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시어지 · 아쿠아리스트 · 조향사… 프로정신과 근성 필요

질문 하나. 파티쉐, 컨시어지, 아쿠아리스트, 조향사, 네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TV드라마에 등장한 이색 직업이다. 지난해 '삼순이 바람’이 안방극장에 거세게 불자 주인공 삼순이가 프랑스에 유학 가서 배워온 직업인 파티쉐는 단연 선망의 대상이었다.

파티쉐는 쉽게 말하면 '제과사, 제빵사'와 같은 말이다. 하지만 프랑스식 이름에서 풍기는 이국적인 고상함과 낯설음이 겹쳐 파티쉐는 당시 20, 30대 젊은 구직자 및 이직자들에게 크게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때 아니게 제빵학원에 수강생이 몰렸고 기술을 배우려고 프랑스에 유학간 사람들도 많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요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직업이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KBS '미스터 굿바이'의 컨시어지, MBC '어느 멋진 날'의 아쿠아리스트, SBS '스마일 어게인'의 조향사가 바로 그것이다. 극 중 주인공의 직업이다보니 일부 모습이 과장되거나 미화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실제 생활모습은 어떨까.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봤다.

컨시어지 전현주 씨
못하는 일 없는 '호텔 만능해결사'

컨시어지(concierge)의 원래 의미는 호텔의 '문지기'이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호텔의)접수계나 관리인'으로 짧게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컨시어지는 이런 단순한 의미를 넘어, 고객의 불편함을 듣고 손과 발이 되어 '별 걸 다 해주는 사람'을 지칭한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근무하는 전현주(31.여) 씨는 경력 7년차의 컨시어지다. 지난 6월 27일 호텔 로비에서 만난 전 씨는 깔끔한 유니폼 차림과 큰 키에 얼굴도 미인이다. 눈에 확(?) 띈다.

“안내하는 말투가 직업병 아닌 직업병이 되어 입에 배겼다"는 그가 던진 첫 인사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였다.

전 씨의 모습은 TV에서 보여지는 실수투성이의 덜렁거리는 이보영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전 씨가 여기서 하는 일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못 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자신에 차 말한다. 무특기가 특기인 셈이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전 씨는 졸업 후 전공을 접고 대신에 평소 관심을 뒀던 호텔 일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에 이 세계에 뛰어들었다.

"반드시 호텔경영학과를 나와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들보다 뒤늦게 시작했기에 더 열심히 준비한 것은 사실"이라는 전 씨가 특히 중점을 둔 것은 외국어. 덕분에 그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할 수 있었다.

"호텔 고객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사람이 컨시어지이기 때문에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호텔의 첫인상을 좌우할 만큼 아주 중요하다"는 전 씨는 "영어와 일본어 회화는 기본이고 중국어와 불어는 옵션"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아예 'Evelyn Jeon'이라는 영어이름까지 지었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면서 자부심을 느끼지만 종종 짓궂은 요구로 마음고생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야근할 때 일부 고객이 간혹 성적인 서비스를 요구한다는 것. 그럴 땐 직업을 설명하고 정중히 거절한다. 어찌보면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처리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업무이기 때문이다.

오전, 오후, 야근 등 3교대로 나눠 근무하는 그녀는 오늘은 ‘오전 파트’라 오전 7시부터 150여 개가 넘는 룸을 체크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투숙객의 취향에 맞춰 칫솔 하나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정오가 다 되어서야 룸 체크가 끝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벨소리 때문에 교대 시간인 오후 4시간까지 앉아 있을 틈조차 없다. 야근 때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호출에 대기하느라 밤을 꼬박 새워야 한다.

별로 특이한 직업이 아닌데 드라마에서 너무 미화하는 거 같다고 걱정하던 전 씨는 "그래도 컨시어지는 여성들이 도전할 만한 직업”이라며 “호텔에서 수시로 모집하기 때문에 이력서 정도는 미리 써 놓으라"고 권유한다.

아쿠아리스트 박선경 씨
수조 속 인어공주… 체력소모 많아

투명한 에메랄드 빛깔의 수조 속에 물고기들과 함께 유영하는 인어공주. MBC '어느 멋진 날'에서 여주인공 성유리가 연기하는 아쿠아리스트(aquarist)의 모습이다.

63빌딩 수족관 '씨월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선경(25.여) 씨도 육지보다 물속의 생활이 더 익숙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그녀의 직업은 쇼 다이버. 쇼가 주된 업무인 아쿠아리스트다.

우아함이 느껴지는 직업 이름에 걸맞게 그는 자신을 '백조'라고 칭한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밖에서 볼 때는 우아하지만 수조 안에서는 오리발을 흔드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박 씨의 하루는 오전 11시에 출근하면서 비교적 늦게 시작된다. 수중 쇼가 없는 오후 3시까지는 수조 청소와 먹이가 되는 오징어를 손질하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또한 공연이 시작되기 전 수조를 청소하는 것도 박 씨의 몫.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오후 3시를 넘기면서 한 시간 뒤로 다가온 공연 준비를 위해 박 씨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진다. 다이빙 슈트, 오리발, 산소통 등 그가 챙겨야 할 장비가 만만치 않아서다.

