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면주가, 지난해 차세대 제품 '대포' 출시 젊은 층 공략아직까지 시장 반응 미미… "건강 술 올해는 통할 것" 기대

‘대포’는 무엇을 향해 발사됐을까.

언뜻 들으면 전쟁이나 무기 얘기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술, 다름 아닌 국내 전통주 시장을 두고 회자되는 표현이다.

‘대포’는 지난해 여름 ‘산사춘’으로 유명한 배상면주가가 야심차게 선보인 전통 약주의 이름이다. 출시 당시 ‘백세주’를 이을 차세대 전통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성적표는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전통주 시장에서는 ‘대포’가 발사한 ‘포탄’이 올해는 제대로 터질 수 있을지, 아니면 위력없는 불발탄으로 끝날지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대포는 출시될 때부터 국순당의 백세주를 겨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세주와 같은 약주과에 속하는 데다 알코올 도수도 같은 14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또 백세주를 만드는 방법 그대로 생쌀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란 점과 이미지 또한 비슷하다.

친형 회사인 국순당의 '백세주' 겨냥

다만 백세주가 10여 가지의 각종 한약재를 사용해 향이 강한 반면 대포는 상대적으로 순한 맛과 향을 풍긴다. 한약재보다는 마시는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해 달맞이꽃씨와 은행을 재료로 사용했다는 점을 오히려 차별화 요소로 부각시킨다.

또 대포가 백세주에 직접적으로 비교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제조사인 배상면주가의 배영호 사장이 국순당의 배중호 사장 친동생이기 때문이다. 동생이 친형에게 선전포고, 전통주 시장의 최강자인 백세주의 아성에 ‘대포’를 쏘아올렸다는 얘기가 나온 것.

대포는 시장에 선보인 이후 젊은 세대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배상면주가의 배경미 홍보과장은 “대학가나 서울 압구정동, 강남역, 신촌 등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거리의 업소에서는 ‘큼지막한’ 대포 병을 놓고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고 전한다. 회사측도 “이들 지역에서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처음 대포를 접해 본 이들은 우선 백세주와 비교해 술병이 크다는 것이 먼저 눈에 띈다. 병당 425ml로 백세주(375ml)나 소주(360ml) 보다 양이 많다. 하지만 가격(출고가 기준)은 2,200원대로 엇비슷하다. 업소에서는 평균적으로 6,000원 정도를 받고 있어 똑같은 가격임에도 대포는 술을 더 많이 주는 셈이다.

또 전용 술잔도 덩달아 커졌다. 한 잔 용량이 무려 145ml나 된다. 한 잔 가득 딱 세 잔만 따르면 술 한 병이 비어질 양이다. 이는 마치 옛날 ‘대포 잔’처럼 대포만의 특징을 내세운 전략이다. 배상면주가는 의도적으로 광고에서 ‘잔이 크니까 얼굴이 작아보이네’란 표현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외견상 ‘대포’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백세주를 조준한 것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이미 발사된 ‘대포’는 오히려 소주 시장에 명중해 주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같은 주류 시장에서 확장일로에 있는 낮은 도수의 소주에 맞설 대항마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 이는 대포의 배상면주가나 백세주의 국순당이나 동병상련이다.

특히 두 업체를 이끌고 있는 배 씨 형제의 우의는 돈독한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가족 회의를 통해 지금도 자주 얼굴을 접하고 사업 아이디어와 관련해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 양사의 임원들끼리도 서로 절친해 수시로 내왕하고 대화를 나눈다고 업계에서는 소문이 나있다.

때문에 국순당과 배상면주가는 경쟁자이면서도 동반자이기도 하다. 양사 경영진이나 직원들 또한 이 같은 의식을 갖고 있다. 동생 배영호 사장은 국순당에서 근무하며 아버지와 형을 도와 백세주 런칭에도 참여했다. 독립은 10여 년 전인 1996년 배상면주가를 설립하면서 이뤄졌다.

동생이 형의 회사에서 뛰쳐 나오자 자연히 흔히 ‘있는 집안의 자제들의 다툼’으로 생각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두 형제는 마케팅 방향에서 입장을 달리해 각각의 길을 선택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국순당의 배중호 사장은 시장에서 ‘선택과 집중’전략을 선호한다. 백세주를 중심으로 한 ‘소품종 대량 생산’이 실상 국순당이 최근까지 취해 온 마케팅전략이었다.

반면 배상면주가의 배영호 사장은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 많은 종류의 제품들을 만들어 선보이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그가 지향하고 있는 바다. 어쨌든 다양하게 내놓으면 선택과 판단은 소비자들이 알아서 한다는 것이 그의 마케팅 지론이다. 그가 독립하자마자 내놓은 산사춘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도 그의 기업 철학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때문에 대포가 시장에 새로 선보인 이후 양사는 전통 약주 시장의 ‘파이’가 한층 커질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국순당 입장에서도 대포의 선전은 배상면주가만의 부상에만 그치지 않고 백세주를 비롯한 전통주 시장 전체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저도주 소주 때문에 전통 술 고전

일례로 ‘대포가 백세주의 경쟁 상대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국순당에서는 ‘아직까지 전혀 경쟁 상대가 아니다’고 애써 무시하는 눈치다. 이런 반응은 ‘대포가 크게 될까봐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대포가 아직도 기대만큼은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아쉬움의 표현이라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발사된 ‘대포의 뇌관’은 아직 폭발하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백세주와의 경쟁 구도를 통해 전통 약주 시장의 파이가 커질 것이라는 당초 목표와 기대에는 크게 못미치고 있다. 월 평균 60억~70억원을 넘나드는 백세주와 비교해서도 대포는 아직까지는 10억 내외의 매출에 머물고 있다. 물론 출시된 지 아직 반년도 되지 않은 단계여서 평가를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무엇보다 최근 소주 시장이 팽창일로에 있다는 것은 대포나 백세주를 위시한 전통 약주 시장에는 최대 위협요소다. 특히 지난해 초 20도 이하의 저도주 소주가 나오면서 그간 맹위를 떨쳤던 백세주의 기세도 주춤한 상태. 종전보다 10% 내외의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국순당의 분석이다.

역으로 도수가 낮아지는 소주를 겨냥해 도수를 높인 전통주를 시장에 선보였지만 반응이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다. 도매가를 위시한 소주의 시장 판매가격이 조금이라도 더 떨어졌다는 것도 경쟁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려운 여건 때문인지 전통주 진영이 대포에 거는 기대는 결코 작지 않다. ‘소주만이 영원한 승자로 갈 것인가’라는 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경쟁자인 국순당 또한 대포가 선전해주면 위축된 백세주 역시 다시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동반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국순당의 고봉환 홍보팀장은 “전통 약주는 희석식으로 제조하는 소주와 달리 쌀을 직접 발효시켜야 하고 여러 재료들이 다채롭게 가미되기 때문에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신제품 개발과 해외시장 진출 등을 통해 또 다른 도약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