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연출자·출연진 재계약 과정서 결별, '비사발' '비사발S'로 갈리며 적자차세대 한류상품에 오점… 법정싸움 길어질 경우 해외공연 등 차질 불가피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지난해 문화계 최고의 아이콘은 단연 비보이(B-boy)였다.

그중에서도 2005년 12월 홍익대 부근에 전용 극장을 열고 시작한 뮤지컬 ‘’(이하 비사발)는 비보이 열풍의 토대가 된 원조 작품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매회 400석의 전용 극장 좌석이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이 작품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지난해 11월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2007년 새해 매출 목표가 300억원”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이 공연의 제작사 SJ 비보이즈 최윤엽 대표는 최근“올해 들어 매달 억대의 적자로 고전하고 있다”고 한숨을 지었다. 없어서 못 팔던 표가 이제는 절반이 넘게 남아도는 상태가 된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잘 나가던 비보이 열풍의 발목을 잡은 것일까. 바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비사발’을 표방하며 대학로 JH홀에서 공연 중인‘ 시즌 1’(이하 비사발S)이다.

같은 공연, 다른 무대 '비사발과 비사발S'

제목 뿐만 아니라 공연 내용도 거의 흡사하다. 그렇다고 후속편도 아니다. 이른바 ‘쌍둥이’작품이 서로 다른 무대에 동시에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이 두 작품을 혼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천안에서 공연한다는데 스케줄 확인이 안돼요. 제가 못 찾는 건지요. 공연 정보 알고 싶어요.” (ego0814, 게시판 중에서)

“비사발과 비사발S는 무엇이 다른가요?” (summer79, 네이버 게시판 중에서)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해 ‘비사발’ 제작자와 연출가, 출연진이 재계약에 대한 이견으로 갈라섰다. 그 결과 기존의 공연 출연진은 다른 팀으로 교체됐고, 원조 안무가와 출연진 중 일부가 떨어져 나와 ‘비사발S’를 대학로 무대에 올린 것이다.

팬들도 두 팀으로 나눠졌다. 홍대에서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있는 ‘비사발’이 단연 원조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원조 안무가와 출연진이 꾸미는 공연이 진정한 ‘비사발’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법원은 일단 원조 출연진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3월 기획사 SJ비보이즈 최 대표가 연출가 문 모씨와 안무가 김 모 한 모 씨 등을 상대로 낸 공연금지가처분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제작자의 “저작권 주장은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최 대표가 ‘비사발’의 시놉시스와 극본을 창작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문 씨(연출가)가 SJ비보이즈의 피고용자 지위가 아니라 도급 내지 위임계약 관계에 있었다”면서 “최 대표와 SJ비보이즈가 ‘비사발’의 시놉시스 및 극본에 대한 저작권을 갖는다는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공연의 안무는 SJ비보이즈 이름이 아니라 김 씨와 한 씨(안무가) 등의 이름으로 공표되었고, 기록상 SJ비보이즈가 이들로부터 안무에 대한 저작권을 양수한 것으로 볼 만한 자료가 없다”면서 “SJ비보이즈가 안무에 대한 저작권을 가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저작권 분쟁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4월 24일 SJ비보이즈 홈페이지에는 ‘저작권 침해 피의자들 전원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라는 속보가 떴다.

SJ비보이 측에 따르면 ‘비사발S’의 문 모 씨, 한 모 씨 외 4명이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방지법에 관한 법률 위반, 무고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것이다.

SJ비보이즈 최 대표는 “문 모 씨 등이 ‘비사발’을 창작하지 않았다는 동영상, 이메일, 계약서 등의 증거 자료 확보가 충분하다”며 “이 사건은 저작권 분쟁이 아니라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며 강경한 대처 방침을 밝혔다.

반면 ‘비사발S’는 사건에 대해 극히 말을 아꼈다. “공연 하나 잘 만들어 겨우 시장에서 붐을 일으켰는데 괜히 공연 이미지에 먹칠할까 우려된다”고 법정싸움이 종결되기까지는 이에 대한 언론 보도 등에 신중을 기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여하튼 법정에 간 ‘비사발’의 싸움은 쉽게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렇지만 어떤 결말이 나든 ‘공연 혁명’으로까지 찬사를 받던 ‘비사발’은 적지 않은 상처를 안게 됐다. 저항적인 ‘거리 문화’의 상징이었던 비보이가 무대 작품으로 상업화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이번 비사발 분쟁이 ‘거리의 아이들이 이제 배불렀나 보네’ 하는 선입견을 팬들에게 심어주지나 않을까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과거 대본이나 음악에서 불거졌던 저작권 다툼이 안무, 디자인으로 확산되는 시발점도 됐다. PMC프로덕션 김찬서 제작부장은 “뮤지컬의 경우 작사나 작곡에 대한 저작권은 있지만, 안무나 무대 디자인, 연출 분야에는 아직 저작권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은 비보이 배우들이 안무에 대한 저작권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게다가 현재 대부분의 비보이 공연들은 기존 팝 음악 등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어 또 다른 저작권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사발’이 인기를 끌면서 주크박스 비보이 뮤지컬, 전통 굿 소재의 비보이 뮤지컬, 줄 인형극 비보이 뮤지컬 등이 잇달아 쏟아지며 비보이 공연의 양적 확대는 이뤄졌으나,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는 게 공연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비보이 공연은 정부가 공개적으로 지원하는 대표적인 차세대 한류 문화 상품이다. 게다가 ‘비사발’과‘비사발S’는 현재 양측 모두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지의 해외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반짝 인기 상품이 아닌, 세계로 뻗어나가는 종합예술로 거듭나기 위해선 갈등이 하루 빨리 매듭지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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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