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와 안 맞는다' '촌티 벗자' 매년 2만~3만 명 이름 바꾸기 신청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기폭제… 법원 허가율도 80% 넘어

‘이름이 운명을 결정하나?’ 이름과 운명에 정말 무슨 상관관계라도?

지금 ‘운명은 개명(改名)’ 중이다. 다름 아닌 ‘방학이다’, ‘새해다’, 그것도 모자라 ‘결혼 기념이다’해서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키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개명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최근 각 법원 가정지원과에는 ‘개명(改名)’을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해마다 2만~3만 명 이상씩 몰리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개명 접수 건수도 2005년 한 해 4,280건에 불과했던 것이 불과 2년 만인 2007년에는 1~6월 상반기에만 벌써 4,372건으로 늘어 이런 추세라면 2배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개명 신청 허가율 역시 2007년 1~8월 법원에 접수된 건수 5,012건 중 4,660건이 허가가 났고 66건만 불허 판정을 받았다. 마치 인생 전환을 위해 꼭 필요한 통과의례인 것처럼 개명을 신청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개명의 이유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촌스럽거나 흔하다는 이유로 또는 일본식 이름이라는 이유로 개명을 원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름 속에 담긴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 추구권 보장이 필요한 시대라는 논리도 내세운다. 게다가 성명학적 관점에서는 이름에도 사주와 비슷한 운명론이 곁들여져 있다.

“제 이름은 촌스럽거나 혐오감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성명풀이 때마다 매번 안 좋은 이름으로 분류됐어요. 게다가 저는 개성이 뚜렷하고 자아가 워낙 강해서 좀 더 예쁘고 좋은 이름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 개명 신청에서 실패하고 6년이 흘러 두 번째 신청에서 개명허가를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최근 ‘박선경’으로 이름을 바꾼 ‘박수아’씨의 개명 사유는 여타 개명을 원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름이 자신을 대표하는 하나의 브랜드 역할을 하면서 이름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결정도 중요해 졌다. 부모님이 지어주셨다고 해서 평생을 같이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면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물운과 학업운을 높이기 위한 성형 수술이 이제 더 이상 놀랄만한 이야기 거리가 아닌 것처럼 운명을 바꾸고자 외모를 바꾸고 이제는 이름도 바꾸는 셈.

이름을 바꾸려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동자’, ‘선비’, ‘전술’, ‘성기’, ‘창’, ‘예삐’, ‘섬역’ ‘료개’등은 자신의 이름이 어렸을 적부터 놀림감이 됐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 개명 신청을 한 사례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또 다른 단어를 연상 시키고, 은어나 속어의 어감을 주기도 해 어렸을 적부터 개명을 원했다.

‘본춘’, ‘몽순’, ‘점순’, ‘병태’ ‘기충’ 등 촌스러운 이름으로 이미지에도 문제가 되는 것 같아 개명을 신청한 경우도 있다. 그밖에 ‘존호’, ‘자잠’, ‘보미’ 등 출생신고시 호적에 잘못 기재가 돼 원치 않는 이름 때문에도 개명을 신청했다.

‘이름 때문에 성별이 혼동 된다’, ‘일본식 이름이다’, ‘너무 흔한 이름이다’ 등 그 외 다양한 이유로 개명을 신청한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개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2005년 방영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여주인공 ‘삼순’은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기폭제 같은 존재였다. 사회적으로 개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개명 의지를 내비치기 시작하게 된 것.

드라마 속 ‘삼순’이 신청한 개명 의사가 법원에서 통과되자 현실 속 ‘삼순’이들의 개명 신청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비로소 드라마를 통해 그간 잠들어 있던 이름에 대한 욕구가 되살아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원에서의 개명 신청 허가율 증가 추세 역시 개명 신청붐에 한 몫을 했다. ‘영자’, ‘정자’, ‘삼순’ 뿐만 아니라 ‘연정’, ‘상민’, ‘형주’도 이름을 바꾸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명이 훨씬 수월해짐에 따라 평범한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개명을 신청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은자’가 ‘지연’이 되고, ‘순영’이 ‘현진’이 된 것은 시대에 맞는 좀 더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고자 한 그들의 의지가 담겨있다.

개명 법무대행업체 개명 가이드의 팀장 김영진씨는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증가하고 지위가 상승하면서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개명을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30~40대 여성인 이유다.

특히 계약서 작성이나 각종 문건 작성이 잦아 이름을 사용해야 할 일이 많은 공인중개사들의 개명 신청률이 높다’고 전했다.

김팀장이 기억에 남는 개명 사례는 지난 2월 지충구(34)씨가 ‘이츠하크’라는 이름으로 바꾼 경우다. 예전부터 ‘이츠하크’라는 이름을 갖고 싶어 했다. 원래 ‘이츠하크’는 종교적인 이름으로 성경에서 ‘이삭’을 뜻하는 히브리어다. ‘지 이츠하크’ 씨는 이름을 바꾸고 유대교로 개종했다.

또 박윤자(22ㆍ여)씨 가족은 증조 할아버지까지도 함께 살고 있는 요새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집안 어른들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 의미는 좋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항상 놀림거리가 돼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결국 올 초 그 동안 바꾸고 싶었던 한글이름 ‘박 푸를청’으로 개명했다. 또 이옥희(28세ㆍ여)씨라는 여성은 ‘눈꽃’ 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지난 4월 개명한 서윤정(28세,여)씨는 “서은주에서 ‘서윤정’으로 개명을 한 후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 항상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서 우울하고 꼬이기만 했는데 ‘서윤정’이 되고 나서는 기분도 한껏 상쾌하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것만 같다.” 고 개명 소감을 이야기 했다.

김영진 팀장은 “예전에는 50% 이상이 촌스럽거나 일본식 이름이라는 이유로 개명을 신청했지만 최근에는 성명학적이나 철학적, 사회적인 이유로 개명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이 개인의 이름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보호하고 존중해 주는 추세로 개명을 인정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만 한다면 개명 허가 확률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름 때문에 흥망성쇠한다’는 사람들의 운명은 지금 개명 중이다. 그러나 좋은 사주와 그에 맞는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윤택한 삶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또 자신을 위한 계발과 개척에는 얼만큼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가 인생 성공의 더 큰 관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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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