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 - 헌재 "일반인 직업선택 자유 침해"의료법 개정안 여야 합의, 29일 본회의서 처리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충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안마사 독점권을 놓고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5월 25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 한하여 의료법상의 안마사 자격을 인정하도록 규정한 보건복지부령인 ‘안마사에 관한 규칙’(소위 비맹제외기준)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의료법에 안마사의 자격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데 하위 법규인 보건복지부령이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기본권(직업선택의 자유)을 제한하는 것은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는 것이고 또한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의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 정도가 지나쳐서 기본권제한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그러자 시각장애인들은 헌재 결정에 반발, 한강에 투신하거나 전국 집회, 도보행진 등 격렬하게 항의했고 국회에서는 시각장애인인 한나라당 장화원 의원과 보건복지위 소속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의료법 개정 법률안을 발의, 국회에 제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정화원 의원은 6월 16일 ‘안마사’의 명칭을 ‘수기사’로 변경하고 현행 보건복지부 시행령인 ‘안마사에 관한 규칙’에서 규정하고 있는 안마사의 자격을 법률에 근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의료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장향숙 의원은 안마사의 자격을 현행대로 시각장애인에 한하여 부여하도록 하고 그 자격.요건을 법률에 규정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7월 21일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8월 24일 오전 두 의원이 제출한 법안을 법안심사소위에서 심의, 절충안을 마련한 뒤 오후 전체회의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시각장애인만 안마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국회는 29일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안마사의 자격을 시각장애인 가운데 고등학교에 준하는 특수학교에서 안마 시술 관련 교육 과정을 거치거나, 중졸 이상으로 보건복지부 지정 안마 수련기관에서 2년 이상 수련 과정을 마친 사람으로 한정했다.

정화원ㆍ장향숙 의원은 제안 설명에서 “비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권보다 신체장애인 등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를 규정하는 헌법 정신을 더 고려해 헌재의 위헌 결정 취지를 존중하는 범위에서 개정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회가 헌재의 위헌 결정 취지에 어긋나는 법안을 만드는 것을 놓고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이경섭 변호사는 “개정 의료법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 이뤄질 경우 지난번의 위헌 결정과 같은 취지의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마사의 자격을 시각장애인에 한하여 부여하도록 하는 것은 일반인 또는 시각장애인을 제외한 신체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 한다”며 “일반인의 직업 선택권을 침해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안마사에 관한 규칙과 마찬가지로 위헌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생존권과 기본권이 대립할 때는 당연히 생존권이 우선되어야 한다”면서 “의료법 개정안은 비맹제외기준을 안마사 규칙이 아니라 의료법으로 규정해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법 개정을 옹호했다.

임 교수는 ‘과잉금지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서도 “개정 의료법은 시각장애인의 생계보장이라는 입법목적에 부합하고 위헌 결정의 요인이 된 ‘과잉금지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며 시각장애인 안마사 독점이 일반인의 기본권을 위협할 만큼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위헌정족수와 관련 임 교수는 “‘과잉금지의 원칙’ 위배를 위헌근거로 주장했던 재판관이 5인밖에 되지 않아 위헌정족수인 6인에 1인이 모자라므로 5인의 판결 주문은 기속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의료법 개정에 문제가 없으며 헌재 결정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위헌 결정 중 명시적으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힌 재판관은 5인이지만 나머지 2인은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어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을 뿐 개정 의료법에 대한 판단이 이뤄질 경우 종전의 결정례에 따라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엄격한 과잉금지원칙에 기초해 위헌결정과 동일한 취지의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발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마포대교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조영호 기자
▲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발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마포대교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조영호 기자

한편 시각장애인의 현실과 관련, 대구대 강위영(직업재활학) 명예교수는 “시각장애인들은 안마업만을 고집하려는 게 아니라 안마밖에 할 수 없다”며 “시각장애인은 훈련된 사람이라도 핸디캡이 있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시각장애인만 안마 독점권을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전국 장애인 등급별ㆍ유형별 등록현황’에 따르면 2005년 9월말 현재 전국 등록장애인 수는 174만1,024명이고 등록시각장애인은 18만 4,965명이며 그 중 중증(1급 및 2급)시각장애인은 3만6,183명(약 19.56%)이다.

등록시각장애인 중 안마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6,804명(중증시각장애인 6,752명, 경증시각장애인 52명, 대한안마사협회 2006년 4월 자료)으로 중증시각장애인의 18.66%가 안마업에 종사하고 있다.

반면 대한마시지사총연합회 송기택 회장은 “IMF 이후 정부가 스포츠마사지사라는 직업 창출을 추진해 현재 100만 명이 스포츠마사지사로 활동하고 있다”며 “스포츠 마사지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비시각장애인들을 부인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악법이 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송 회장은 "이미 마사지업에 종사하고 있는 일반인과 비시각장애인들이 있는데 다른 안마업사를 부정하고 시각장애인 안마업사만 보호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개정 의료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 이번엔 마시지사총연합회의 반발이 예상된다. 헌재와 국회의 법리 충돌, 이해 당사자들 간의 대립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또 다른 숙제가 될 전망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