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대상 수상 김제 용지중학교 교장전형적인 농촌학교를 부임 3년 만에 전북 김제지역 대표 중학교로 만들어잉글리쉬 카페 개설 등 교육환경 개선에 헌신, 방학땐 일본서 우리 전통문화 공연도

한국일보가 주최한 제26회 한국교육자 대상을 수상한 전북 김제시 용지면 용지중학교 박경애(56) 교장을 지난달 27일 교장실에서 만났다.

대뜸 박 교장에게 교육신념을 묻자 “교사는 제자를 위해 존재하고 학생 때문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짤막한 답변만 돌아왔다. 거창한 철학과 생생한 경험을 술술 풀어낼 줄 알았는데 조금 싱거웠다.

그럴듯한 대답을 기대하며 다시 질문하자 이번에는 아예 손사래를 저었다. “대상을 수상한 것이 기쁘고 영광스럽지만 한편 부끄럽습니다. 제 기사가 언론에 3, 4차례 나오면서 내 자랑을 되풀이 하는 일이 이제는 두렵습니다. 동료들의 도움이 큰데 나 혼자 공을 독차지한 것 같고 이제 다른 교사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조용히 교육에만 전념하고 싶습니다.”

지역교육계에서 추진력과 기획력을 갖춘 ‘여장부’로 소문나 이 같은 일성(一聲)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박 교장은 마음을 열자 교육에 대한 포부와 열정을 쏟아놓았다.

박 교장은 집안 일보다는 학교 일이 우선인 말 그대로 ‘일 중독자’다. “잘하는 일도 없고 취미도 없어 부득이 학교와 학생만 생각하고 산다”고 둘러댔지만 교육과 결혼한 것 같은 헌신적인 교육자로 보였다.

용지중학교 정명자(49) 교무부장은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온 뒤 거센 변화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고 리더의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달게 되었다”면서 “탁월한 발상과 기존 틀을 깨고 앞서가는 교육활동을 통해 소규모 농촌학교라는 한계를 돌파하는 것을 수차례 보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형적인 농촌 학교인 용지중학교는 2004년 3월 그가 교장에 취임하면서 확연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학생들이 지은 지 30년이 넘어 곧 주저앉을 것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 교정은 늘상 한적했다.

3년 후. 전교생이 127명에서 한 해 10명씩 줄어 97명(교사 14명)에 불과했지만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 방과후 교육에도 학생들 자발적 참여

2004년 10월 새로 지은 건물은 최신시설을 갖췄고 교사와 학생들의 얼굴에도 생기와 열의가 넘쳤다. 점심시간이 되자 리코더를 불며 층계를 내려오던 학생들은 순식간에 점심을 해치운 뒤 다시 리코더 합주반에서 연주를 하고 잉글리쉬 카페에서 외국인과 영어회화(월, 금요일)를 하거나 일본어회화(화, 수 ,토요일)를 배우느라 분주하다.

오후 3시5분 정규수업이 끝나도 학생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매일 1시간씩(3학년은 2시간) 보충수업(국어, 영어, 수학, 과학)을 한 뒤 컴퓨터와 풍물, 중국어 등 특기적성 교육을 받는다.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이용, 학교에 개설된 ‘용지 잉글리쉬 카페’에서 원어민과 함께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이용, 학교에 개설된 '용지 잉글리쉬 카페'에서 원어민과 함께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오후 7시까지 자율학습이 계속된다. 집에 돌아가서도 저녁을 먹고 마을 교회의 방과후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기본 생활이다. 여러 곳의 학원을 순례하는 대도시 학생처럼 바쁘지만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인지 배움의 열기가 가득했다.

특히 요즘은 7월 27일부터 3박4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가노야(鹿屋)시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가하기 위한 준비로 더욱 부산스럽다. 28명의 대표가 우리 전통문화를 선보일 수 있는 풍물과 화관무, 민요 연습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이 같은 행사를 추진했는데 독도 문제가 불거져 아쉽게 무산되었다.

항공료 등 모든 비용은 박 교장이 전북도교육청과 김제시 등의 지원을 받아내 마련했다. 내년에는 임기(2008년 2월)가 끝나 용지중학교를 떠나야 하지만 이 축제에 매년 참가할 수 있는 여건을 탄탄하게 만들어 놓을 계획이다.

비행기를 처음 타본다는 학생들은 일본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일본 학생들과 대화를 위해 일본어회화 공부도 여느 때와 달리 열심이다.

강의는 박 교장이 무료로 초청한 이영헌(79) 전 전주북일초등학교 교장이 자원봉사하고 있다. 연로하고 운전도 못해 전주에 사는 이 전 교장을 박 교장과 교감, 행정실장이 번거롭지만 교대로 모셔오고 수업이 끝나면 집까지 바래다 주는 수고를 하고 있다.

