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등록제·상품권 도입 사행열기에 불 지펴… 허술한 심의제도도 한몫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문화관광부의 과욕이 빚은 파국인가.

성인오락실 ‘바다이야기’ 파문이 전국을 휩쓸면서 주무 부처인 문화관광부의 게임산업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사행성 게임에 대한 문광부의 치밀하지 못한 심사와 느슨한 규제가 온 나라를 도박장으로 만든 주범이라는 게 비판의 골자다.

물론 권력형 게이트나 업계와의 유착 비리 등에 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검찰 수사에서 가려질 몫이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게임산업을 관장하는 문광부의 정책 오류 혹은 실패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뼈있는 일침이다. 정책 수행 과정에 그만큼 허점이 많았기 때문에 결국 큰 화를 자초했다는 것.

문광부의 ‘게임 사랑’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부터 문광부는 ‘2007년 세계 3대 게임산업 강국’ 실현을 주요 정책 목표로 세우고 관련 시책들을 다양하게 펼쳐 왔다.

그해 11월 발표한 게임산업진흥 중장기계획에서 문광부는 2007년까지 시장규모 10조원, 고용인력 10만 명, 해외수출 10억 달러 등을 달성한다는 구상 아래 게임산업 기초 인프라 강화, 게임문화 인식 제고 및 저변 확대, 법ㆍ제도 개선 등을 중점 추진 과제로 내걸었다.

정책 기조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민간과 업계의 자율과 참여를 최대한 지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산업 육성 체제를 구축해 나간다는 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문광부의 다양한 지원 사업들이 게임산업 유관 협회나 단체로 이관되는 정책도 추진됐다.

정부 진흥책… 성인오락실 급팽창 계기

사실 게임산업에 대한 문광부의 전폭적 지원은 DJ정부 때부터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음반ㆍ비디오ㆍ게임산업을 21세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기반 조성을 위해 규제 위주에서 산업 진흥 쪽으로 큰 틀의 정책 기조를 바꾼 것. 여기에는 문화산업이 새 천년을 주도하는 신 성장엔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크게 작용했다.

그 결과 2001년 9월 ‘음반ㆍ비디오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음비게법)이 개정됐는데 이때부터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가 대거 풀렸다. 첫 번째 수혜자로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뀐 성인오락실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2002년 2월에는 ‘게임제공업소의 경품취급 기준’ 고시가 시행되면서 경품용 상품권 제도가 도입됐다. 오락실의 건전한 운영을 도모하고 사행 행위를 방지하는 동시에 문화산업을 진작한다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제도 변화는 성인오락실의 사행 열기가 폭발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 국회에서 사행성 게임에 대해 브리핑 하고 있는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과 ▼ 성인 오락게임' 바다이야기'화면. / 홍인기 기자
▲ 국회에서 사행성 게임에 대해 브리핑 하고 있는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과 성인 오락게임' 바다이야기'화면. / 홍인기 기자
▲ 장충동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기 보관소를 압수수색한 검찰직원들이 압수한 자료를 옮기고 있다. / 왕태석 기자

문광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사이에 ‘네 탓’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사행성 게임에 대한 등급 분류도 큰 허점으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 권장희 전 영등위 게임물등급분류 소위원회 위원장은 “문광부가 성인오락기 최고배당률을 20배에서 200배로 높일 것으로 요구하는 등 사행성 오락기에 대한 규제 완화를 계속 요청했다”며 문광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문광부는 오히려 “2002년부터 영등위에 대해 사행성 게임이 심의되지 않도록 재심의 촉구 및 등급분류 기준 강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며 반박하고 있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는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사실상 감독 기관이나 다름없는 문광부에 책임이 더 많다는 게 중론이다.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게임이 걸러지지 않고 개조, 변조를 통해 시중에 대량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허술한 심의 제도를 만든 문광부의 귀책 사유이기 때문이다.

성인오락실 파문의 ‘몸통’으로 지목되는 경품용 상품권 제도 운영에도 문광부는 간과할 수 없는 패착을 뒀다. 금지된 환전이 횡행하는 등 도박용 칩으로 전락한 사정을 파악하고도 지지부진한 대응을 해오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업계의 입김을 많이 받는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상품권 발행업체 선정 권한을 위임한 것도 결과적으로 상품권 폐해를 키우는 결과로 나타났다.

게임·도박 분별 못한 문광부

무엇보다도 게임과 도박을 분별하지 못한 게 문광부의 가장 큰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베팅을 하고 받은 경품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명명백백한 도박을 게임산업의 울타리에 끌어안은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성인오락실은 게임이 아니라 엄연히 사행행위다. 현재 사행행위 규제 및 처벌 특례법이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사행행위는 엄단할 수 있다. 그런데 문광부가 그동안 성인오락실을 게임의 범주에 넣고 육성하려 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광부의 오판에 시민단체들은 뒤늦었지만 강력한 대응을 선언하고 나섰다. ‘도박산업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네트워크’(전국네트워크)의 경우는 성인용 도박 게임뿐 아니라 경마, 카지노 등 모든 사행산업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기관(가칭 사행산업통합관리위원회) 설치를 입법 청원했다. DJ정부 때부터 급성장하고 있는 사행산업 전반에 대해 본격적인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정부도 성인오락실 파문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에야 사행성 게임을 뿌리뽑겠다는 방침을 천명해 뒷북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문화산업 성장, 게임산업 육성이라는 미명 아래 치른 서민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여기에다 정치권과의 검은 유착설도 무성하다. 정책 실패라는 한마디로 넘어갈 단순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향후 검찰 수사, 감사원 감사에선 이 부분들을 반드시 규명돼야 하며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