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은퇴시기인 2010년 전후 고도성장기 진입 전망

대한상공회의소가 얼마 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버산업은 2010~2020년 10년 동안 연 평균 12.9%에 달하는 ‘고도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됐다. 같은 기간 기존 산업 전체의 성장률이 4.7%에 그치는 데 비해 요양(6.6%), 의료기기(12.1%), 정보(25.1%), 여가(13.7%), 금융(12.9%), 주택(10.9%) 등 실버산업 각 부문은 큰 폭의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것.

이는 2008년 무렵이 되면 한국전쟁 이후 출생한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실버산업의 수요층을 본격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상의는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10%를 넘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2008년은 실버산업이 질적, 양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일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전망과 달리 국내 실버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0년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7%를 넘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했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변화인 까닭에 대응 태세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의 보고서도 국내 실버산업의 본격 성장 시점은 베이비붐 세대가 70대에 접어드는 2025년께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실버산업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분야별로 현주소를 살펴봤다.

의료ㆍ요양 서비스

평균 수명 연장에 따라 치매나 중풍 등으로 전문적인 요양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인이 급속히 늘고 있다. 요양 보호 대상자는 2003년 59만 명에서 2010년에는 79만 명, 2020년이면 114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의료기관의 가정간호사업, 보건소의 방문간호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독립형 민간 가정간호사업은 법적 근거가 없어 민간의 참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에 비해 개호보험(간병 혹은 수발보험)을 실시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재가(在家)요양 서비스에 대한 민간 참여가 크게 늘어 방문간호사업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시설요양 서비스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노인성 질환 및 의료 수요 증가 추세에 비해 노인전문병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004년 기준으로 전체 요양시설의 수용 능력은 고령자 수요를 31% 정도밖에 충족하지 못해 요양병원 및 시설의 추가 설립이 시급한 상황이다.

주거 및 복지시설(실버타운)

실버타운은 택지를 확보하는 단계에서부터 걸림돌이 많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노인들은 도심 근처를 생활공간으로 선호하지만 주택 부지가 부족한 데다 땅값 부담이 커 실버타운 건설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땅값이 저렴한 도시 외곽 지역 역시 도시계획법 등 규제로 인해 사업 진행이 가로막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한 실버타운은 노인복지법에 규정돼 있지만 지원 근거가 없어, 주택법의 적용을 받는 일반 주택과 같은 자금 지원, 융자 등의 혜택을 볼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민간 공급업체 진입이 저조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노인들이 실버타운을 선택할 수 있는 폭도 좁다. 현재 공급되고 있는 실버타운의 상당수는 비교적 경제력이 있는 노인들에게만 문이 열려 있다. 일반 주택보다 건축비가 비싸기 때문에 분양가나 이용료 부담이 높기 때문이다.반면 저렴한 가격에 분양 또는 임대하는 실비노인복지주택과 유료노인복지주택은 거의 공급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민층이나 저소득층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노인 주거 형태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용구, 용품, 복지기기

노인들의 실버용품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국내 관련 산업의 수준은 극히 낮은 실정이다. 국내 실버용품 및 의료복지기기 제조업체의 55%가 자산 규모 1억원 미만의 영세 기업들이다. 이처럼 재정구조가 열악하다 보니 연구개발 능력도 취약하고 상품의 종류나 품질도 떨어지고 있다.

이런 까닭에 국내에 유통되는 실버용품의 60~80%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판매 경로는 주로 양로원, 복지관, 요양원, 노인병원 등인데 그나마 전문 취급점과 유통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아 일반 노인들의 인지도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역시 부족하다. 상품 개발 후 품목 허가까지 장시간이 소요돼 상용화가 지연될 뿐 아니라 품질 규격 인증이나 표준화 제도도 확립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민간의 시장 진입을 더욱 힘들게 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금융 상품ㆍ자산관리 서비스

노후 의료비 부담에 대비한 ‘노후 케어보험’은 실수요층인 예비 노인들의 인식 부족과 보험료 부담으로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주택을 가지고 있지만 일정한 소득이 없는 노인들을 위한 주택담보 대출인 ‘역모기지론’도 아직까지는 실적이 저조해 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출 계약 잔고는 411건 523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노인들을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 부문도 고액 자산을 가진 일부 부유층 노인을 위한 프라이빗뱅킹 영업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금융기관의 다양한 상품 개발 사례는 거의 없다.

여가ㆍ문화생활ㆍ정보

국내 고령자들은 여가가 많아도 단체나 모임에 참여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간 노인휴양시설이 극히 적은 데다 문화, 관광, 레저, 스포츠 분야 등에서 노인을 위한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민간 업체의 참여도 부진하다. 전문가들은 노인휴양시설과 관련 상품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민간 자본의 투자 확대를 유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005년 현재 60대 이상 노인의 컴퓨터 및 인터넷 이용률은 각각 20%와 10% 수준에 그쳐 전체 국민의 69%, 66%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정보 격차가 삶의 질의 차이로 이어지는 시대인 만큼 노인들에 대한 정보화 교육 확대, 노인들을 위한 콘텐츠 개발 등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인터넷 업계 일각에서는 향후 노인 전문 사이트가 가장 유망한 인터넷 사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