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와인 시장 커지자 와이너리 오너·명장 등 잇달아 찾아와

샤또 딸보, 샤또 마고, 그란디 마르키, 지아니 갈리아도, 샤또 뤼똥드 등….

올 가을 세계 와인업계 거물들이 줄줄이 한국을 찾아오고 있다. 모두 이름만 들어도 ‘귀를 쫑긋하게’ 할 만한 유명 브랜드 와이너리의 오너들이거나 중량급 인사들이다.

이들 와인업계의 거물이 올 들어 대거 한국에 오는 것은 와인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시아에서는 이미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소비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것은 샤또 딸보(Chateau Talbot)의 오너인 장 폴 비뇽. 발음이 특이해 더 기억하기 쉬운 샤또 딸보는 동양권, 특히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특급 와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불어인 딸보는 100년 전쟁 때 장렬히 전사했던 영국 장군 마샬 탤봇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두 단어의 발음은 언어의 차이로 다르지만 철자는 같다.

올해 여름 한국을 찾은 그는 국내에서 와인을 즐기는 CEO 인사 30여 명과 교분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가 프랑스대사관과 공동으로 관저에서 마련한 디너에는 이희상 한국제분 회장, 인터콘티넨탈호텔의 경영을 맡고 있는 한무개발 심재혁 대표, 샘표식품 박진선 사장, 현대오일뱅크 서영태 대표, 효성 윤인택 전무, SK네트웍스 장종현 상무, 홍성철 쿠캔 대표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1993년 장인에게서 포도원을 물려받아 현재 공동 소유주로 있는 그는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이 보르도 및 샤또 딸보에 대해 너무나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놀랍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 너무 편하다”는 그는 “한국에 자주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되돌아 갔다.

샤또 딸보와 함께 세계 최고급 와인 중 하나로 꼽히는 샤또 마고의 여성 오너인 코린느 멘젤로폴로스도 11월 초 한국을 처음으로 찾았다. 1855년 공식적인 와인 등급 제정이 이뤄지기 이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으로 이름을 날린 샤또 마고는 4세기 이상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스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가 보르도의 샤또 마고 포도원을 인수, 와인 가문 대열에 동참하게 된 그녀는 벌써 26년째 가업을 물려받아 이끌고 있다. 그녀가 공개한 샤또 마고 와인의 맛 비결은 좋은 포도밭에서 좋은 포도를 사용해 와인을 만든다는 것.

스테파노 갈리아르도, 파블로 펠메르, 안티노리 3자매, 코린느 멘젤로폴리스(왼쪽부터)
특히 샤또 마고는 보르도의 넓은 지역에 포도밭을 경작한다기보다는 토양과 생육 조건이 좋은 포도밭을 여기저기 흩어져 갖고 있기로 유명하다. 방문 전 이미 한국에 대해 얘기는 들었지만 “와인 동호회원들을 만나 보니 와인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무척 높은데 감동 받았다”는 것이 한국에 대한 그녀의 첫인상.

“결코 와인을 만든다”는 인위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그녀는 “와인과 와인을 담그는 사람과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기 때문에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와인 생산자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로 와인에 대한 철학을 내비쳤다.

역시 보르도 와인의 명가인 뤼통가의 수장인 앙드레 뤼통도 11월 1~3일 방한 기회를 가졌다. 특히 올 해 84세로 프랑스 와인 업계에서도 최고 원로급으로 꼽히는 그가 비행거리가 만만찮은 한국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무척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한국에 앙드레 뤼통이 소개된 지는 14년이 지났지만 그가 방한한 것은 처음이다. 나이와 건강을 고려, 무리가 되지 않는 일정 내에서 그는 안양베네스트 골프CC와 주요 와인동호회 회원들과만 짧고도 긴밀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프랑스뿐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 와인 거물들의 방한도 비슷한 시기에 이뤄지고 있다. 1996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이후 최고 인기 장수 와인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는 빌라 엠(Villa M)의 와인 메이커 스테파노 갈리아르도도 지난달 말 아내와 함께 한국에 왔다.

아버지인 지아니 갈리아도의 이름을 그대로 딴 와이너리를 3대째 경영하고 있는 그는 28개국에 와인을 수출하고 있다. 그의 회사에게 한국은 미국에 이어 2번째로 큰 고객이다.

스위트함이 매력인 빌라 엠은 그가 내놓은 전통적인 와인류로 꼽힌다. 오래 숙성된 깊은 맛의 와인인 바롤로는 올 하반기 출시 계획. 그는 “빌라 엠은 저알콜 도수에 높은 당도로 인해 심지어 와인보다는 주스류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며 “때문에 빌라엠은 히트 브랜드이자 와인의 뉴웨이브를 이끈 선도적인 와인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한다.

국내 몇몇 호텔에서 열린 할로윈 파티에도 참여, 열기를 느껴봤다는 그는 “한국에서도 유럽처럼 와인을 마시는 유형이나 성향이 차츰 진화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또 다른 이탈리아의 와인 명장들도 무리를 지어 이번 가을 한국 방문에 나선다. 이탈리아 최정상급의 프리미엄 와인브랜드 협회로 통하는 ‘그란디 마르키’ 회원들이 처음으로 한국에 오는 것. 그란디 마르키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고급브랜드 와인 협회다. 이탈리아의 각 지역별로 최고 서열에 있는 와인 패밀리이자 와인 브랜드 18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탈리아 와인 양조에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핵심적인 생산자들인 이들은 이탈리아 와인이 가지고 있는 품질의 우수성과 독특한 스타일을 소개하고 이탈리아 와인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 및 프로모션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이번 한국 방문에는 투스카나의 안티노리(Antinori), 시실리의 돈나푸가타(Donnafugata), 피에몬테의 피오세자레(Pio Cesare) 등 10개 생산자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22일 파크하얏트서울에서 와인21닷컴과 공동으로 와인 시음회를 열고, 이어 와인 애호가들과 소규모로 ‘갈라 디너’ 행사도 가질 예정이다.

와이너리의 오너는 아니더라도 새롭게 한국을 찾는 와인 관계자들의 방문도 활발하다. 신대륙 와인 산지인 칠레의 와인 브랜드 테라마타의 파블로 펠메르 수출담당 이사도 지난달 방한했다. 테라마타는 최근 수년간 각종 와인 테스팅에서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았던 브랜드. 지난해에는 전 세계 7,000여 개의 와이너리 중 랭킹 47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높은 품질의 이색 품종 와인들을 많이 생산해 ‘부티크 와이너리’로도 불린다.

앞으로 테라마타는 코호 인터내셔날과 함께 한국에서 새로이 7가지 와인을 선보일 계획. 그는 이들 와인 대부분이 칠레에는 드문 품종인 쉬라즈와 진판델, 산요베세 등 하나의 농장에서 재배된 한 품종의 포도로만 만들어졌다는 점이 다른 와인들과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또 아직 국내에 친숙치 않지만 프랑스 남서부 와이너리 오너들도 조만간 방한한다. 이들은 10일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전시회 및 시음회를 갖는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