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기관 등에서 전혀 인정하지 않는 민간자격증 불과취업에 아무런 도움 안돼… 비싼 교재료 등 피해 사례 속출

노인복지사 등 자격증 홍보기사로 가득찬 한 일간지 지면.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음.
◇ ‘노인복지사’ 인기 직종!

◇ 고령화로 성장하는 실버시장 노인복지 인력 수요 가속화

◇ 자격증 취득하면 노인복지기관, 장애인복지기관의 상담 요원, 양로원, 노인전문 병동, 노인복지재단 및 기타 실버산업 관련 단체에서 활동

◇ 학력, 연령, 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응시 가능, 총 6과목 100점에 60점 이상이면 누구나 합격/ 소비자보호법 재경고시에 의거하여 보호 받을 수 있습니다. (02) ***-****

시험 응시 비용 등 50만원 넘게 요구

최근 일간지 상단에 큼지막하게 올라온 ‘노인복지사 자격증 취득 열풍’에 관한 광고 내용이다. 과연 학력, 연령, 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딸 수 있는 21세기의 유망 직종이 있을까?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광고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네, 담당 선생님이 통화 중이라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이것은 전화를 건 소비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한 수법으로 추측된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기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50대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OOO씨죠? 저는 A실장입니다. 노인복지사 문의하셨는데, 주로 노인분들의 상담 역할을 하는 일입니다. 상담 좋아하세요?”

그는 시험이 4월 중순 있을 예정이라며, 시험에 합격하면 업무 교육 8시간을 받고 난 뒤 인근 지역 재활센터, 복지회관 등에 취업할 수 있도록 총체적으로 관리해준다고 했다.

교재 및 시험 응시 비용 등은 총 58만원. 추가 비용은 일체 없으며, 국가유공자인 경우 15만원의 할인 혜택까지 주어진다고 했다.

“4월 시험이면 준비 기간이 촉박한 것 아니냐”고 묻자 “하루 20~30분이라도 꾸준히 반복적으로 공부하면 예상 문제집에서 60~70%는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A실장은 또한 “이 분야 자격증은 노인복지사 하나뿐이며, 합격하면 하루 5시간 혹은 8시간 근무 중에서 원하는 대로 선택해 취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광고를 보고 교재를 구입했다는 사람들의 피해 사례가 인터넷 게시판이나 한국소비자보호원 등에 속출하고 있다.

인천 부평구에 사는 B씨는 지난해 4월 신문 광고를 보고 전화로 문의했다. 나이, 학력에 상관없이 자격증을 따면 100% 취업을 보장한다는 말에, 총 70만원의 요구 비용 중 40만원을 선(先) 입금했다. 또 시험 직전 예상문제 답안(블랙박스) 비용으로 5만원을 더 투자했다.

하지만 며칠 후 남편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내용은 교육원측의 설명과는 전혀 달랐다. 국가인증이 안 되는 쓸모 없는 자격증이라는 것. 이에 B씨는 모든 학습 자료들을 택배로 돌려보냈으나 우편물은 수취인 거부라고 되돌아왔고, 하루에도 수 차례에 걸쳐 나머지 30만원을 결재하라는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노인복지사 자격증 관련 소비자 피해 사례(제목 검색을 통해 확인된 결과)는 2006년 한 해 동안에만 80건에 이른다. 인터넷 등의 비공식 피해 사례까지 합치면 수 백건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피해는 주로 교재 구입 후 환불 또는 계약 취소가 안 된다는 것. 피해자들은 “허위 과장 광고를 통해 고가의 교재를 팔아먹기 위한 장사꾼들의 상술”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40만~80여 만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노인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해도 취업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네티즌 C씨는 최근 노인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다. C씨는 “어머니께서는 나름대로 늦은 도전이라 생각하시고 제2의 길을 찾으신 거라고 좋아하시는데 막상 일자리를 찾아 드리려고 하니 노인복지사가 갈 곳이 없다”며 “밑도 끝도 없이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민간자격증 남발 허용이 화불러

현재 노인복지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공인된 자격증은 ‘사회복지사’ 자격증 하나뿐이다. 우리나라에 노인복지사란 직업은 없다. 노인복지를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사와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다른 전문인이 있을 뿐이다. 결국 노인복지사 자격증은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경제적ㆍ시간적 낭비를 초래해 구직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같은 민간자격증이고, 복지 서비스 대상이 노인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케어복지사’와 혼동해서도 안 된다.

마포재가노인복지센터 조남범 소장은 “케어복지사의 경우 주로 전문대학 등의 기관 조직에서 200여 시간 이상의 현장에 적합한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노인복지기관에서 (사회복지사 인력이 아닌) 생활지도 인력(간병인)을 뽑을 때에는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이지만, 노인복지사는 교육기관ㆍ커리큘럼이 모두 불분명한 엉터리 자격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노인복지사 자격증은 노인 관련 복지기관 취업을 보장하거나 가산점 등의 혜택과는 무관한 자격증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부실한 자격증이 시중에서 버젓이 시행되고 있는 것은 1998년 도입된 ‘자격관리기본법’에서 허가나 신고 절차가 없어도 누구나 민간자격증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연구원이 2005년 펴낸 ‘민간자격 실태와 정책과제’에 따르면, 98년 이후 매년 적게는 8개에서 많게는 93개에 이르기까지 각종 민간자격증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렇게 자격증이 해마다 수십 종씩 쏟아지는 데 반해 관리ㆍ감독은 허술하다는 것. 심지어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박종성 연구원은 “현행법상 민간자격증은 사전 신고나 허가 없이 누구나 발급할 수 있어 지나친 영리를 목적으로 자격증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며 “광고만 믿지 말고 주관단체와 취업 후 실효성 등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통해 연내 노인들에게 양질의 요양 서비스를 제공할 요양보호사 자격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정기준을 갖춘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에서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에게 요양보호사 자격을 인정하고, 이들에게 노인복지시설에서 노인 등의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