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보육교사 서찬일 씨, 아이들 뒷바라지에 헌신… '왕자님' 별명

“왕자님이란 소릴 듣고 깜짝 놀랐어요. 더 잘해줘야겠다 생각했어요.”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3동 건강한 어린이집에서 보조 보육교사로 일하는 정신지체 2급 장애인 서찬일(25) 씨는 어린이집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남자 교사. 여자 선생님만 있는 이곳에서 궂은 일을 도맡는 유일한 청일점인 때문인지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4,5세 남자 아이들은 그를 보면 마치 형이라도 만난 듯 달려와 매달리고, 부딪히며 장난친다.

“애들이 아주 잘 따라요. 만 1세 미만 아기들은 처음엔 낯갈이를 해서 많이 울었지만 지금은 무척 좋아해요. 5,6세 아이들은 아예 같이 어울려 놀구요. 지난 여름 캠프 때는 서 선생님이 짐도 척척 나르고 아이들을 대형 튜브에 태워 물놀이도 시켜줬거든요. 그랬더니 서 선생님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아이들이 왕자님이라며 일제히 박수를 쳤어요. 인기 짱이에요.” 이 어린이집 이백순 원장의 말이다.

이 원장은 “어린이집이 원래 특성상 많은 손길이 필요한데 서 선생님이 궂은 일을 도맡아 하니 다른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돌보는데 더욱 집중할 수 있어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서 씨는 이곳 어린이집에서 오전 9시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음식을 고루 분배하고 나면 숟가락질에 서툰 두세 살 어린이들의 식사를 거들어주기도 하고, 식사가 끝나면 자리 정리와 설거지도 도맡는다. 점심 식사 후에는 아이들의 낮잠을 위한 잠자리를 봐주고, 이 일이 끝나면 복도와 교실 청소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서 씨는 아이들과 장난치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가장 즐긴다. “아이들과 놀 때 제일 행복하다”며 “천사처럼 이쁘고, 애교도 많아 너무 좋다”며 함박웃음이다.

“기저귀를 가는 것이 꺼려지지 않냐”는 우문엔 “사랑으로 갈죠”라는 현답이 돌아온다.

물론 서 씨가 처음부터 모든 일을 척척 알아서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장애 특성상 업무를 수없이 반복해서 훈련하지 않으면, 곧잘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잊어버린다. 간식을 나눠줘야 하는데 청소를 하고 있거나,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아이들과 놀이를 하고 있는 등 일의 순서가 뒤바뀌어 동료 선생님들이 그를 찾아 다닌 일도 여러 차례. 업무 미흡으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서 씨는 “깨끗한 걸레로 바닥을 닦아야 하는데 한번 사용했던 걸레로 닦아서 혼났던 적이 있다”며 쑥스러워 했다.

유의할 점도 많다. 남자인 만큼 여아를 돌볼 때에는 특히 세세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괜한 말썽을 피하기 위해 남자 아이들과는 장난을 쳐도 여아들과는 삼간다.

그러나 “힘든 일이 없냐”는 물음엔 1초도 주저 없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평생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인다.

책임감도 1등. 함께 일하는 허영희 선생님은 “항상 한결같이 모든 일을 열심히 해서 배울 점이 많다”고 치켜세웠다.

이렇게 ‘행복한 직장인’인 서 씨가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은 8월부터. 이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한 서울시립정신지체인복지관의 윤현호 사회복지사가 서 씨를 정식 보조교사로 추천을 의뢰해 이뤄졌다. 이에 어린이집은 먼저 3주간의 실습을 제안했고, 성실한 업무 태도에 후한 점수를 줘 실습기간이 끝난 뒤 곧바로 정식 채용이 이뤄졌다.

사실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해도 부모들의 ‘눈’이 무서운 어린이집에서 정신지체 장애인인 그를 보조 교사로 채용한 것은 파격적인 일. 어린이집은 서 씨의 정식 채용을 결정하면서 부모님들에게 이를 알리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일부 부모님들로부터 우려 섞인 전화를 받기도 했지만 원장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마음엔 흔들림이 없었다.

이 원장은 “예전에 약 1년6개월동안 중증 뇌성마비 어린이를 돌보다가 유치원에 보낸 적이 있었다”며 “그때 장애아동과 함께 하면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장애 선생님과도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이 어린이집에 오기 전 서 씨는 취업 전선에서 수 차례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2남 1녀의 막내로 자란 서 씨는 유난히 여성스러운 성격. 장애가 있어 가뜩이나 취업이 쉽지 않은데, 과거 여린 성격 탓에 제조업체나 서비스업소에 취직해도 번번이 몇 개월을 버티지 못했었다.

그러나 특유의 부드러운 감성적 면모를 십분 살려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으로 변신, 정신지체인의 미래 유망 직종을 발굴해낸 선두주자가 된 것이다. 현재의 어린이집에 앞서 2004년 서울시립정신지체인복지관의 주간보호센터에서 정신지체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장애아동을 돌보는 일을 시작해 현재 3년째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윤현호 사회복지사는 “정신지체인들의 취업 분야가 그간 단순 제조업이나 일부 서비스 분야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이 또한 현재 거의 포화 상태이거나 지방으로 옮겨간 상황”이라며 “어린이집의 반응이 좋아, 향후 정신지체 장애인의 새로운 취업 활로로 개척할 수 있다는 의미가 소중하다”고 말했다.

복지관은 서 씨의 성공적 업무 적응을 계기로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어린이집에 대한 취업 알선을 적극적으로 추진,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서대문구 5곳과 영등포구 3곳의 어린이집에 정신지체 장애인 7명과 청각 장애인 1명 등 모두 8명이 일하도록 취업을 주선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