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선발 30명 압축… 여성 큐레이터·공무원·교수 등 다양"우주서 아름다운 지구 모습 보고 싶다" 어릴 적 꿈 성취 설레

“꿈으로만 여겼던 일이 이젠 정말 현실이 돼가는 것 같아요.”

한국우주인 배출 사업을 주관하는 과학기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지난달 27일 30명의 2차 선발자 명단을 발표함에 따라 한국 최초 우주인의 ‘얼굴’도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 3만6,000여 명의 지원자 중에서 1,200 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살아남은 2차 선발자들은 앞으로 두 차례 관문만 통과하면 우주인이 될 수 있다. 최종 선발자는 2명이기 때문에 경쟁률은 15 대 1. 여전히 벽은 높지만 한번 해볼 만한 도전이 된 셈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2차 선발자에 평범한 일반 국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물론 뛰어난 재능과 자질을 선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공군 조종사나 과학자들이 유리할 것이라는 당초 전망에 비춰 보면 의외의 결과이다. 그런 까닭에 이들은 다소 얼떨떨해 하면서도 우주여행의 꿈이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마음이 잔뜩 부풀어 있다.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인공지능 분야 연구를 맡고 있는 고산(30) 씨. 그는 “원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인 데다가 어릴 적 과학잡지 등을 보며 꿈꿨던 우주여행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했다”며 우주인 지원 동기를 밝혔다.

평소 산악회 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그는 우주여행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했다. “산에 올라가면 세상을 아래로 보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우주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요. 만약 우주에 올라간다면 ‘조그만 지구’를 볼 수 있는 것이 가장 신기한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두 단계만 거치면 우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욕심이 날 법도 한데 고 씨는 의외로 담담하고 겸손했다. “지금까지 온 것만 해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물론 내가 우주인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객관적으로 가장 적합한 사람이 우주인으로 선발됐으면 한다”는 게 그의 솔직한 생각이다.

해외 영업맨인 김영기(35ㆍ바콤주식회사 차장) 씨는 다소 ‘교육적’인 동기를 갖고 우주인에 지원했다. 우주개발을 향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적 행사에 직접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다음 세대를 위해 교훈을 남기고 싶었다는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에 도전한 신청자들이 기초체력평가 대회에서 35㎞의 코스를 시간내에 완주하기 위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박서강 기자
“어린 시절에 우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꾼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사실 우주인과는 거리가 있어요. 하지만 세 살, 다섯 살 난 아이들에게 아빠가 나라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자부심을 주고 싶었어요. 제 아이들이 아직 우주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아빠, 파이팅!’이라고 말할 때는 가슴이 뿌듯하더군요.”

1년의 절반 가량은 외국 출장을 다닌다는 그는 자신의 풍부한 해외 경험이 우주인에게 주어질 ‘한국 과학의 홍보대사’ 역할을 수행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직장에서도 김 씨의 우주인 도전을 격려하고 있다. 그런데 1차 선발자 245명에 든 데 이어 다시 2차 선발자 30명 안에 포함되자 요즘엔 “어, 그러다가 진짜 우주에 가면 회사 일은 어떻게 하냐”는 농담도 심심찮게 듣는다고.

“올 초 우주인 사업 공고를 접하자마자 ‘바로 이거야’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주인이라는 게 더 이상 꿈이 아니라 도전 대상이 됐으니 말이에요.”

박내천(38) 외교통상부 서기관. 그는 직업외교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어릴 때 꿈은 우주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우주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여 일찌감치 그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우주인 배출사업이 아득하게 잊혀졌던 박 서기관의 꿈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우주인은 각종 과학실험을 수행해야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서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다. 평소 ‘사이언스’지나 작가 칼 세이건, 스티븐 호킹 박사 등 과학 분야 석학들의 저술을 취미 삼아 탐독하며 익힌 지식이 적지 않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교관이라는 자신의 직업도 우주인에 유리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우주인 사업의 취지를 잘 살펴보면 한국 최초 우주인은 해외 홍보대사 역할을 해야 해요. 그러려면 국제 감각, 매너, 언어 능력 등이 중요할 텐데 외교관은 바로 그런 것들을 훈련해온 사람이란 점에서 안성맞춤이 아닐까요.”

