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진흥법 개정으로 등록제 전환 '폭풍전야'등록 요건 안 되는 건전 업소 8,000여 개 폐업 위기'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 업계 발끈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 성실하게 PC방을 운영해 왔을 뿐인데 갑자기 법이 바뀌어 문을 닫아야 한다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습니까?”

PC방 업계가 난데없이 ‘폭풍전야’를 맞고 있다. 지난 1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으로 PC방이 자유업에서 등록업으로 바뀐 것이 폭풍의 진원지다.

정부가 게임산업진흥법을 손질한 것은 지난해 큰 파문을 일으킨 사행성 아케이드게임 ‘바다이야기’ 사건 이후 불법 사행성 게임장의 발호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성인게임장과 PC방을 운영하려면 각각 허가와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하게 됐다.

개정 게임산업진흥법 시행규칙 제16조에 따르면 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제공업(PC방)의 등록을 하려는 자는 관할 시ㆍ군ㆍ구청에 등록신청서와 함께 임대차계약서 사본 및 영업시설 개요서 등을 제출하도록 돼 있다.

이 같은 PC방 등록제를 포함한 시행규칙은 지난 5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으며, 오는 11월17일까지는 기존 PC방 사업자들도 모두 등록절차를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견상 PC방 등록제는 서류 몇 장 제출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까다로운 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등록업은 등록과정에서 기타 관계법령에 대한 저촉 여부를 확인하도록 돼 있다는 점이 PC방 업계를 곤혹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그 중에서도 건축법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건축법은 건축물의 종류에 따라 입주 업종과 면적 등에 제한을 두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PC방은 제1종근린생활시설에는 개설할 수 없다. 제1종근린생활시설은 각종 일용품 소매점이나 슈퍼마켓 등 주택가에 위치해 있으면서 일상생활과 관련성이 큰 상업시설을 말한다.

또한 제2종근린생활시설에는 PC방을 열 수 있지만 그 면적은 150제곱미터 미만으로 제한돼 있다. 반면 판매시설에는 150제곱미터 이상 면적의 PC방을 자유롭게 개설할 수 있다.

한 경찰이 서울 영등포구 관내 성인오락실을 단속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규정이 지난해 5월 건축법 개정 이후부터 시행된 것이어서 그 이전에 문을 연 대다수 PC방의 현실과 어긋나고 있다는 점이다.

PC방 업계에 따르면 2001년까지는 건축물 종류에 관계없이 PC방 개설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해 10월 건축법이 바뀌어 제1종근린생활시설에는 PC방이 들어설 수 없게 됐고, 제2종근린생활시설에는 500제곱미터 미만의 PC방만 개설하게 됐다. 그러다 제2종의 경우 지난해 개정 때 다시 150제곱미터 미만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현재 상당수 PC방은 제1종근린생활시설과 제2종근린생활시설에 집중돼 있다. 2006년 기준 전체 2만986개 업소 가운데 28.8%인 약 6,000여개 업소가 제1종, 46.9%인 약 1만개 업소가 제2종근린생활시설에 위치해 있는 것.

이런 상황에 PC방 등록제를 밀어붙이면 제1종근린생활시설에서 영업 중인 약 6,000여개 업소와 제2종근린생활시설에 위치한 면적 150제곱미터 이상의 약 2,000여개 업소 등 모두 8,000여개 업소가 문을 닫거나 이전할 수밖에 없다는 게 PC방 사업자단체인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이하 PC문화협회)의 분석이다.

갑작스런 폐업 위기에 직면한 PC방 사업자들은 당연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들은 PC방 등록제가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 발상에서 나왔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 은평구 증산동에서 11년째 PC방을 운영해온 임모(49)씨의 사업장은 제1종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하는 경우다. 그는 얼마 전 구청에 등록을 하려고 갔었지만 지금은 좌절감만 곱씹고 있다.

“구청 직원은 건물이 제1종근린생활시설이어서 등록이 안 된다면서 판매시설로 바꾸면 등록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2억원 가까이 드는 데다 건물주도 고개를 저어 결국 내가 나갈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송파경찰서 관계자가 성인 게임물‘바다이야기’를 모방한 불법 도박게임을 조사하기 위해 압수한 컴퓨터 하드와 프로그램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송파경찰서 관계자가 성인 게임물'바다이야기'를 모방한 불법 도박게임을 조사하기 위해 압수한 컴퓨터 하드와 프로그램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현재 PC방 개설 비용은 PC 50대 규모 기준으로 대략 1억5,000만~2억원 선이다. 이를 감안했을 때 판매시설 전환 비용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문화관광부로부터 모범업소 표창까지 받았다는 임씨는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규정이 완화되지 않으면 생존권 차원에서라도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큰 배신감을 토로했다.

제2종근린생활시설 PC방에 대해 면적 150제곱미터 미만을 규정한 조항에 대해서도 업계의 비판이 높다. PC문화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 PC방은 평균적으로 240제곱미터의 면적에 50대 이상의 PC를 보유하고 있다.

통상 업계에서는 PC 50대 정도는 가동해야 수지타산이 나온다고 보고 있다. PC 1대의 시간당 이용료는 전국적으로 평균 800~900원 선이다. 이런 터에 150제곱미터 미만의 면적으로 PC방을 운영하라는 것은 적자영업 강요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PC방 등록제가 불법 사행성 게임업소를 걸러내기 위한 취지를 지녔다지만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관계법령의 요건에 맞춰 등록을 한 업소 중에 불법 영업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서울 강서구에서 PC방을 운영 중인 배모(51)씨는 “인근 지역 PC방 중에는 최근 등록을 마친 뒤에 버젓이 불법 사행성 게임 영업을 하는 업소들이 있다”며 “불법 PC방은 PC 20여대만 있으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면적 요건을 쉽게 충족시킨다”고 밝혔다. 그는 또 “PC방 등록제가 불법 사행성 게임장을 봉쇄하는 효과는 사실상 없다”고 단정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사행성 PC방을 차단하려고 내놓은 조치가 오히려 건전한 영업을 하는 상당수 PC방을 곤경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는 것이다.

규제개혁위원회도 이런 목소리에 귀기울여 지난 5월 건설교통부에 PC방 면적기준 완화 등 건축법 관련규정의 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건교부에서는 등록마감 시한인 11월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PC문화협회 조영철 정책사업국장은 “PC방은 게임산업을 발전시키고 인터넷문화를 형성하는 데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큰 기여를 했다”며 “정부가 불법 PC방을 잡는다며 전체 PC방 산업을 위축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희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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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