화관무 연습하고 있는 3학년 박세영(15) 양은 “교실 천장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여러 가지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어 공부할 맛이 나요”라고 학교 자랑을 한 뒤 “일본에 가는 생각만 해도 설레요.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연습해 일본 학생들 앞에서 우리 전통 춤을 멋지게 추고 싶다”며 웃었다.

이 같은 변신의 주역은 박 교장이다. 취임하자마자 학교 분위기와 학생 생활 여건 등을 신속히 파악했다. 대부분이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문화 혜택은커녕 도시 아이들이 몇 군데씩 다니는 학원을 단 한 곳도 가기가 어려운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게다가 치열한 입시교육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시골 중학교라서 고입 성적이 당연히 낮았고 이런 이유로 조금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은 전주나 익산, 김제로 빠져 나가는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우선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포커스를 맞췄다. 보충수업을 시키기로 결심하고 선생님 설득에 나섰다. 선생님들은 처음에는 거부감을 표했지만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는 현실에 공감해 흔쾌히 동참해 주었다.

자신의 뜻을 따라준 동료들이 고마웠다. 보충수업 수당을 ‘최고액’인 2만 5,000원을 주겠다고 제시했지만 학교 재정을 뻔히 알고 있는 교사들은 가장 낮은 1만 5,000원만 받겠다며 몸을 아끼지 않았다. 박 교장은 이 순간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스승이 살아있다’고 감동을 했단다.

곧 방학이 닥쳤다. 긴 방학을 그냥 놀릴 수 없어 다시 선생님들에게 부탁했고 이 학교 출신 대학생들을 수소문해 의대생과 영문과생 두 명에게 자원봉사를 호소했다. 이들은 교통비만 받고 1, 2학년생의 영어와 수학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즉시 나왔다. 첫 해는 8명이 전주와 익산시의 일반고에 입학하는 성과를 냈으며 지난해 졸업생 35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명이 그곳에 진학했고 김제 지역 최고득점자도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처럼 용지중학교가 김제 지역을 대표하는 중학교로 떠오르자 여건이 비슷한 농촌학교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하고 있다.

■ 도시로 떠났던 학생 '역 전학' 오기도

박 교장은 이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실력 향상 이외에도 최대한 문화 혜택을 받도록 했다. 특기적성 활동으로 해오던 풍물 활동을 강화, 최근 3년 동안 청소년동아리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한 학생이 1개 악기 정도는 연주할 수 있도록 리코더 합주부를 만들어 점심시간까지 쪼개 연습한 결과 전북 중등학생 예능경진대회에서 3차례나 은상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용지 잉글리쉬 카페’는 전북도교육청이 도시 학교를 제쳐두고 영어카페 선도학교로 선정했다. 원어민 강사도 자체 예산으로 1명을 더 배치해 2명이나 된다.

이뿐이 아니다. 컴퓨터반, 한자급수반, 중국어반은 물론이고 황토인 용지면의 특색을 살려 ‘황토사랑과학동아리반’을 조직, 황토작물의 보존성과 황토작물의 맛 등 다양한 연구를 지원하고 과학문화재단 탐구대회, 전북과학축제, 대전사이언스데이 등에 참여하는 눈부신 활동을 벌였다. 모든 교육은 무료다.

예산은 모두 박 교장이 끌어왔다. 연구학교와 시범학습 신청 등 외부 활동에는 닥치는 대로 참여해 연구비를 타냈다. 이 같은 노력 결과 지난해 도시로 나간 학생 3명이 역(逆)전학 오는 보람도 맛보았다.

노는 토요일도 방과후 학교를 열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박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도시아이들보다 모든 면에서 뒤지지 않게 키우고 싶다”며 “교육문제로 도시로 나가는 학부모가 생기지 않도록 주어진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은희(46) 연구부장은 “많은 일을 벌이는 교장 선생님 때문에 교사들은 솔직히 힘들다고 입을 모으지만 모두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결과가 좋아 이런 것이 진정한 교육이구나 느꼈다”며 “욕심이 많고 오로지 교육을 위해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공사구별이 뚜렷해 교사들이 존경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지난 71년 초등학교 교사로 출발한 박 교장은 음악교육과에 편입, 79년부터 중학교 음악교사로 변신했다. 오는 8월에는 전북대서 교육행정학 석사학위도 취득한다. 현재 전북중등음악교육협의회 회장을 맡아 오는 9월에 열리는 5개 도시 중등음악교사 연합합창대회를 준비하느라 퇴근 후에도 시간 여유가 없다.

박 교장은 “어디에 있든지 교단에 서는 날까지 학생들이 신나게 놀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이바지하고 싶다”며 “용이 승천하는 연못이라는 의미를 지닌 용지(龍池)에서 많은 미래의 용들이 나오길 바란다”고 소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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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최수학 한국일보 기자 sh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