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한옥 실버산업협회 회장

“돈 있는 노인들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이들을 위한 주택이나 금융, 용품, 의료, 여가 등의 상품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요. 심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엔 실버산업 자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대한실버산업협회 김한옥 회장은 국내 실버산업의 현실에 대해 냉정한 진단부터 내렸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실버산업은 아직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에 따르면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이웃 일본의 실버산업 규모는 한국의 약 40배. 단순 산술 비교만으로도 국내 실버산업의 현주소가 극명히 드러나는 셈이다. 3일 그를 만나 국내 실버산업의 현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제언을 들어봤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로 실버산업의 미래를 밝게 보는 전망이 많은데.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 특히 저출산 때문에 고령화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구조가 고착화되면 우리나라의 미래에 큰 짐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고령 인구의 증가뿐 아니라 경제력을 갖춘 노인들이 늘어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전체 개인 자산의 60% 이상을 65세 이상 노인들이 보유하고 있다. 즉 노인 계층이 젊은 세대에 비해 돈을 훨씬 많이 갖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가고 있다. 일본의 실버산업 규모는 한국의 40배에 이른다. 뒤집어 보면 한국의 실버산업은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실버산업이 노인들만을 위한 산업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정부의 과감한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고령사회에 대비해 각종 정책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어떻게 보나.

정부가 고령친화산업 기본법도 제정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간에서 실버산업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이나 규제 완화 등을 서둘러야 하는데 이런 조치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 업계에서 답답해 하는 것도 이런 대목이다.

-실버산업에 대한 정부의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것인가.

실버주택(실버타운)을 예로 들어보자.

노인 본인이 실버주택을 분양 받아 입주하려고 했을 때 취득세, 등록세가 붙는다. 또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실버주택을 사드리면 증여세가 붙는다. 뿐만 아니라 실버주택에는 양도세와 상속세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사실상 일반 아파트와 다를 바 없는 조건이다. 이런 까닭에 노인들은 마음이 있어도 선뜻 실버주택 분양 받기를 주저하게 되고 그 결과 공급자들도 잘 안 짓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아기 기저귀에는 부가가치세가 면제되지만 노인용 기저귀에는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이런 사정만 보더라도 실버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실버타운에 대해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크게 늘어 업계에서도 건립 붐이 일고 있는 듯한데.

노인들의 실버타운 수요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 덕분에 공급 대기 물량도 꽤 된다. 지금 수도권만 따져도 실버타운 건립 계획을 검토 중인 지역이 100곳을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버타운은 옛날 양로원 개념과 다르다. 거기에 들어가면 운동,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건강관리가 수월하고 각종 여가 프로그램 덕분에 즐겁게 지낼 수 있다. 한마디로 노인들에게는 너무 편리한 곳이다.

65세 이상 노인 상대 여론조사를 보면 실버타운에 입주하고 싶다는 의견이 30% 이상 나온다. 지금 국내 인구의 10% 정도가 65세 이상이니까 서울에만 65세 이상 노인이 100만 명 산다고 볼 수 있다. 그중 30만 명이 실버타운의 잠재 수요라는 얘기다. 다만 노인들도 경제력이나 거주 지역이 천차만별인 만큼 앞으로는 이에 맞춘 다양한 실버타운 상품이 나와야 할 것이다.

-실버용품, 금융이나 여가 상품 등 다른 실버산업 분야는 어떤가.

특히 용품 분야 업체들은 아주 영세한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지금 유통되는 노인 용품은 대부분 수입품인 실정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국내 용품 산업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수입품들이 판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산업자원부는 실버용품 산업단지 조성 등 몇 가지 정책 대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금융 등 다른 분야도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외국의 실버산업 현황은 어떤가. 특히 일본의 경우가 궁금하다.

일본은 이미 20여 년 전에 고령화 사회에 들어갔다. 물론 우리와 의식구조나 사회 환경 등이 다르지만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제도와 시스템을 개선한 일본에게서 배울 점이 적지 않다. 실버타운의 모범적 운영은 물론이고, 용품 산업에도 미쓰비시 같은 대기업들이 진출해 있을 정도로 실버산업이 활성화돼 있다.

노인 용품 같은 경우 구매하거나 렌트할 때 개호보험(남의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을 위한 일종의 수발보험)에서 90% 이상 비용 지원이 이뤄지는 등 수요자에 대한 배려도 눈여겨볼 만하다.

-실버산업 발전을 위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정부는 돈 없고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복지’ 차원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고, 민간은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수요자들이 원하는 실버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공급할 몫이 있다. 민간과 공공 부문이 각자의 영역에서 공조 체제를 갖출 때 국내 실버산업도 활짝 꽃필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의 실버 세대가 과거 노인들과 차별화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요즘 실버 세대는 고루하고 나약하고 의존적인 예전 노인상을 탈피했다. 이들은 젊었을 때보다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며 자식들에게 기대거나 함께 사는 것도 싫어한다.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경제력을 확보한 게 가장 큰 배경이다. 이들 실버 세대가 밝고 활기찬 노후의 삶을 추구하는 한 실버산업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