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 수막류' 태빈이 가족 - 다리 힘 없어 툭하면 넘어져… 아빠는 직장 그만두고 간병

여섯 살 태빈이는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형제 없이 혼자 자라 또래 친구들과 노는 일은 즐겁지만, 여느 아이들과 다른 자신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 태빈이에게 작은 소원 하나가 있다. 친구들처럼 팬티를 입고 다니는 것이다.

‘언제쯤 기저귀를 뗄 수 있을까’. 친구들 앞에서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어린 태빈이는 말한다.

“도대체 어데서 뭔 짓을 하면 저 병을 낫게 할까요?” 할머니(68)는 말보다 눈물을 먼저 쏟아내고 말았다.

신경관결손으로 대소변 장애

태빈이는 선천성 난치질환인 척수 수막류(지방종)를 앓고 있다. 신경관 결손으로 방광과 항문의 괄약근의 기능이 떨어져 배뇨, 배변 장애를 겪고 있다.

척수 수막류는 태아기에 척수가 형성되는 도중 어떤 이상으로 인해 척추 뒤쪽이 뚫려 척수가 그 사이로 노출된 경우를 말한다. 쉽게 말해 척추 안에 둘러싸여 보호를 받아야 할 척수가 몸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태빈이는 이러한 일반 척수 수막류와는 달리 척추의 뚫린 부위를 지방이 막아버려 척수가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은 상태. 대신 지방과 신경조직이 뒤섞여 척수가 끝나는 엉덩이 꼬리뼈 부위에 혹 형태의 지방종이 형성됐었다.

이러한 지방종으로 인해 태빈이는 태어나자마자 포근한 엄마 품에 채 안겨보기도 전에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래도 아빠(40)는 그때만 해도 “지방종만 제거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단다. 이렇게 큰 병일 줄은 정말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 전 동의서를 작성하면서 의료진으로부터 병에 대한 설명을 듣곤, 그만 눈앞이 깜깜해져 버리는 충격을 받았다.

“평생 대소변을 못 가리고, 발의 변형이 올 수 있고, 수두증과 발달지체ㆍ정신지체 등이 동반될 수 있다”는 설명. “최악의 경우를 다 얘기하는데 정말 아찔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다행히 태빈이는 아직까지 잘 걸을 수는 있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 툭하면 넘어진다. 서서히 발의 변형도 진행되고 있다.

그간 머리 수술도 두 차례나 받았다. 수술은 머릿속의 물주머니(뇌실)와 복강간에 호스를 삽입해 뇌척수액이 흐를 수 있는 우회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 또 호스는 성장에 따라 신체 크기에 맞게 계속 교체해줘야 한다. 이 때문에 며칠 전 CT 촬영을 해봤다는 아빠는 “배쪽에 20cm정도 아직 여유가 있지만, 내년에 다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뇌에 다량의 수액(髓液)이 괴어 머리가 커지는 수두증으로 인한 수술도 받았다. 이러한 영향인지 태빈이는 아직 한글의 ‘ㄱ,ㄴ’도 알지 못한다. “공부는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고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빠는 말한다.

마음을 많이 비워냈지만, 그러함에도 요즘 태빈이를 바라보는 아빠와 할머니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계속되는 투병으로 인해 집안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결국 서너 달 전부터는 엄마와도 떨어져 살게 됐다. 아빠는 그 동안 태빈이 곁을 지켜온 엄마를 대신해 돌보기 위해 직장도 그만뒀다.

태빈이는 아침ㆍ저녁으로 항문에 손을 집어넣어 대변을 빼내줘야 하고, 소변도 서너 시간에 한 번씩 받아내야 한다. 또 아이가 늘어지거나 조금만 열이 나도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아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된 것은 약 한 달 전. 이러한 상황을 뒤늦게 알게 된 할머니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질 터. “내가 청소 일을 하고, 남편마저 간암이어서 차마 어미가 떠난 실상을 밝히지 못하고 몇 달을 혼자 끙끙 앓았던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아빠는 암 투병 중인 태빈이 할아버지 걱정으로 할머니께 “어서 집으로 가시라” 하지만, 할머니는 “애기 밥 해 먹여야 한다”며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실업 급여를 받고 있는 아빠는 그래서 이제 다시 일을 알아보고 있다.

