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서 완전 추방 노력, 유해성 부각으로 설 자리 잃어가

#프랑스

2월 1일부터 학교, 공장, 사무실 등 주요 공공장소에 17만5,000명의 ‘흡연단속 경찰’ 배치. 식당과 바 등 일부 업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내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전면 금지. 위반 시 68유로(약 8만8,000원)의 벌금 부과.

#미국

5세 이하 어린이가 탑승한 자동차 안에서 담배를 피운 성인에게 45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유타주 상원에 제출. 법안 통과 가능성 매우 높음. 메인주에서는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타고 있는 자동차 내 흡연 규제법 1월 26일부터 시행.

#홍콩

1월 1일부터 식당, 술집 등 모든 실내 영업장과 공원, 놀이터, 버스정류장 등의 실외 공공장소 등 50만 개소에서 흡연 금지. 금연구역에서 흡연 시 최고 5,000홍콩달러(약 60만원) 벌금 부과.

새해 초부터 담배와의 전쟁 소식이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세 나라의 사례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미 지구촌은 담배 연기에 맞불을 놓는 각국 정부가 쏟아내는 ‘규제의 포연’으로 자욱하다. 갈수록 담배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끌어온 국내 최초 ‘담배소송’이 얼마 전 원고 패소로 끝났다. “폐암, 후두암이 흡연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게 판결 이유다. 물론 1심 재판부의 판결일 뿐이다. 또한 소송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주목할 것은 이번 ‘담배의 승리’가 오히려 잦아들었던 금연 열풍과 담배의 해악성에 대한 공론화에 다시금 불을 댕겼다는 점이다. 의학계와 시민단체, 언론 등을 중심으로 판결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한편 국회 일각에서는 담배와 관련해 한층 강화된 규제법안의 입법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무소속 최재천 의원은 지난달 29일 몇몇 외국처럼 담뱃갑에 그림으로 된 경고 문구를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담배사업법 및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우리나라는 담배사업법에 의해 유해 경고 문구를 삽입하도록 하고 있으나 흡연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기에는 매우 미흡하다는 점이 법안 마련의 배경이다.

최 의원의 개정안은 흡연과 질병의 연관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흡연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과 관련된 경고그림과 경고문구를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MC 버클리 캠퍼스에서 금연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최 의원이 든 해외 사례를 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다. 싱가포르의 경우 담뱃갑 전면에 구강암 때문에 왼쪽 뺨이 분화구처럼 흉물스럽게 패인 남자의 사진을 절반 크기 이상으로 인쇄해 놓았다. 그리고 아래에는 ‘구강암의 92%가 흡연 때문에 발생합니다’라는 경고문구까지 달았다.

지난달 30일에는 열린우리당 양승조 의원(보건복지위)이 담배에 함유된 벤젠, 비소, 카드뮴 등 11가지의 발암물질을 담뱃갑 앞면과 뒷면에 구체적으로 명기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의 취지에 대해 양 의원실 손계룡 보좌관은 “식품이나 의약품이 모든 성분을 표기하도록 법제화돼 있는 것처럼 담배 소비자들도 자신이 구입한 담배의 성분을 아는 게 당연한 권리라는 취지에서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손 보좌관은 또 “이렇게 되면 담배 회사들도 덜 유해한 담배를 찾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발암물질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더욱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담배 소비자들의 금연을 유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담배 회사들의 유해성 경감 노력을 이끌어내는 일거양득의 정책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두 의원의 담배 관련법 개정안이 주로 금연 유도에 초점이 맞춰진 규제법안이라면 국립암센터 원장을 역임한 서울대병원 박재갑 교수가 입법 청원한 ‘담배 제조 및 매매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초강력 담배 규제법안이다.

이 법안은 제1조에서 ‘담배의 제조 및 매매 등을 금지함으로써 담배로 인한 보건상의 위해를 방지하여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제4조에서는 담배의 제조, 매매, 수출입 등을 전면 금지하고 있어 사실상 한반도에서 담배를 완전 추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이 법안은 당장 입법돼 실행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공포 후 시행까지 10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이 법안은 ‘금연 전도사’로 유명한 박 교수가 각계각층 인사 158명의 뜻을 모아 지난해 2월 김대중 전 대통령,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과 함께 국민 입법 청원 형식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앞서 박 교수는 전체 국회의원의 90%에 달하는 269명의 의원을 일일이 만나 입법 청원에 대한 찬성 의사를 받아내기도 했다.

박 교수는 “1년에 약 5만 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담배를 판매하고 세금을 걷는 것은 정부의 가장 모순적인 정책인 것은 물론이고 국민을 상대로 한 파렴치 행위”라며 “이 법안은 당장 실시했을 때 우려되는 혼란과 반발을 감안해 정부가 충분한 대책을 세워 국민들의 금연을 유도하는 데 필요한 기간으로 10년을 뒀기 때문에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 박 교수가 입법 청원한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지난해 전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지만 산적한 다른 법안들 때문에 일정이 연기됐다. 보건복지위 최기도 사무관은 “2월 안에는 전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며 그때가 되면 법안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과 심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법안이 1차적으로 통과해야 할 보건복지위 소속의원들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다만 양승조 의원의 경우 “성인 남성의 절반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현실에서 담배를 전면 금지하면 밀조나 밀수가 성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개인적으로는 금연운동의 확산을 통해 국민 스스로 담배를 끊게 유도하는 정책이 바람직한 것 같다”며 다소 회의적인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양 의원은 먼 훗날 흡연자가 미미한 정도로 감소되면 그때는 담배금지법의 도입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단서를 달았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담배금지 법안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최진숙 사무총장은 “세계적인 담배 규제 확산으로 볼 때 담배금지법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며 “박 교수의 법안은 유예기간을 두는 등 융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단 입법한 뒤 국가적인 금연 유도 정책을 펴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방에서 포위해 들어오는 규제로 숨찬 담배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