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이후 지속된 유·무해 논쟁 속 최근 "인체에 해" 연구결과 발표로 다시 관심

“휴대폰 전자파에 장기가 노출되면 혈관 내피 세포를 수축함으로써 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핀란드 레스진스키 박사팀)

“MP3플레이어를 과도하게 즐기는 요즘 청소년들의 경우 부모 세대에 비해 30년 일찍 난청에 시달릴 수 있을 것이며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보청기를 착용해도 원상회복이 어렵고 성격까지 괴팍하게 만들어 사회생활에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영국 청각장애연구소 비비앙 미셸 소장)

휴대폰, MP3플레이어, PDA, PMP 등 휴대용 가전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살기 편한 디지털 세상이 됐다고 하지만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어 늘상 마음만은 그리 편하지 못하다.

각종 전자통신 기기들의 이용이 잦을수록 이들에게서 나오는 전자파, 소음 등에 노출되어 외려 건강을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떨쳐 버릴 수 없어서다. 게다가 국내외에서 심심찮게 유해성에 대한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나이 어린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의 걱정은 더 크다. 디지털세대인 그들은 어릴 적부터 각종 휴대 기기들을 끼고 살다시피 하는 터여서 위험성에 노출 빈도가 그만큼 높지만 인체 면역능력은 아직은 취약하기 탓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일 뿐이라고 반박하는 주장도 많다. 어느쪽이든 뚜렷하게 드러난 증거는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그 문제를 짚어본다.

외국서 "백혈병 등 유발" 학계 보고 많아

전자통신 기기의 사용에 따른 인체 손상 우려 중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전자파다. 1980년대 전자파가 종양 등 각종 질환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가 처음 나온 이래 지금껏 전 세계에서 유ㆍ무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연세대 의대 의학공학교실 김덕원 교수팀은 “전자파가 청소년의 인체에 해를 끼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 그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김 교수팀은 청소년과 성인 등 21명에게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휴대폰 전자파를 15~30분간 노출한 뒤 호흡수, 맥박, 혈압, 땀 분비량을 조사한 결과 15분 후 청소년의 손바닥에서 땀 분비량이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전자파가 교감신경을 자극해 땀 분비량이 늘었으며 이는 결국엔 피부저항을 감소시킨다는 것.

김 교수팀의 이번 발표는 휴대폰 전자파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음을 시사하는 국내 첫 사례다. 이에 대해 정통부는 “땀 분비 증가만으로 인체 유해의 증거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다”고 반박했다.

외국의 사례를 포함한다면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연구 보고들은 숱하다. 휴대폰 전자파에 대한 세포ㆍ동물 실험이나 역학조사 결과 “DNA 변형과 파괴가 관찰됐다”(독일 아들코퍼 박사팀), “10년 이상 장기간 노출 시 청신경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스웨덴 하델그룹)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또 전자파에서 나오는 열 에너지가 인체조직의 온도를 상승시키거나 또는 체내 유도된 전류가 신경을 자극하는 작용을 함으로써 백혈병, 뇌암, 유방암, 치매, 남성불임 등 각종 질병은 물론이고 두통, 수면장애, 기억력 상실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등의 보고도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이동통신업계에서는 휴대폰 전자파와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없다고 ‘유해론’을 일축하고 있다. 세포ㆍ

동물 실험에서의 일부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오류이며 휴대폰 전자파에서 나오는 에너지 양이 워낙 낮은 수준이어서 인체 손상을 유발할 정도가 아니라는 게 반박의 골자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휴대폰 전자파가 인체에 흡수되는 비율인 전자파 인체 흡수율(SARㆍSpecific Absorption Rate)을 2W/㎏(와트/킬로그램) 이하로 규제하는 정책을 이미 시행 중이다.

교수 등 전문가들의 입장은 아주 신중하다.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최재욱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 비교연구 결과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지금까지의 연구가 발암 가능성 등을 명쾌하게 규명하기에는 짧은 기간이라 10년 이상의 장기 연구가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자파학회 전자장과 생체관계연구회 김남 위원장(충북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도 “휴대폰 전자파의 열 에너지는 실제로 미약한 수준이어서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지만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어린 아이에 대해서는 영국처럼 휴대폰에 ‘사용 자제’ 문구를 삽입하는 등의 주의 조치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자파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WHO는 최근 ‘사전 주의 정책’으로 선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MP3P, 소음성 난청 주의보

휴대용 전자통신 기기의 유해성 논란은 휴대폰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최근 MP3플레이어를 장기간 이용할 경우 소음성 난청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외에서 불거지고 있다.

한국 제품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고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한 미국 애플사의 아이팟(iPot)은 최근 최대 볼륨 출력을 제한하는 긴급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실시했다.

아이팟 사용자들이 “115 데시벨(Db) 의 최대 볼륨으로 매일 28초 이상 노출되면 청력에 해가 될 수 있다”며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하자 애플사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대응조치였다. 언뜻 단순한 일로 보이지만, 이 소동은 휴대용 전자통신 기기들에 대한 우려가 기우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영국 청각장애연구소의 최근 발표 결과는 자못 경종을 울린다. 이 연구소가 16~34세의 MP3플레이어 이용자 1,000명을 조사한 뒤 지난 7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용자 3명 중 1명꼴로 이어폰을 벗어도 귀에서 멍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 이른바 ‘소음성 난청’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MP3플레이어가 원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국내 소음성 난청에 대한 진료 건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집계를 보면 20대 신세대의 경우 2003년 1,079건에서 지난해에는 1,792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밖에 버스나 지하철 안 등에서 DMB, PDP, PDA 등 휴대 단말기의 작은 화면을 시청하는 것도 시력발달 저해, 굴절이상 등 각종 안과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종종 나오고 있다. 휴대 전자통신 기기의 휴해성 여부에 대한 과학적 판단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래저래 불안하게 문명의 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송강섭 차장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