“아이 수술이라도 해주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할머니는 아빠에게 채근한다.

"수술해야 하는데 비용이…"

한두 해가 지나면 초등학교에도 가야 할 나이. 아빠의 마음은 자꾸만 무거워진다. 현재 태빈이는 수시로 신경외과, 비뇨기과, 정형외과, 소아과를 전전하며 치료를 받고 있다. 학습도, 신체도, 발달이 모두 늦다. 지금은 그래도 어려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지만, 커가면서 사회로부터 더 상처 받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아빠는 늘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누가 귀엽다고 머리만 쓰다듬어도 가슴이 철렁한다”고 털어놓는다. 수술 흔적을 발견할까 두려워서다. “최근 들어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정부의 의료 혜택은 늘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상 인심은 그리 훈훈한 것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사실 태빈이가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에도 아이의 정확한 병명을 알려주지 못했다. “교통사고가 나서 척추를 다쳤다”고 둘러대고 말았다. 희귀난치성 질환이라고 하면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빠는 최근 인터넷 공간의 척수 수막류 모임에도 참여해 환자 가족들과 정보 교류에 힘쓰고 있다. 병원에선 원인을 모른다고 한다. 한때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봤지만 이제는 고스란히 실망으로 되돌아왔다. 아빠는 “신경관 결손이어서, 완치란 건 없다고 한다”며 “그저 아이가 자라면서 질환에 잘 적응해갈 수 있도록 사회의 편견이라도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발병 원인 및 주요 증상.
신경관의 결손인 선천성 기형의 일종이다. 발생률은 미국의 경우 1,000명당 1명꼴로 알려져 있다. 신경관 결함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추측된다. 환자의 부모가 다음 번 임신 때 같은 증상의 아이를 출산할 확률은 일반인에 비해 20~30배 가량 높다.

출생 시 신경관이 개방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요 증상으로는 수두증, 사지마비, 하지마비, 근골격계 기형, 감각소실 등이 나타난다. 1차 결손은 운동기능 및 감각기능의 이상과 신경성 요실금. 이로 인해 2차적으로 마비, 변형, 욕창, 콩팥의 손상 등이 올 수 있다. 진행성 마비도 있을 수 있다.

환아의 90%에서는 심각한 수두증이 나타난다. 이때 뇌 손상으로 정신지체가 올 수도 있다.

근골격계 합병증으로는 엉덩이 관절의 굴곡 변형, 아탈구, 탈구 등이 있고, 무릎 관절에서는 굴곡 구축이 흔하다. 기초대사율과 하루 열량의 총 소비량 감소로 비만도 흔하게 보고 된다. 이외 합병증으로 정신적, 사회적 문제 등이 생길 수 있다.

◆ 진단 및 치료

산전 진단으로는 임신 16~18주 혈청 검사 방법이 있다. 고해상도 초음파로 척수 수막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초음파로 의심되면 양수 천자를 하여 측정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일단 척수 수막류를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는 개방된 신경관 결손을 치료하는 것이 시급하다. 결손을 닫아 감염의 위험을 줄이고, 남아있는 신경 기능을 보존하며 뇌척수액의 흐름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분만 후 1시간 이내에 하는 것이 좋다. 발의 변형 등 외과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조기나 교정 신발을 착용케 하며 중증일 경우 수술도 고려해야 한다. 수두증의 경우 뇌의 손상으로 인한 정신지체가 올 수 있어 조기에 발달 평가를 통한 발달지체 및 정신지체 예방 검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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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