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저비용·고효율' 마케팅 수단 인식, 줄 잇는 창단·후원온라인 게임인구 급증, 스타 게이머 배추로 인기 갈수록 높아

▲ 지난 3월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르까프 오즈' 창단식을 갖고 e-스포츠 마케팅을 시작한 화승. / 임재범 기자
STX그룹은 지난 4월 프로게임단 ‘소울’(SouL)에 대한 후원 계획을 발표했다. 2000년 창단 이후 기업 후원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돼 온 소울은 이로써 STX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STX SouL’이란 이름으로 새출발하게 됐다.

조선ㆍ해운 전문기업인 STX그룹은 2000년대 초반부터 급부상한 재계의 신흥 강호. 하지만 그룹의 주력사업이 일반 소비자들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B2B 업종이어서 아직 외형에 걸맞은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STX그룹이 프로게임단을 후원하기로 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숙제를 풀기 위한 기업 홍보 전략과 맞닿아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e-스포츠 시장에 깃발을 꽂음으로써 기업과 브랜드 이미지를 손쉽게 끌어올리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STX그룹 관계자는 “회사가 지난 수년 동안 크게 성장했지만 일반인들 사이에는 인지도가 떨어져 인재 확보 등에 적잖은 걸림돌로 작용했다”며 “하지만 프로게임단 후원으로 신세대들 사이에 기업 이미지 제고는 물론이고 진취적이고 능력 있는 젊은이들의 STX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프로게이머들의 온라인게임 승부와 이를 관전, 중계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을 일컫는 e-스포츠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1998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소개된 뒤 PC방 등지에서 싹트기 시작한 국내 e-스포츠는 게임 전문방송이 리그 대회를 창설하면서 짧은 시간에 고속 성장했다.

e-스포츠 강국으로 확실한 자리매김

한국e-스포츠협회 등의 자료에 따르면 99년 180만 명에 불과했던 온라인게임 인구는 인터넷 이용자의 증가와 비례해 현재는 1,700만 명에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e-스포츠는 또한 ‘테란의 황제’로 불리는 임요환 등 특급 스타 게이머들도 잇달아 배출하면서 해외에서 ‘e-스포츠의 메이저리그’로 불리고 있다.

엄청난 숫자의 팬을 확보한 e-스포츠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면서 마케팅 전략 차원의 기업 참여도 뜨거워지는 추세다. 젊은 고객들의 마음을 끄는데 e-스포츠만한 ‘저비용 고효율’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게임단의 1년 운영 비용이 10억~20억원 안팎인 데 비해 광고 및 홍보 효과는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프로리그에 참여 중인 프로게임단은 11개 팀. 그중 기업들이 창단한 곳이 무려 9개 팀이나 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올 들어 기업들의 참여가 집중됐다는 점이다. ‘STX SouL’에 대해 실질적으로 게임단 운영에 가까운 후원을 약속한 STX그룹 말고도 화승, MBC게임, CJ그룹, 온게임넷 등이 최근 잇달아 게임단을 창단했다.

이쯤 되면 올해는 e-스포츠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그야말로 빅뱅을 일으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하다. 물론 이들에 앞서 99년부터 KTF, 삼성전자, 한빛소프트, SK텔레콤, 팬택계열 등 정보통신 기업들의 게임단 창단이 줄을 이으면서 국내 e-스포츠 시장의 저변이 마련된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같은 기업들의 러시를 바라보는 e-스포츠 업계는 잔뜩 고무된 표정이다.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잇따른 창단과 후원은 게임단의 안정적 운영과 대회 흥행 등으로 이어져 e-스포츠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큰 기대를 나타냈다.

e-스포츠의 흥행 바람은 지방자치단체에도 불고 있다. 게임산업과의 밀접한 연관성과 검증된 관중 동원력을 가진 e-스포츠 대회나 축제를 유치, 개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자는 움직임이다.

▲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열린 스카이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결승전 모습.
▲ 프로게이머 임요한.
▲ 프로게이머 임요환.

부산시는 이미 대박을 터뜨린 경우다. 2004년 프로리그 결승전을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어 10만 관중을 운집시킨 부산은 이를 계기로 e-스포츠의 메카로 명성을 얻었다. 지자체들 중에는 e-스포츠 전용 경기장 건설을 추진 중인 곳도 여럿 된다.

세계대회 개최 등으로 시장규모 날로 커져

이런 가운데 e-스포츠 대회 형식에도 새바람이 몰아칠 조짐이다. 한국e-스포츠협회와 CJ미디어, 서울시가 야심차게 기획한 세계 최초의 매치업 대회인 ‘슈퍼파이트 e-스포츠’가 그 진원지다.

오는 10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3자가 공동 주최할 것으로 알려진 ‘슈퍼파이트’는 기존 국내 대회처럼 토너먼트나 리그 방식 대신 일본의 이종격투기 ‘K-1’처럼 스타 선수들을 직접 맞대결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따라 팬들은 빅스타들이 벌이는 특급 매치를 매달 원없이 즐길 수 있게 됐다. 주최측은 ‘슈퍼파이트’를 통해 국내 e-스포츠 시장을 주름잡는 스타크래프트 외의 종목도 활성화를 본격 시도, e-스포츠의 세계화에도 기여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슈퍼파이트’는 운영 여하에 따라서는 기존 국제대회의 흥행을 능가하는 ‘e-스포츠계의 K-1’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한편 부산시에 ‘e-스포츠의 메카’라는 명성을 내줘 체면을 구겼던 서울시는 지자체 사상 최대의 e-스포츠 행사를 공동 주최하게 됨으로써 자존심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건전한 게임문화 육성을 위해 대회의 공동 주최를 맡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서울시가 슈퍼파이트 덕분에 e-스포츠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대회 진행에 필요한 시설과 홍보 수단 등을 적극 제공할 예정이다. 제작과 방송은 CJ미디어의 몫이다.

곧 뚜껑이 열릴 ‘슈퍼파이트’가 가뜩이나 달궈진 e-스포츠 시장에 또 어떤 흥행 열기를 보탤지 게임 마니아들의 궁금증도 뜨거워지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