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5K급 20대 도입… 보잉·록히드마틴·유로파이터 3파전

한국 공군이 도입할 차기전투기는 어느 기종이 될까. 오는 2010~2012년 F-15K급 전투기 20대를 도입하는 2조3,000억원 규모의 차기전투기 2차 사업을 놓고 세계 유수의 업체들이 치열한 공중전을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는 미국의 보잉과 록히드마틴, 유럽 합작사인 유로파이터 등의 3파전으로 전개되는 양상. 방위사업청이 3월 9일 실시한 차기전투기사업 공개설명회에서 이들 3개 업체가 사업제안요청서(RFP)를 받아가 사실상 이 가운데 한 개 업체의 기종이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보잉과 유로파이터는 각각 F-15K와 EF-타이푼을 후보 기종으로 제안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록히드마틴은 어떤 기종을 제안할 것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F-22(랩터)를 후보 기종으로 내놓을 것으로 관측한다.

특히 보잉과 유로파이터의 경쟁에 새롭게 뛰어든 록히드마틴이 다크호스로 부상하면서 차기전투기 사업의 향배는 더욱 가늠키 어려워졌다.

방위산업청은 우선 협상 대상 기종을 6월 중 선정할 계획이다. 대상 장비가 선정되면 7월부터 시험 평가와 가격 협상을 벌여 내년 2월께 기종을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전문가들 보잉 우위 점쳐

군 관계자와 무기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체적으로 보잉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02년 FX(차세대전투기)사업에서 보잉의 F-15K가 프랑스 다소의 라팔(Rafale), 유럽 4개국 컨소시엄인 EFI의 유로파이터, 러시아 로스브로제니아의 수호이-35 등을 제치고 차세대전투기로 선정된 데다 우선 공군이 선호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F-15K는 최대속도 마하 2.3, 전투 행동반경 1,800㎞로 기상에 관계없이 전천후로 한반도 전역에서 작전이 가능한 최신예 전투기로 평가받고 있다. 대당 가격은 1,000억원이다. 지난해 14대의 F-15K가 우리 공군에 인도된 데 이어 2008년까지 나머지 26대가 인도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공군의 한 관계자는 “공군의 전투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미 결정된 40대의 F-15K와 같은 기종 20대를 도입해 60대 정도의 규모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ㆍ영국ㆍ독일ㆍ스페인 합작사인 유로파이터는 최신예 전투기 EF-타이푼을 앞세워 FX사업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입장이다.

EF-타이푼은 최대 순항속도 마하 2.0으로 항속거리 1,112㎞, 전투행동반경 1,389㎞로 단·중거리 미사일 10기를 장착할 수 있다.

유로파이터 측은 이 전투기가 한국이 요구하는 장ㆍ단거리 공중전 능력과 좁은 거리의 이ㆍ착륙 능력을 고루 갖췄다고 주장한다. 또 음성으로 특정 정보화면을 불러 올 수 있으며 라디오 채널 및 주파수를 변경할 수 있는 준스텔스 기체로 향후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자부한다. 대당 가격은 2,000억원 수준이다.

록히드마틴이 제시할 것으로 보이는 F-22와 F-35는 첨단 스텔스 기능을 보유한 5세대 전투기로 최강의 미래형 전투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F-22는 1980년대 세계 최강으로 꼽혔던 F-15A를 대체한 전투기로 레이더의 추적을 피해 적의 공격으로부터 기체를 보호하는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다. 좌우 날개에 각각 2,268kg 씩의 폭탄을 적재하고 AIM-120 공대공미사일 4기,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4기 등을 탑재할 수 있으며 최대 순항속도는 마하 1.58로 전투행동반경은 3,000km다. 대당 가격은 3,000억원.

F-22의 전투력은 지난해 여름 미국 알래스카에서 가진 F-22와 현재 미 주력 전투기인 F-15ㆍ16ㆍ18 사이의 훈련을 통한 모의 공중전에서 확인됐다.

결과는 F-22의 완승. 첫째 주 훈련에서 F-15ㆍ16ㆍ18 중 144대가 격추될 때까지 F-22는 단 한 대도 추락하지 않았다. 훈련이 모두 끝날 때까지 F-15ㆍ16ㆍ18은 241대가 격추된 반면, F-22는 혼성 편성된 F-15, F-18 단 2대만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F-22의 결정적인 승인(勝因)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성능이었다. F-22가 레이더에 잡히지 않아 F-15ㆍ16ㆍ18 등은 F-22가 접근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수십 ㎞ 밖에서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등에 격추당했던 것이다.

F-35 역시 스텔스 기능을 갖춘 5세대 전투기로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기종과 비교해 공대공, 공대지, 정보 감시 및 정찰 성능에서 각각 4배, 8배, 3배 가량 우위를 보였다. F-22와 비교해 작전 반경이나 무장능력 등에서 뒤지나 생산시스템을 공용화해 총 보유비용을 절감함으로써 대당 가격은 700억원 수준이다.

특히 F-22와 F-35는 핵과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4세대 전투기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게다가 일본이 F-22를 도입하거나 이를 모방한 스텔스기 개발을 추진 중이고 중국 또한 F-15K와 성능이 유사한 젠-10 전투기를 실전 배치하는 한편 F-22에 대항해 차세대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주변국이 첨단장비로 무장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5세대 전투기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F-22는 아직 미 정부당국이 해외판매를 승인한 적이 없고 가격도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많다. F-35도 실전 배치되려면 2014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대선 겨냥한 리베이트 설도

차기전투기 후보 기종의 장단점이 비교되면서 업체의 수주전은 더욱 가열되고 있고 심지어 12월 대선을 겨냥해 특정업체와 정부 간에 대선자금 리베이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후보 기종을 놓고 견해차가 뚜렷하다. 공군 측은 효율적인 전투규모단 구성이나 즉시 전력을 보강하는데 F-15K가 우월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F-22나 F-35는 2014년 이후에나 도입이 가능하므로 F-15K를 도입하는 것이 공군의 전투력을 높이고 5세대 전투기를 실전 배치할 때까지의 공백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선 “실질적인 대북억제력을 위해 5세대 전투기인 F-22나 F-35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군사평론가는 “4세대 전투기는 북한의 핵을 포함한 WMD에 무기력하다”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첨단무기로 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성태 열린우리당 의원(전 국방장관)은 절충적인 입장에서 “당장 F-15를 도입하기보다는 차기전투기 사업 예산 2조3,000억원을 우선 국방력을 첨단화하는 데 활용하고 지금부터 F-22, F-35 도입에 대한 협상을 준비해 2014년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근 차기전투기 후보 기종에 대한 견해차가 두드러지면서 최종 기종에 대한 결정이 연기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차기전투기를 둘러싼 공중전의 승자에 따라 우리의 국방력과 전략ㆍ전술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