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환경단체 반발 속 7년 만에 댄공사 첫 삽철갑상어 양식장 우후죽순… "보상비 수백억" 소문도

목마른 봄의 대지 위에 단비가 추적추적 내린 지난 3월 21일 오후. 경기 포천시 창수면과 관인면의 경계를 이루는 영로교 난간에는 ‘한탄강댐 결사 반대!’ 라고 쓰인 플래카드 대여섯 장이 걸려 봄바람에 나부꼈다.

정부의 한탄강댐 건설에 반대를 하는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내건 것. 그 아래로는 ‘지방 1급하천’ 한탄강이 현무암 계곡을 따라 구비구비 흘러가고 있었다.

짓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탄강댐이 지난 2월 28일 조용하게 착공됐다. 1999년 12월 기본계획 착수에 들어간 지 무려 7년 만에 첫 삽을 뜬 것이다. 하지만 한탄강댐 건설 공사가 정부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수몰예정지역인 철원ㆍ연천ㆍ포천 지역 주민들로 이뤄진 한탄강댐 건설반대 공동투쟁위원회가 건설교통부의 한탄강댐 건설 기본계획 고시(2006.12.20)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해당지역 주민과 환경단체 등의 반발 기류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한탄강댐 건설을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감지된다. 포천시 관인면 도로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중년 여인은 “연천군 쪽에서 토지 보상이 시작되면서 포천 주민 가운데서도 보상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수몰되면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할까 하는 문제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내 경우에는 식당과 집, 토지를 보상 받아도 3억원도 안 될 것 같은데 포천 시내로 이사가면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벌써 고민이 된다”고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한탄강댐 건설로 수몰되는 지역 주민들은 이제 보상이라는 실질적 문제를 따져보는 경우가 많다.

관인면 중2리의 산기슭 마을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다는 70대 할머니는 “어차피 농사하고 살기도 힘든 곳이었는데 보상비를 찔끔 받더라도 나가고 싶어”라고 속내를 밝혔다. 하지만 낡은 집에 사는 가난한 주민들은 이곳을 벗어날 마음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헐벗은 과실수·방치된 비닐하우스

댐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광화문 열린마당에 모여 백지화 요구 시위를 하고 있다.
댐 공사가 본격화하면서 앞날을 고민하기 시작한 이들 주민은 그나마 순박한 농심(農心)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와는 달리 공사 보상비로 ‘한몫’ 잡아보자는 약삭빠른 행태를 보이는 해당지역 주민들도 없지 않다.

수몰예정지역을 통과하는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 어색한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수령(樹齡)이 얼마 되지 않은 헐벗은 과실수들이 빼곡하게 심어진 밭이라든지 그저 얼기설기 모양만 갖춰 놓은 듯한 비닐하우스 등이 눈길을 끈다. 물론 주인들은 부인하지만 보상비를 부풀리기 위해 급조된 인상이 역력하다.

심지어 몇 년 전부터 외지인들과 합작해 순차적으로 일대 토지를 사들여 수천 평에 걸쳐 별장을 조성한 주민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포천시청의 한 관계자는 “한탄강댐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나온 뒤부터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배나무 같은 걸 갑작스럽게 촘촘히 심어 놓은 곳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며 “어떤 주민은 다른 지방에서 살다가 토지 보상을 받은 뒤 한탄강댐 공사 보상을 노리고 일찌감치 전입했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한탄강댐은 99년 처음 건설 계획이 발표된 뒤 철원지역 주민과 환경단체 등의 반발에 부닥치는 등 몇 차례 고비를 겪었다. 그 때문에 공사 착공이 지연되면서 보상을 노린 편법적, 투기적 행위가 기승을 부릴 시간적 여유를 줬다.

포천시 수몰예정지역의 한 주민은 “우리 마을은 실제로 거주하는 가구 수가 60가구 정도 되는데 주민등록상 가구 수는 100가구에 달한다”며 “그 이유는 이주 보상비 등을 챙기기 위해 외지에 나가 사는 가족들이 주민등록을 이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몰예정지역에 포함된 포천시의 한 작은 마을에는 철갑상어를 키우는 양식장이 밀집된 곳이 있어 특이 의아스럽다. 산골 오지에 워낙 큰 규모로 지어져 주변 지역에까지 알려진 양식장이다.

그런데 이 양식장에 대해 인근 주민들은 투기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즉 한탄강댐 공사로 인한 보상을 노리고 일부러 값 비싼 양식장을 이곳에 지었다는 것이다.

