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로얄 살루트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 수상"FTA는 시대 흐름… 현미경보다 망원경으로 득실 바라보기를75세 되도록 회고록 안 써… 새로운 것 찾느라 지금도 바빠"

“존경이란 개인의 울타리를 넘어 타자나 공공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말입니다. 존경의 상은 제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분들이 타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들 앞에 증명하기 위해서 이 수상식에 나왔습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가 제2회 로얄 살루트 ‘마크 오브 리스펙트 (Mark of Respect)’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로얄 살루트가 문화예술계에서 한 해 동안 국내외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성과를 남기면서 국익에 기여하고, 훌륭한 인품과 열정, 리더십을 보유한 인물에게 수여하고 있다.

이 교수는 오피니언 리더와 문화예술에 관심이 높은 일반인, 문화예술 담당 언론인 등 1,100여명의 추천과 설문조사를 거쳐 최종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10일 열린 시상식에서 존경의 의미를 담은 스코틀랜드 전통 위스키잔인 퀘익(Quaich) 모양의 트로피를 안아 든 이 교수는 상금 2,000만원 전액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정신에 따라 우리 문화 지킴이 ‘아름지기’에 기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게는 넘치고 넘치는 술잔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경의 상은 제 경우처럼 저 자신을 위해 글을 써온 사람, 졸음이 올 때 눈을 감는 것처럼 극히 생물적 반응으로 행동해온 사람은 얻기 힘든 영예라고 생각한다”는 이 교수는 “깊은 존경의 뜻을 이 술잔에 담아 고귀한 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바치려고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교수는 “요즘 세상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것이 바로 ‘존경’이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고 말문을 꺼냈다. “저는 보들레르의 시를 좋아하지만 그 시인을 존경한 적은 없습니다.

요절한 이상의 천재성에 감탄을 한 적은 많아도 존경을 느꼈던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재승덕박한 모차르트도, 광기어린 고흐도 저에게 준 것은 감동이나 전율이었지 존경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이 교수는 “대체로 예술가들은 공중으로부터 존경을 받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결점과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나름대로의 예술가론을 펼친다. 때문에 그 역시도 ‘오랫동안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지만 존경받는 스승은 아니었다는 것이 자신의 평가다. 그는 “50년 넘게 가정을 지켜왔지만 과연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역사와 사회, 문화 등 어느 부문을 망라하지 않고 넓은 식견을 자랑하는 이 교수는 요즘 우리 사회 최대의 화두 중 하나인 한·미 FTA에 대해서도 확고한 의식을 갖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돌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유무역의 개념은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1, 2차 세계대전도 불평등한 관세나 무역, 금융 등의 무제와 결코 관련이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 교수는 “인간의 역사는 곧 무역의 역사라 해도 무방하다”며 “어쨌든 구한말까지 가장 완고하게 중상주의를 거부하고 무역을 전혀 하지 않던 우리나라가 뒤늦게나마 세계 최대의 부국인 미국과 FTA를 타결, 시장 통합에 나섰다는 것은 ‘엄청난 임팩트’임에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FTA에 대한 그의 해석은 일례로 현미경과 망원경의 비교로 이어진다. “아무리 깨끗한 음식물이라도 현미경으로 보면 대장균도 보이고, 먹기 힘들 걸요.” 한·미 FTA에서 각개 조항에서는 불이익이 우려되더라도 그것이 시장 통합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멀리 있지만 넓은 미래의 큰 시장이 보인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한마디로 그는 ‘한·미 관계’라는 미시적 접근보다는 ‘세계 시장 통합’이라는 거시적 접근을 강조한다.

FTA도 ‘미래에 대한 큰 투자’로서 피해갈 수 없는 ‘벽 넘기’의 한 과정이라는 것. 무엇보다 인구밀도가 높고 부존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은 세계 시장을 갖지 않으면 결코 발전해 나갈 수 없다고 그는 못박는다.

그는 또 땅벌과 닭을 예로 들었다. “날개가 작은 땅벌은 날아 다니며 꿀을 따옵니다. 하지만 닭은 날개가 크면서도 땅만 파헤치고 있습니다.” “FTA가 우리에게 날려는 의지만 있으면 ‘날개’를 달아 줄 것”이라는 그는 “한국은 날개는 작지만 꿀을 따오는 땅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코 좁은 땅에서 날지 못하는 채로 서로 싸우고 물어 뜯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빨리 변해가는 속도가 엄청납니다. 100년 전 구한 말의 신문과 요즘 신문을 비교해 보세요. 일어나는 사회적 사건은 비슷합니다. 달라진 것은 레이아웃이나 광고죠.” 사회적 가치나 도덕관에서보다 예술 분야에서 창조적인 변화가 항상 먼저 온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끝없이 창조의 과정 속에서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것이지 옛날 것만 답습하다가는 도태한다’는 것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의 욕심은 지금도 식을 줄을 모른다. 그의 나이 올해 75세. 이 교수는 “사람들이 제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저로부터 새로운 얘기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회고담을 안 쓰고 있잖아요!” 생물체건, 사람의 생각이건 창조적이지 못하면 죽는다고 그는 생각한다. 40여년 교수 생활 동안 한 번도 같은 노트를 쓴 적이 없는 그다.

그는 지난해 ‘디지로그’라는 책을 펴냈다. 정보통신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지 자신의 전망을 드러낸 이 책에 대해 그는 ‘기술의 변화가 어찌나 빠른지’ 책 내용의 각론에서 전과 다른 변화가 벌써 잇따르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디지털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디지털이 더 디지털화 되려면 우리가 버렸던 아날로그도 다시 돌아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거울을 보며 살아 갈 수는 있어도 거울 속에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교수는 집에서 서재에 PC를 7대나 설치해 놓고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나는 오피스용, 다른 것은 스캔 전용 등 기능별로 나눠 쓰다 보니까 7대까지 늘어났어요. 프린터도 레이저와 잉크젯을 PC별로 따로 연결해 놨거든요” 그의 집을 방문한 지인들은 그래도 ‘정신이 사납다’고 놀라워한다.

그럼에도 그는 PC에서 오락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예전엔 테트리스 정도를 했는데 ‘괜히 승부욕을 부린다고 밤새 열중해 보니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느꼈다는 것. 그 흔한 인터넷 채팅 역시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인터넷으로 음악을 다운 받아 즐기는 것은 좋아한다.

“장관이나 임원 같은 책임지는 일은 본능적으로 체질에 안 맞아요. 교수 시절에도 학장 한 번 한 적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CEO나 사장을 하면 그 회사가 안 좋지요. 옆에서 아이디어 내놓으라면 모를까요.” 공직이나 조직 사회에 몸담는 데 대해 그는 미련이 없다.

“예술적 기질이 많아서인지 혼자 하는 일을 좋아해요. 내게 가장 맞는 일은 글 쓰고 책 읽는 일 같습니다.” 그나마 교수라는 직업이 그 일을 하기에 적당했다는 그는 앞으로도 평생 글을 써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상도 외국 기업에서 투표로 정했으니까 받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주변 사람 챙기며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이 교수는 “우리도 진정으로 존경할 인물을 갖게 되는 것이 앞으로 할 일”이라고 힘줘 말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