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위작 사건… 가짜가 공인 감정기관서 진품확인 받기도'돈 되는' 서양화에 집중, 이중섭·박수근·김환기 작품 순으로 많아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등 유명 화가의 그림을 위조해 팔아온 일당이 검거됨에 따라 미술계가 술렁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활기를 찾은 미술시장이 다시 얼어붙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특히 2005년 위작 시비가 일었던 이중섭ㆍ박수근 작품에 대한 검찰의 재감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건이 발생, 더 충격을 주고 있다.

국내 미술계의 위작품 제작은 고서화, 골동품, 동양화, 한국화, 서양화, 조각, 판화 등 미술계 전반에 걸쳐 있으나 이 중에서도 금전적 가치가 높은 서양화에 집중돼 왔다. 서양화 위조범은 19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고서화 위조범들이 활개를 치던 70년대에는 서양화 위조범들은 전무하다시피했다.

한국화랑협회 산하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에서 82년부터 2001년까지 감정한 2,525점 중 30%가 가짜였다. 위작 비율이 높은 작가로는 이중섭(75%),박수근(36.6%),김환기(23.5%),장욱진(20.5%) 순이었다.

이중섭ㆍ박수근 위작범은 80년대 이후 두 화가의 작품이 고가로 거래되면서 등장했다. 이중섭 작품 위조범은 83년에 등장한 대구 출신의 김 모씨와 초보 차원의 베끼기 수준에 머문 차 모씨가 있다.

그러나 김 씨가 그린 위작은 이중섭 화백이 거의 사용하지 않은 캔버스나 하드보드 등에 제작한데다 이중섭 그림은 50년 12월~56년 9월 부산, 제주, 대구, 통영, 거제, 진주, 서울 등지에서 장소마다 특징적인 물감을 사용하였는데 위작은 그러한 점이 고려돼 있지 않다.

위작은 80년대 이후에 제조됐기 때문에 이중섭 작품의 물감이 균열되는데 반해 위작은 만지면 부서지거나 따뜻한 물에 풀면 쉽게 풀려 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고의적으로 혼돈을 시키기 위해 종이 등을 일부러 파손시키거나 때 등을 묻혔다.

김 씨는 2004년까지 서울 근교 대도시에서 활동하다 이번에 위작 사건이 발생하면서 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 씨는 청계천 리어카상 등지에서 5만원 내외로 판매되는 위작품을 제작해 전문 위작범과는 구별되는데 청계천 복원 공사와 함께 청계천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위조범 일당을 검거한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불법 유통된 이중섭 그림은 2점인데 모두 캔버스에 그린 것이다.

박수근 작품 위작범은 경주 출신의 이 모 씨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변사지 화백의 그림 '해녀'(1호). 오른쪽이 진품. 원유헌 기자
박수근 작품은 캔버스나 하드보드에 1단계 바탕 만들기 때 흰색과 담황갈색을 배합해 칠한 후 마르면 다시 칠하는 방식으로 7~8회를 반복한 뒤 본 그림을 그리는 2단계 절차를 거치는데 위작은 1ㆍ2단계 과정에서 충분히 산화를 시키지 않기 때문에 침윤 부족성 등으로 마티에르(작품 겉면에 나타난 질감적 특징)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나 위작을 구별하기가 쉽다. 이번에 검거된 박 모씨가 유통시킨 박수근의 그림 역시 마티에르에서 진품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위작범 이 씨는 박수근 외에 김환기, 남관 작품도 동시에 위조하다 90년대 초 발각돼 실형을 선고 받은 후 자제하고 있으며 현재는 중국 등지를 오가며 골동품 등을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미술계는 여자 위작범 이 모씨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이 씨는 원로화가들에게 은밀히 접근해 위작을 유통시켜 몇 차례 구속된 적도 있다. .

천경자 그림은 2000년 권 모 씨가 위작을 대량으로 유통시켜 미술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서울 M화랑의 이 모씨는 2005년 한국 고서양화의 대가급(이인성, 나혜석, 김경, 황술조 등) 작가들의 위작을 구입한 뒤 대구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박 모 씨에게 위조 사인을 넣게 해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인사동에서 S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 씨는 황유엽 등 대가들의 작품과 김일해 등 중진급 작가들의 작품을 위조해 판매한 것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화랑 직원인 임 모 씨 역시 위조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창원 출신으로 인사동 지하에서 콜렉션을 운영하고 있는 모 인사 또한 위작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명화가 이만익 화백의 가족시리즈 모조품, 원유헌 기자
고미술품 위작은 허위 감정서를 발급하여 판매하거나 전시명목으로 책자를 만들 때 모조품을 마치 진품인 양 등재하여 애호가들을 속여 판매하는 경우로 나뉜다. 화랑을 운영하는 K씨가 전력이 있다.

조각은 99년에 김 모 씨 등 9명이 문신 작품을 위조하려다 일망타진된 후 뿌리가 뽑힌 상태다.

최근 위조범 일당을 검거한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미술품 중간 판매상 복 모 씨 형제가 무명 화가들을 고용해 작가별로 위조하거나 가짜를 사들여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위작품은 천경자 8점을 비롯해 이중섭ㆍ박수근 각각 2점, 이만익 19점 등 모두 99점에 이른다.

지난달에는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가 위조범 검거 사건의 단초가 된 변시지 화백의 위작 ‘조랑말과 소년’을 진품으로 감정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미술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조범이나 위작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수사하는 한편 감정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