대규모 철갑상어 양식장 '거액 보상 목적' 의구심

수몰 예정지역에 들어선 양식장과 철갑상어.
마을 주민은 “몇 년 전부터 철갑상어 양식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수몰될 지역에 왜 양식장을 짓는지 처음부터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며 “거액의 보상비를 받으려고 들어온 게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실제 이 마을에 밀집된 철갑상어 양식장 중에서도 한 곳이 유난히 규모가 컸다. 한눈에 보기에도 족히 수천 평은 돼 보였다. 그런데 더 희한한 것은 한탄강댐 공사를 시작한 지금도 대규모 철갑상어 양식장이 계속 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공사장 인부는 언제부터 공사가 진행됐느냐는 질문에 “오늘 처음 일하러 와서 잘 모르지만 시간이 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익사업의 보상관련 법령에 따르면 사업 기본계획이 고시된 날을 기준으로 보상이 이뤄지게 된다. 고시일 이후에 부가되거나 증치된 물건에 대해서는 보상에서 배제하도록 법령은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곧 수몰될 운명인 양식장 공사를 보상도 받지 못할 텐데 왜 굳이 짓는 것일까.

이와 관련, 포천시청 관계자는 “기본계획 고시 이후에도 주민들이 몰래 물건을 설치하거나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며 “나중에 고시일 이후에 설치한 사실이 들통나도 최고 75%까지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즉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사 고시일 이후에 부가, 증치된 편법 행위에 대해서 보상을 확실하게 배제한다 하더라도 고시일 이전에 이뤄진 투기 행위는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수자원공사 수자원개발처 보상팀 관계자는 “현행 보상관련 규정으로는 고시일 이전의 행위는 무조건 보상을 해야 한다”며 “실제 보상 관련 심사를 하다 보면 보상을 노린 투기 목적인 것 같은데 단정하기가 애매한 경우가 자주 있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마음만 먹으면 법 테두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엄청난 나랏돈을 챙길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얼마 전 국토도시연구원 이덕복 연구개발처장이 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SOC 건설사업의 경우 사업계획을 세운 뒤 확정까지 보통 2~3년 간의 기간이 걸리면서 투기 때문에 보상 비용이 폭증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 처장은 지방의 댐 공사에서 91년 3,000여 억원으로 예상된 보상비가 2000년에는 1조1,700여 억원으로 늘어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철갑상어 양식장은 얼마나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당초 양식장 운영업자 A씨의 투자 제의를 받아 속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에 대해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A씨는 처음부터 철갑상어의 보상비가 투자비용의 최대 10배는 될 것이라며 투자자들을 모았다. 철갑상어가 다른 어종보다 훨씬 비싸 수십 억원을 투자하면 나중에 500억~600억원 정도는 보상받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A씨의 양식장 사업에는 서울 등 외지의 투기세력이 뒷돈을 댔다고 한다.

철갑상어는 세계 3대 진미(珍味)로 알려진 캐비아(철갑상어알)를 낳는 고가 어종이다. 철갑상어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연산 캐비아 1kg의 가격은 무려 600만~700만원대. 양식의 경우도 300만~400만원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고기 자체의 맛도 뛰어나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허술한 관리 시스템으로 혈세 낭비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철갑상어의 국내 공정 거래가격은 아직 없다고 한다. 워낙 거래물량이 적어 시장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간 공급량이 확보되더라도 몇몇 고급호텔이나 전문횟집에서 금세 싹쓸이해가는 실정이라고 한다.

철갑상어 양식 전문가도 “철갑상어의 경제성은 상당히 높은데 어종과 나이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라며 “국내에서는 수요가 많은 데 비해 공급이 절대 부족해 부르는 게 값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에서는 철갑상어의 가치를 정확하게 감정할 만한 전문가가 현재로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업계에 따르면 개인이 운영하는 국내 철갑상어 양식장은 현재 25개소로 모두 89만 마리가 자라고 있다. 그중 A씨가 24만여 마리를 보유해 업계에서는 가장 ‘큰손’으로 알려졌다.

통상 한 마리를 성어로 키우는 데는 4년 정도 걸려 국내 시장에는 아직 공급이 되지 않고 있다. A씨 현재는 양식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철갑상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다면 A씨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을 갖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때까지 양식장을 운영할 가능성은 적다. 별 이변이 없는 한 정부는 한탄강댐 건설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의지는 이번 공사 착공 강행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번 공사를 시행하는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건교부의 실시계획 승인이 2월 말 나면서 착공에 들어갔으며 행정소송 진행 여부에 관계없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탄강댐 공사가 진행되면 결국 A씨의 철갑양식장은 사라질 운명이다. 대신 그는 투자비의 몇 배에 달하는 막대한 보상비를 챙길 것이다.

과연 그는 미래 유망 양식사업에 선견지명을 갖고 뛰어든 선구자일까, 아니면 국가 개발사업을 틈타 대박을 노린 투기꾼일까. 후자라면 정부가 조장하는 개발 바람과 허술한 관리 시스템으로 인해 국민들의 막대한 혈세가 엉뚱하게 줄줄 새게 된다.

정부는 언제까지 이런 일을 팔짱만 끼고 방관할 것인가. 댐 건설로 생채기가 난 한탄강은 지금 한탄하며 흐르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