‘인어공주 쇼'와 '바다표범 쇼'로 나눠 하루 6번 열리는 공연은 한 번에 보통 5분 정도 걸린다. '그 까이거 5분'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5분간 물속에서 쉼없이 움직여야 하는 박 씨의 체력 소모는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엄청나다.

2m높이의 수조 속은 무려 200톤에 가까운 물로 채워져 있다. 또한 바다 속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물을 회전시킨다. 수영장에서 수영할 때보다 갑절 이상으로 힘이 든다. 아쿠아리스트가 되기 전 수영강사로 일했던 박 씨도 처음엔 하루 일을 끝내고 나면 파김치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바다표범이나 백 살이 넘은 거북이도 그가 물속에 있을 때는 공포의 대상이다. "둘 다 무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박 씨는 "물려보지 않고는 그 고통을 모를 것이다"고 웃는다.

하지만 웃지 못할 돌발 상황도 종종 벌어진단다. 박 씨도 며칠 전 낯뜨거운 경험을 했다. 쇼 중간에 먹이를 주면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드는 화려한 군무를 연출해야 하는데, 그날 따라 단 한 마리도 자신의 근처에 오지 않아 관객들 앞에서 톡톡히 망신당했다는 것. 그렇지만 수조 밖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관람객을 볼 때는 피로를 잊고 일하는 성취감을 느낀다고 한다.

물을 좋아하고 거기에다 바다 생물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아쿠아리스트. "직업의 희소성(63빌딩 씨월드 경우 쇼 다이버는 4명뿐)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라는 박 씨는 "필요할 때만 채용하기 때문에 항상 인터넷 공고를 주시해야 하며, 그 이전에 인명구조나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놔야 유리할 것이다"고 말한다.

조향사 안애진 씨
후각과 씨름하는 '향기나는 삶'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가 난다', '길들여 지지 않는 남자', '아름다운 개인주의'.

향(香)과 관련된 광고 카피들이다.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에 우리는 매일 다양한 향기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향을 디자인 하고, 상품에 향기를 입히고, 고객 몸에 가장 알맞은 향기를 찾아주는 이들이 조향사(perfumer)다. ‘스마일 어게인’에서 이동건이 맡은 역이다.

개인 맞춤형(DIY) 향수를 만드는 안애진(25.여) 씨는 늘 향에 푹 빠져 산다. 오죽했으면 별명마저 치약에 주로 쓰이는 '상쾌한 향'의 대명사인 페퍼민트일까.

오감 중 가장 민감하고 쉽게 피로해지는 후각과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남들과는 아예 다른 생활을 한다. 톡 쏘는 농도 짙은 향기들로 가득 찬 그녀의 연구실은 마치 중고등학교의 과학실을 방불케 한다. 향료 배합에 필요한 플라스크, 스포이드, 알코올램프에 전자저울까지 갖추고 있다.

안 씨가 연구실에 도착하는 오전 8시, 후각 훈련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건 라벤더… 저건 무스크…”

"향에 대한 감각 유지가 직업의 생명"이라는 그는 실험대 위에 놓인 217가지의 향료에 무작위로 블로터 스트립(향을 맡는 종이)을 꽃아 넣고는 코에 갖다댄다. 이 훈련을 반복해야 향료 이름은 물론이요, 100만분의 1g의 미세한 중량 차이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프로급 조향사들은 3,000개가 넘는 향을 구별해 내지만 아직 경력 2년에 불과한 안 씨는 이제 겨우 200여 가지를 구분하고 있단다. 이 때문에 안 씨는 후각 훈련의 강도를 높여 아침, 저녁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향료와 신물이 날 정도로 씨름하고 있다.

그러나 안 씨는 힘들어도 "새로운 향을 만들어 냈을 때의 그 '코 맛'은 이 일을 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고 나름대로 직업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안 씨는 또 주변 선남선녀들에게 '커플매니저'로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바로 그가 만들어 준 일명 '너 만의 향수'로 인해 프로포즈에 성공한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도 한 병 만들어 줄 수 없겠느냐"고 필자가 요청하자 "그냥 재미삼아 향기를 만들어 준 것 뿐"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조향사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3년의 수련과정이 필요하며 프로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경력이 10년은 넘어야 된다”고 말하는 안 씨는 그래서 자신은 아직은 배우는 중이기 때문에 조향사라고 불리기엔 이르다고 겸손해 한다. 다만 안 씨는 "언젠가 향기 전시회를 여는 것이 꿈"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힌다.


신동민 객원기자 east081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