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서민 주머니 노리는 '승률 100%'허구… 대박환상, 중독성으로 헤어나기 힘들어

경기 부천에 사는 이모(37) 씨는 멀쩡하던 회사가 갑자기 폐업하는 바람에 2년째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팍팍한 일상을 잊으려 술을 한 잔 하고 귀가하던 지난해 10월 어느날. 그의 눈에 ‘바다이야기’라는 휘황찬란한 간판이 들어왔다.

이 씨는 적당히 취기도 오른 데다 집에 가도 딱히 할 일이 없던 터라 잠깐 쉬어가자는 생각으로 오락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첫날 10만원을 잃고 나서 속이 쓰렸지만 본전을 되찾을 요량으로 다시 들른 날 200만원의 ‘잭팟’을 터뜨렸다. ‘어라, 이것 봐라, 재미가 괜찮네!’ 속으로 쾌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행운의 탈을 쓰고 찾아온 불운의 전주곡이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와 달리 벌이가 신통치 않던 이 씨는 용돈이나 벌 생각에 습관적으로 바다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다. 한 번 가면 서너 시간은 기본, 밤을 꼬박 샐 때도 적지 않았다. 석 달 동안 오락기에 쏟아 부은 돈은 500만원 가량. 그러나 잭팟은 두 번 다시 터지지 않았다.

“어느날 새벽, 요행을 바라며 밤새 오락기 앞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고 구차하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오락실 문을 박차고 나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라도 그만둔 게 천만다행이지 않나 싶어요. 적지 않은 돈을 잃었지만 패가망신의 수렁에 빠지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성인오락에 빠져 석 달 가까이 허우적댔던 이 씨의 회고담이다. 이 씨의 경우는 그의 말처럼 ‘천만다행’인 사례로 볼 수도 있다. 비교적 큰 손실을 입지 않은 데다 스스로의 의지로 오락실의 유혹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인생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례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결혼을 앞둔 직장인 정모(34) 씨. 그는 요즘 말 못할 고민으로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간다. 적금을 부어 어렵사리 마련해 놓았던 결혼 자금 5,000만원을 불과 1년 만에 성인오락실에서 송두리째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잭팟 유혹, 다 털리고 뒤늦은 후회

지난해 봄 어느날 정 씨는 직장 근처에 ‘메가월드’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한 오락실에 무심코 들어섰다. 호화스러운 외관과 그럴 듯한 광고 문구에 궁금증이 발동한 것이다. 처음 찾은 오락실은 분위기가 색달랐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젊은 여자 직원이 허리를 90도로 숙여 맞아준 데다 자리까지 안내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날 정 씨는 15만원을 잃고 자리를 떴다. 본전 생각에 잠을 못 이룬 그는 이튿날 퇴근길에 다시 오락실을 찾았다. 하지만 본전은커녕 50만원을 또 잃었다. 화가 치밀고 오기도 생긴 정 씨는 이후 틈만 되면 오락실 문을 두드렸다.

월급의 대부분을 쏟아 붓다가 급기야 적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100만원 정도 인출했지만 마침내는 수백만원씩 뭉텅이로 빼내 오락실로 달려갔다. 그렇게 해서 적금 통장이 바닥을 드러내기까지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제 애인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 채 결혼할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장에 달랑 몇 십만원밖에 없는 처지에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해요. 정말 눈물밖에 나오지 않고 미칠 것만 같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2년 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재벌기업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다 올해 초 명예 퇴직한 40대 후반 한모 씨. 20년 동안 일에 치여 살아온 그는 모처럼(?) 생긴 여유 시간을 성인오락실에서 쓰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빠찡꼬 등의 도박 게임에 일가견이 있었던 터라 ‘잘만 하면 돈 좀 따겠지’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소일거리 삼아 오락실을 찾았던 한 씨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자책감에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 하루에 30만~40만원씩 오락기 입에 집어 넣은 돈이 반 년 만에 8,000만원을 훌쩍 넘은 것이다. 그 때문에 얼마 받지도 못한 퇴직금의 절반 이상이 허공으로 날아갔고, 가게라도 하나 열려던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학창 시절 당구를 처음 배웠을 때 잠자리에 누우면 공이 눈에 어른거렸던 것처럼 오락실에 발걸음을 한 뒤로는 오후만 되면 게임의 유혹 때문에 미치겠더군요. 게다가 오락실에 들러붙어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면서 담배까지 과도하게 피워댔더니 몸도 함께 망가졌어요.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됐는지···.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성인오락에 한 번 빠졌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쩌다 한 번 돈을 딸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하다 보면 반드시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바다이야기 등 게임의 승률이 100%를 상회하도록 맞춰져 있다고 선전하지만 이는 사실상 허구라는 것이다.

“어떤 오락기의 승률이 100%라는 건 그 오락기를 장기간에 걸쳐 사용했을 때 평균적으로 확률이 100%에 가깝다는 뜻이에요. 매번 게임을 할 때마다 어느 사람이든 승률 100%를 기록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아주 운 좋은 사람이 어쩌다 한 번 돈을 딸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죠.”

거의 2년 동안 성인오락실에 들락거리며 큰 돈을 잃은 한 30대 남성이 털어놓은 ‘경험 법칙’이다.

뿐만 아니다. 이른바 ‘꾼’들 사이에서는 오락기의 승률 조작이 공공연한 사실로 통한다. 다시 말해 승률 100%는 손님을 끌기 위한 홍보 문구일 뿐, 실제로는 승률을 심하게는 50%선까지 하향 조작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오락기는 소위 ‘빨대’로 불린다. 고객 돈을 무한정 삼키기만 하지 뱉어내는 법이 없다는 뜻에서다.

당국 방치, 주택가까지 파고든 오락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알더라도 성인오락실의 유혹에서 좀체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박에 대한 환상과 도박의 중독성, 여기에다 주택가 곳곳에까지 촘촘히 깔린 거대한 ‘오락실 그물망’의 흡인력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는 헤어나오기가 힘든 것이다.

국내 최대의 성인오락 커뮤니티인 N사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오락실을 즐겨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회사원(48%)이거나 자영업자(28%)들로 나타났다. 실업자들도 13%에 달했다. 결국 평범한 서민들이 성인오락실의 최대 수요층이자 피해자인 셈이다.

주목할 것은 도박 경력을 물은 질문에 46%의 응답자가 1년 이하라고 답한 점이다. 최근 2년 사이 독버섯처럼 무섭게 퍼진 성인오락실이 수많은 사람들을 새로이 파탄의 길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N사이트 게시판에는 ‘호연지기’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이 최근 이런 글을 올려 놓았다.

“과연 돈 많은 사람 중에 오락실에서 하루종일 게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노동일로 얼굴 시커먼 아저씨나 장사하는 아주머니 등 돈 없는 서민들이 결국 피해자입니다.(…) 바다이야기에 빠져 끝내 편지 한 장 남기고 바다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황금성 문 한 번 열려고 은행 대출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라에 묻고 싶네요.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입니까. 아니면 대망(大亡)민국입니까.”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