서울대공원에서 ‘포유류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안정화(30) 씨는 다섯 명의 여성 선발자 중 한 명이다. 포유류 큐레이터는 야생 포유동물 사육 프로그램과 매뉴얼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사육 직원들을 교육하는 특수 직업인데 국내에서는 그가 유일하다. 만약 안 씨가 최종 우주인 2명에 선발된다면 그는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두 개나 갖는 영광을 안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우주와는 전혀 동떨어져 보이는 안 씨가 우주인에 도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대학에선 생물학, 대학원에선 야생동물 보전유전학을 공부하면서 생명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늘 궁금했습니다. 그런 차에 우주에 가면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실험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우주인에 지원한 거죠.”

안 씨는 남들이 하지 않는 모험을 즐기는 맹렬 여성이기도 하다. 한국동굴환경학회 소속으로 지도에 표시도 돼 있지 않은 미개발 동굴을 찾아 다니는 동굴 탐사가 취미인 데서도 그런 캐릭터가 잘 읽혀진다.

“사실 1차 선발자 245명에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30명 안에 들고 나니까 잠이 안 올 정도로 흥분되더군요.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과학자나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일반인도 우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조성욱(49) 중앙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는 2차 선발자 가운데 최연장자다. 대부분 선발자들이 20~30대인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노장 투혼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지원자가 워낙 많아 ‘로또 복권 산다’는 생각으로 도전했지요. 그런데 막상 30명 안에 드니까 우주인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네요. 하지만 다음 단계에 가장 먼저 탈락하지 않을까요, 하하.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정밀 신체검사 등에서 불리할 테니까요.”

조 교수는 자신의 나이가 핸디캡이라고 밝혔지만 우주인에 대한 열정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다. 첫 번째 지원 동기도 ‘우주인으로서 특별하고 짜릿한 경험을 하고 싶은 욕구’를 들 정도다. 물론 공학을 연구하는 학자라는 직업적 배경도 과학 저변을 넓힌다는 우주인 사업의 취지에 잘 맞아떨어진다.

구조역학이 세부 전공인 그는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정거장 등 구조물 설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을 실험 아이디어로 내고 싶다”며 벌써부터 우주 실험에 대한 구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 교수는 미국의 우주개발 프로젝트인 아폴로 계획이 한창 진행됐던 1960년대에 꿈 많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69년 7월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에서 내려 달 표면을 걷던 흑백TV 속의 역사적 장면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고 한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한국도 이제 우주개발 시대를 향한 첫 번째 거보(巨步)를 막 내딛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 우주인은 선봉장이 될 것이다. 과연 그 주인공은 누가 될까.

우주인 선발 향후 일정 '내달 하순 최종 2명 선발'

2차 선발자 30명은 향후 3차 선발 과정에서 24시간 심전도, 뇌 영상촬영 등 정밀 신체검사를 받게 된다. 또한 우주 멀미나 무중력 적응성 등 우주환경 적응검사와 함께 다양한 상황에 대한 사고 능력과 대처 능력도 평가받게 된다.

이를 통과한 10명은 마지막 관문인 4차 선발 과정에 도전한다. 여기서는 폐쇄공간 적응성을 평가하는 고립실 검사와 훈련용 비행기 탑승 평가 등을 받게 된다. 아울러 1 대 1 면접 및 행동 관찰을 통해 성격, 대중 친화력, 사회성 등도 심층적으로 평가받는다. 최종 선발될 우주인은 2명이며 발표 예정일은 12월 하순이다.

이들은 내년 초부터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는다. 2008년 4월쯤 발사 예정인 러시아 우주왕복선 소유즈호에는 공간 제약 때문에 1명만 탑승하게 된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