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자수성가한 미국내 한인 부동산 거부

고객의 바지 한 벌을 잃어 버린 대가로 600여 억원의 소송을 당한 재미동포 세탁소 주인을 위해 1,000만원짜리 키톤(Kiton) 양복 한 벌을 선뜻 내놓은 재미동포 사업가가 최근 내한했다. 데이비드 조(한국명 조재용 ) 키톤코리아 대표가 주인공.

미국인 판사에게 제시한 양복이 공교롭게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즐겨 입는 최고급 브랜드 양복이란 사실로 뉴스가 된 데 이어 조 대표가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최고 거물급 한인 부동산 갑부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연거푸 주목을 받고 있다.

“바지 소송 사건이 일어난 도시인 워싱턴DC에 제가 살고 있어요. 그래서 같은 지역 동포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해 얼른 미국인 판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지난 4일 뉴스를 접한 뒤 소송을 제기한 미국 연방행정법원 로이 피어슨 판사에게 소송을 취하하면 1,000만원짜리 세계 최고급 양복을 제공하겠다고 e메일과 항공우편을 통해 제의했다. 또 양복을 맞추기 위해 한국을 왕복할 수 있도록 항공료와 체제비까지 부담하겠다고 제안했다.

사건이 그렇게까지 커진 데 대해 그는 ‘감정싸움이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바지 한 벌로 생겨난 문제인 만큼 쉽게 화해돼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까싶어 양복 선물을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아직 피어슨 판사의 응답이 없지만 포기하진 않고 있다.

“어쨌든 이번 소송은 전혀 실현 불가능한 것입니다. 미국인들조차도 소송이 상식밖의 야비한 행위라고 여기고 있으니깐요.” 미국 문화에 친숙한 그도 “판사로까지 임용된 사람이 그런 소송을 제기한 것에 공감할 한국인과 미국인은 없다”고 단언한다.

“미국 내 저명한 판사도 자기가 이 사건을 맡게 되면 기각시키고 오히려 세탁소 측이 그에게 손해배상소송을 할 수 있도록 판결하겠다고 합니다. 동료 판사들 대부분도 피어슨 판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의와 공정한 판결을 중시하는 미국 법정에 기대를 걸어 본다”며 “사건이 굳이 법정까지 가게 되더라도 결국 기각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그가 판사에게 선물로 내놓은 ‘키톤’은 이탈리아제 최고급 브랜드로 세계 3대 양복 명가로 꼽힌다. 한 벌 가격만 해도 웬만한 소형 승용차 한 대 값에 버금가는 800만~1,000만원 선. 조지 클루니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배우들과 중동의 부호들이 주요 고객이다. 국내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50명의 장인들이 직접 수공으로만 양복을 제작 생산하는 키톤은 5대째 계속돼 온 오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키톤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최고급 원단은 ‘바람에 날릴 듯 가벼운 양복’으로도 이름 높다. 비결은 극세사 공법. 실의 굵기가 0.13~0135mm에 불과할 만큼 가느다란 실만으로 촘촘하게 원단을 만들어낸다.

12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본인 표현을 빌리면 ‘자수성가한’ 셀프 메이드 맨(Self-made man)이다. 이민 1.5세대로서 고생이 적지 않았다. “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 일을 많이 했어요. 대학교 때는 공부하는 시간 말고도 일주일에 30시간 이상 일을 해 학비를 벌었습니다. 여름 방학 때도 쉬는 기간이 별로 없었어요.”

일의 성격도 가리지 않았을 만큼 여러 분야에서 일했다.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굽는 요리사 겸 웨이터 일도 했고 카지노와 생물 실험실 조교, 영어 강사 경험도 갖고 있다.

그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다가온 것은 대학 졸업 후 부동산 개발회사에 들어 가면서부터. 그냥 인턴십으로 들어갔는데 그는 정직원을 거쳐 이후 사업의 동반자격인 ‘파트너’로까지 올라섰다.

그가 설립한 코너스톤 그룹은 부동산 투자개발 전문회사. 미국 내 30여 개 주에 걸쳐 쇼핑몰과 호텔, 빌딩 등을 운용하고 있는데 자산만도 3억 달러(약 2,800억원)를 넘는다. 한인으로서 미국 부동산 업계에서 대형 ‘파트너’급으로 활동하는 이를 찾아 보기는 쉽지 않다.

90년에 맞춘 양복을 17년째 입고 있을 만큼 그는 허리 사이즈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양복이 비싸니까 오래 입으려고 그래요.” 그의 성실성과 자기 관리가 얼마나 철저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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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