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정정 허가 사무처리 지침' 내용 성전환자 현실과 동떨어져성전환 수술·미혼 등 규정 엄격… "성별정정 하지말라는 얘기"

대법원은 지난 6월 22일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용하는 전원합의체 결정을 내려 사회적 소수자 인권 보호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음지 속에 숨어 살던 성전환자들은 크게 환호했고 이후 성별정정 허가 신청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어 대법원은 후속 조치로 지난 9월 6일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신청 사건 등에 관한 사무처리 지침’(이하 사무처리 지침)을 마련했다. 성별정정 허가신청을 할 때 필요한 제반사항과 재판 절차 등을 규정해 각급 법원의 판단 기준을 통일하기 위해서다.

사무지침 내용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성별정정의 허가 기준을 밝힌 제6조의 내용(상자기사 참조)이다. 이는 성전환자가 어떤 조건을 갖춰야 성별정정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그 기준을 적시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6조가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몇몇 항목들이 성전환자들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이라는 점이다.

특히 ‘만 20세 이상, 미혼, 자녀가 없을 것’ 등을 규정한 1항과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을 것’을 요구하는 3항 등이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라는 게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11월 1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는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가 대법원 사무처리 지침과 관련해 마련한 성전환자 증언 및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어렵게 단상에 오른 성전환자들은 대법원 사무처리 지침에 따르자면 모두 성별정정이 불가능한 경우다. 그런 까닭에 대법원을 향해 던지는 그들의 하소연은 절절했다.

먼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FTM, Female To Male)한 김영태(36ㆍ가명) 씨의 경우. 김 씨는 오랫 동안 성 정체성 혼란을 겪다 30세 들어 뒤늦게 남성의 삶을 선택했다. 호르몬 요법으로 외모가 남성에 걸맞게 변해가면서 모처럼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됐다. 사회로부터 남성으로 인식되면서 일상생활도 점차 활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번번이 부닥치는 문제가 외모와 달리 여성으로 남아 있는 주민등록번호였다. 직장생활을 하다가도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게 엉망이 돼버리기 일쑤였다.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등본은 사회 속에서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표가 아니라 부정하는 빨간 딱지가 된 것이다.

그 굴레를 벗기 위해 김 씨는 다른 성전환자들처럼 성별정정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 마침 지난 6월 대법원의 성별정정 허가 결정도 나온 터라 기대도 컸다. 하지만 서광을 비췄던 대법원은 곧바로 빛을 다시 거둬갔다. 성전환 수술을 받아 반대 성의 외관을 갖추지 않으면 성별정정을 해줄 수 없다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신문배달을 하며 어렵사리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생활비를 대기도 빠듯한 그에게 성전환 수술에 들어가는 2,000만원 이상의 비용은 현재로선 꿈도 꾸기 어려운 돈이다. 그런 까닭에 법적으로 온전한 남성이 되는 건 요원한 일이 될지도 몰라 마음이 무겁다. 그의 하소연이다.

“현재 가슴제거 수술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로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제 미래는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일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대법원 지침이 저에게는 얼마나 머나먼 시간 뒤에 성별정정의 기회를 주는 것인지 (대법원이)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MTF, Male To Female)한 김은주(45ㆍ가명) 씨도 곡절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처지가 뒤바뀌었으나 성별정정이 되지 않아 고통을 받는 경우다.

김 씨는 오랫동안 여성으로서의 삶의 욕구를 억누른 채 남성으로 살았고 서른 즈음에는 결혼까지 했다. 모두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억지로 자아를 끼워 맞춰 살아온 삶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얻은 후에 성 정체성 혼란은 더욱 극심해졌고 결국 결혼생활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아이의 양육을 어떻게 해나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혼한 부인이 아이 양육을 거부해 떠맡았지만 성전환을 결심한 그 자신도, 아이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씨에 따르면 처음엔 아이가 서서히 변해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혼란스러워 했지만 차츰 ‘엄마’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어느날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었을 때의 생생한 감격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가정에서는 아이와 모자관계로 거듭났지만 사회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남았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 뒷바라지를 위해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고 싶었지만 법적으로 ‘아빠’인 까닭에 학교 등지에서 선뜻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김 씨는 대법원이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은 불가하다고 지침을 마련한 것은 자녀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외친다. “제 아이가 마땅히 누릴 권리를 위해 이제 아이와 사회 앞에 당당한 엄마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저의 심정을 이해해서 성별을 정정해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상당수 전문가들도 대법원 사무처리 지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성전환 수술을 강제한 규정에 비판이 모아진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 위원장은 “대부분 성전환자들이 교육과 직업 현장에서 밀려난 빈곤층이기 때문에 막대한 성기성형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힘들 뿐 아니라 수술 자체도 생명을 담보할 만큼 위험하며 특히 남성성기 형성 수술은 세계적으로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 영국이나 독일 등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성별정정의 요건으로 규정하지 않았거나 요구 수준을 현실에 맞게 운용하는 점에 비춰 보면 우리나라 대법원의 지침은 지나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상희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성전환 시술요건 및 반대 성기 구비요건 등은 성전환자에게 지나치게 과다한 부담을 부과하는 것으로 이는 헌법상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미혼과 무자녀’ 항목도 비판의 여지가 적지 않다.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는 “대법원은 (미혼 항목에서) 성전환자는 결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독단적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으며, (무자녀 항목에서는) 명목상의 이유와는 달리 실질적으로는 자녀들의 인간적 존엄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만 20세 이상’으로 규정한 항목은 상당수 성전환자가 아동기나 청소년기부터 성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는 점에서 미성년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아울러 MTF에게 병역 이행 또는 면제를 요구한 5항과 성별정정이 범죄나 탈법행위에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6항의 경우, 성전환자들을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일탈자’로 바라보는 대법원의 보수적 시각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한상희 교수는 “대법원의 지침은 성전환자들의 기본권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하면 성별정정 허가신청을 막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며 “요즘 인권문제가 많이 거론되는데, 중요한 것은 ‘당사자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현실을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 사무지침 제6조의 성별정정의 허가 기준

1. 신청인이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만 20세 이상의 행위능력자이고 혼인한 사실이 없으며, 신청인에게 자녀가 없음이 인정될 것.

2. 신청인이 성전환증으로 인하여 성장기부터 지속적으로 선천적인 생물학적 성과 자기의식의 불일치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오히려 반대의 성에 대하여 귀속감을 느껴온 사정이 인정될 것.

3. 신청인에게 상당기간 정신과적 치료나 호르몬요법에 의한 치료 등을 실시하였으나 신청인이 여전히 수술적 처치를 희망하여, 자격 있는 의사의 판단과 책임 아래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음이 인정될 것.

4. 성전환수술의 결과 신청인이 현재 반대의 성으로서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으며, 생식능력을 상실하였고, 향후 종전의 성으로 재전환할 개연성이 없거나 극히 희박하다고 인정될 것.

5. 남자에서 여자로의 성전환(MTF)인 경우에는 신청인이 병역법 제3조에 의한 병역의무를 이행하였거나 면제받았을 것.

6. 신청인에게 범죄 또는 탈법행위에 이용할 의도나 목적으로 성별정정 허가신청을 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인정될 것.

7. 기타 신청인의 성별정정이 신청인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아니하여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인정될 것.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