혜를 되새기자는 뜻 깊은 달에 학교에서 잇달아 벌어진 참담한 풍경이다.

어쩌다 교육 현장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공교육이 붕괴되고 교권(敎權)이 추락했다지만 과연 이 정도였는가. 사건을 접한 국민들은 오늘 우리의 학교가 처한 암울한 현실에 충격과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학교가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의 세 주체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면서 미래를 열어 가는 학교는 분명 우리 주변에 남아 있다. 교사는 사랑으로 이끌어주고 학생은 진심으로 따르며, 학부모는 관심을 갖고 성원해 주는 교육 현장 원래의 모습을 지켜나가는 학교들을 8일 찾아가 봤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백련산 자락에 자리잡은 정원여자중학교(국중근 교장)는 앞선 교육 환경과 철저한 인성 교육으로 교육계에선 이름난 학교다.

우선 컴퓨터실, 과학 실험실, 음악실, 무용실은 물론 골프 교육장까지 갖춰진 교육 환경은 선진 교육 인프라의 사례로 손색이 없다. 일본, 호주 등의 교육 관계자들도 학교를 견학한 뒤 감탄했을 정도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학생들의 평소 생활태도다. 이 학교 학생들은 복도나 교정을 오가다 선생님과 마주치면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게 습관화돼 있다. 물론 외부 방문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간혹 정원여중을 방문하는 타 학교 관계자들은 허리를 깊이 숙여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워낙 이런 광경을 보기가 힘들어진 게 요즘 세태이기 때문이다.

선진 교육 인프라와 철저한 인성교육

정원여중의 교육은 다른 무엇보다 생활 지도와 예절 교육에서 출발한다.

학생들은 기본 생활 예절과 전통 예절을 실습을 통해 익히면서 문화 시민의 소양을 길러 나간다. 이에 대해 국중근 교장은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교에서부터 규율과 질서를 준수하는 습관을 길러야 사회에 나가서도 바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생활 지도와 예절 교육을 강조하다 보니 학교의 규율도 엄할 수밖에 없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은 어김없이 벌점을 받고 청소 등 봉사활동을 하게 한다. 벌점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누적되면 학부모도 함께 봉사활동에 불려 나온다.

그런데 요즘처럼 학부모의 입김이 드세고 아이들 다루기가 곤란한 시절에 어떻게 이런 엄격한 규율의 적용이 가능할까. 해답은 학부모, 학생의 자발적인 동의에 있다.

정원여중은 매년 3월 전체 학부모 연수를 실시한다. 이 행사는 학교의 교육 방침과 생활 지도 규정을 학부모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자리다.

학생들에게는 학생 대표인 학생회를 매개로 동의를 구하고 신입생들에게도 학사 운영 소개 책자를 배포해 미리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한다. 처음부터 교사, 학생, 학부모가 서로 지켜야 할 규범과 규칙에 대해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원여중의 학내 분위기가 딱딱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교정과 교실 곳곳에서 마주친 학생들의 표정은 같은 또래의 여느 아이들보다 밝다.

국 교장은 “아이들이 밝은 모습으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교직원 전체가 ‘오고 싶은 학교, 머무르고 싶은 학교’라는 모토로 학교를 가꿔 나가기 때문”이라고 자랑했다.

정원여중은 학생 상담을 상당히 중시한다. 담임 교사, 진로 상담부 교사, 전문 상담 요원 등이 이중 삼중으로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줌으로써 애초부터 일탈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공평무사하게 대하고 교직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학생, 학부모의 신뢰를 얻는 중요한 원천이다. 이재령 교감은 “우리 학교는 선생님들이 재산이다. 선생님들이 모든 활동에 정성을 다하고 열성적인데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원여중은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어우러지는 단합 행사도 자주 갖는다. 체육회, 바자는 물론 추석 전에는 송편 빚기 대회도 연다. 등교 전후 학생 선도 활동에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나서기도 한다.

이를 통해 얻는 것은 서로에 대한 교감(交感)이다. ‘학교다운 학교’로 바로 선 정원여중의 비결은 바로 그것일는지 모른다.

'선생님 섬기기'로 교사 자존심 되살려

지난 3월 15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강남초등학교(김철규 교장)에서는 전체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선생님 섬기기 선포식'이라는 이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주도한 이는 김철규 교장. 교직 사회가 불신을 받는 상황에 김 교장은 어떤 생각으로 '선생님을 섬기자'는 주장을 하고 나섰을까.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것은 학습의 출발점이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무시하는데 진정한 학습이 이뤄질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교사들에 대해 불신을 가진 학부모 중에는 아이들 앞에서 공공연히 선생님들을 비하하고 욕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말을 들은 아이들이 과연 선생님에게 제대로 배울 수 있겠는가."

김 교장이 밝힌 '선생님 섬기기' 운동의 배경이다.

그는 교권이 날로 약화하고 위축돼 가는 풍조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은 개개인의 자질을 떠나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길러내는 주역인데 마냥 깎아 내려서 도대체 얻을 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김 교장은 교권이 추락한 오늘의 현실에 대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보다 교사의 자존심을 되살리는 일을 먼저 하자고 부탁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선생님 섬기기'라는 것.

그는 지난해 부임한 직후 기존 학부모회를 '선생님 섬기기 학부모회'로 바꿨다.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해가 없으면 교권 확립은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따라 학급별로 2명씩 선발된 학부모들은 다른 학부모들에게 교권의 중요성을 알리고 설득하는 선생님 섬기기 '홍보 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장은 또한 어머니회도 학부모, 교사,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지식을 얻고 교류할 수 있는 '평생교육 아카데미'로 전환했다. 어른들이 공동의 이슈를 갖고 공부하고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의 차이가 좁혀질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는 학습의 본보기가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학생,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선생님 섬기기 캐릭터' 그리기 대회도 열었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선생님 섬기기 배지'도 공모해 학생, 학부모, 지역 주민들에게 보급할 작정이다.

다소간 이벤트성이 가미되긴 했지만 스승 존중 풍토를 확산하는 상징적 수단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강남초등학교의 이 같은 노력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동작구청과 구의회, 교육청 등에서는 다각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

김 교장은 "우리가 시도하는 교육 방식의 정착 여부는 지역 사회와 함께 할 때 뿌리가 튼튼해진다고 본다. 앞으로 강남초등학교에 머물지 않고 동작구 전체가 교육이 살아 숨쉬는 학교 주도형 평생 학습 터전이 됐으면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모두들 우리 학교가 무너졌다며, 또한 교육에 미래가 없다며 탄식한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꽃은 피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어렵사리 피운 꽃을 더욱 가꾸고 보호해 나가는 것이다. 두 학교를 찾아가 그 작은 희망을 봤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