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 전문가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 마련 절실, 기존 공무원법 활용도 바람직

서울시 '무능공무원 3%'선정 제출 마감일인 3월 15일 오후 서울시공무원노조 관련자들이 서소문별관 사무실에서 긴급 대책 수립을 준비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원유헌 기자
무능 공무원 퇴출 바람이 거세다. 울산시에서 출발한 동남풍이 북상해 서울시에서 세력을 키운 뒤 다시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강타하고 있다.

퇴출제 도입을 선언한 지자체장들은 취지와 명분을 앞세워 기선제압에 성공한 듯 보이지만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공무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양자 간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조짐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들은 ‘철밥통 깨기’에 나선 지자체의 결정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공무원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고 두터운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중립지대’에 서 있는 행정학 전문가들은 다소 차분한 자세로 이번 사안을 바라볼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공무원 퇴출 바람이 합리적 원칙 없이 유행병처럼 휘몰아칠 경우 자칫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퇴출제 실시는 과연 타당한가

직업공무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성과 행정 서비스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은 퇴출제가 기존 공무원 제도의 골간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반격한다.

하지만 행정학 전문가들은 공무원의 신분보장이 무능하고 나태한 공무원까지 보호하는 제도는 아니라고 못박았다. 현재의 공무원법에도 부적격자를 퇴출하는 제도가 명문화돼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존 공무원법에 퇴출제가 있음에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는 점이다. 대전대 백종섭 교수(인사행정학회장)는 “부적격 공무원을 걸러내는 장치가 현재 공무원법에도 있는데 새로이 퇴출제를 도입하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며 “공무원에 대한 평가와 퇴출은 당연히 있어야 하겠지만 기존 제도의 보완 운영을 먼저 시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무원 퇴출제 도입 바람이 사실상 사문화돼 있던 기존 공무원 퇴출 규정을 부활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도 있다. 서로 감싸는 관대한 근무평정 관행 때문에 ‘한 번 공무원은 영원한 공무원’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는데 이를 뒤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상명대 오성호 교수는 “퇴출제 시행에 따라 공무원들이 긴장하게 되면서 업무에 보다 집중하고 신경을 쓰게 돼 생산성이 향상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3월 15일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하이서울공무원노조원들이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현장시정단추진단의 철폐을 요구하고 있다. 최종욱 기자
부작용과 역효과 없을까

공무원 퇴출제는 그 취지와 명분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퇴출 대상 선정 기준에서부터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다.

특히 퇴출 대상을 ‘3%’로 못박은 서울시의 규정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이와 관련, 서울대 김동욱 교수(행정학회 총무이사)는 “부서의 특성상 일을 많이 하거나 모두 다 일을 잘하는 경우에도 억지로 대상을 선정해야 한다는 맹점이 있다”고 말했다. 백종섭 교수도 “퇴출 대상 선정 범위를 가능한 한 넓히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기준으로 퇴출 대상을 선정하느냐 하는 점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한국행정연구원 인적자원센터 서원석 소장은 “무능, 태만의 기준이 뭐냐는 반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정교한 성과평가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퇴출 대상을 골라내는 부작용도 대부분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김동욱 교수는 “4년마다 선거가 열리는 지자체의 여건상 퇴출제가 단체장과 정치행보를 달리한 직원들에 대한 부당한 보복 조치 수단으로 잘못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원석 소장도 “지자체가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며 “단체장으로부터 독립된 외부 전문가들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위원회의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공무원 퇴출제가 공무원들의 일하는 분위기 조성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조직 전반의 보신주의, 눈치보기, 줄서기 등 여러 가지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김동욱 교수는 “몇 사람 솎아내려다 전체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조직의 활력이 저하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단체장 입장에서도 공무원들을 적으로 만들어봐야 자신을 따르지 않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퇴출제 태풍이 여론을 업고 전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일부 단체장들의 행보는 눈길을 끈다. 일각에서는 굳이 퇴출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근무성적 평가 결과를 내부 공개하거나 인센티브 제도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으로도 공무원 조직에 충분한 자극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정학 전문가들은 일부 무능하고 태만한 공무원의 퇴출 당위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다만 어떤 기준을 세워 어떤 방법으로 실천하느냐가 제도의 관건이 된다는 점에서 운용의 묘를 살리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이번 이슈를 계기로 공무원 인사제도의 총체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정부, 지자체, 국민들이 함께 진지한 고민을 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우나 고우나 공무원 조직은 국가 운영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