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유통 점차 확산… 물·술뽕·도리도리·작대기 등 은어로 통해임산부·고등학생도 이용해 충격… 밀반입 필로폰의 98.7%는 중국산

50대 초반 남성 K씨는 어느날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카페에서 우연히 마약판매 광고를 접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마약 판매업자와 연락을 주고받다가 결국 마약에 손을 댔고, 상습적으로 투약하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K씨를 마약의 수렁으로 유혹한 것은 중국 지린성의 조선족 마약 판매업자 A였다. A는 국내 인터넷 카페에 마약판매 광고를 올린 뒤 여기에 걸려든 사람들에게 국제 항공택배를 이용해 중국산 필로폰, 엑스터시 등을 우송했다.

A는 세관검사를 무사 통과하기 위해 마약을 비닐 코팅된 광고 전단지 또는 우편엽서 등에 숨기는 교묘한 수법을 썼다. 또 국내에 환치기 계좌를 개설한 뒤 이를 통해 마약 구입자들로부터 대금을 받아 챙겼다.

인터넷에서 A의 마약광고를 접한 뒤 금단의 선을 넘은 사람은 K씨를 포함해 20여명이나 됐다. 그 중에는 임산부, 고등학생, 공익근무요원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까지 끼어 있어 충격을 줬다. 지난해 초 경남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적발해낸 사건이다.

지난 3월에는 전북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가 국제 특급우편으로 필로폰을 몰래 들여와 판매ㆍ투약한 마약사범 10명을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에 있는 필로폰 판매업자와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은 뒤 필로폰을 공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 마약사범들이 가장 많이 투약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인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의 최대 공급국은 중국이다. 검찰의 2006년 마약류범죄백서에 따르면 국내에 밀반입되는 필로폰의 98.7%가 중국산이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마약 유통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특정 다수에게 손쉽고도 은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 속성 덕분에 인터넷은 마약 공급업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유통 경로로 자리잡아가는 추세다.

특히 인터넷을 즐겨 사용하는 젊은 계층이 마약의 유혹에 쉽사리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마약 투약자가 인터넷을 매개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GHB/물뽕/술뽕…메일 주소로 문의하세요.” “작대기, 도리(도리), 대마(초) 문의하시려면 메일 주소로 연락주세요.” “작대기, 도리(도리), 대마(초), 마리화나, 엑스(터시)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안전 보장합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재완 의원실이 최근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16개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와 같은 마약류 판매광고가 버젓이 네티즌을 유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HB는 무색무취의 약물로 음료수나 술에 몇 방울 타서 마시게 되면 그 효과가 서너 시간 지속되는 신종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속칭 물뽕 혹은 술뽕으로 불린다.

특히 24시간 안에 약물이 인체를 완전히 빠져나가기 때문에 사후 추적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대기는 필로폰 주사기, 도리도리는 엑스터시를 뜻하는 은어다.

문제는 이런 마약 판매광고에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걸려든다는 사실이다.

실제 지난 8월 중순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GHB 새로 들어왔습니다. 많은 문의 바랍니다”라는 광고에는 5명의 네티즌이 이메일로 문의한 것으로 박재완 의원실은 확인했다. 일부 인터넷 마약상은 아예 샘플을 구매 희망자에게 보내 구입을 유도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한 마약 유통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사실은 경찰의 단속 실적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에 적발된 인터넷 마약 거래 사건은 2006년 7건(검거인원 79명)에서 올해는 7월까지 10건(48명)으로 늘어났다.

경찰청 마약계 관계자는 “2004년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 마약 거래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는데 2005년부터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라며 “그 중에는 설탕이나 밀가루 등을 마약으로 속여 파는 가짜 마약 거래 사건도 일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 전국 지방경찰청 산하 16개 마약수사대 안에 사이버수사요원을 두고 정보통신부, 청소년위원회 등과 함께 인터넷 마약 유통을 집중 감시하고 있으나 광범위한 인터넷의 속성상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인터넷 마약상은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게릴라식으로 출몰하기 때문에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며 “순간적으로 마약상의 IP주소를 포착해야 수사가 가능한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2000년대 초 검찰의 집중적인 마약사범 소탕 작전으로 현재 국내에는 토종 마약밀조 조직이 거의 사라졌다는 게 사법당국의 분석이다. 그 덕분에 한국은 마약 청정지역으로 유엔의 인정을 받기도 했다.

인천공항 세관 마약 탐지견들이 수화물을 대상으로 마약을 찾아내는 훈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제 마약밀매 조직이 인터넷과 국제우편 등을 활용하는 빈도가 높아지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오히려 강도 높은 마약 경계보가 내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찰과 경찰도 이런 점을 중시해 마약 유통 경로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사범은 2000년대 초 대대적인 단속으로 감소세를 보였으나 최근 수 년 사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는 추세다. 2006년 전체 마약류 사범은 7,709명으로 전년 대비 7.8% 증가한 데 이어, 올해는 6월 현재 단속 누계가 총 4,78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2%나 증가해 주목된다.

박재완 의원실 이강원 보좌관은 “인터넷은 익명성과 접근성 등의 속성 때문에 마약류 등의 불법 유통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소수에 불과할지 몰라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온라인 마약 판매가 급속하게 번질 수 있어 당국은 보다 철저한 단속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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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