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형 공장에선 외국 브랜드·외부 생산 제품 팔 수 없다"산업단지공단, 입점업체 규정위반 내세워 계약 해지 통보마리오 아웃렛 등 강력 반발… 헌법소원·서명운동 등 전개

‘유명 브랜드 제품을 값싸게 살 수 있어 서민들의 쇼핑 명소로 사랑 받는 금천패션타운이 문을 닫게 되나?’

구로 아웃렛이란 이름으로도 유명한 금천패션타운(옛 구로공단 2단지)이 입주업체들과 한국산업단지공단(산단공) 사이의 갈등으로 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산단공측은 각종 규정 위반 등을 내세워 입주 매장들을 내쫓으려(?) 하고 있고 상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입주 업체와 매장 관계자들은 이에 반발, 거세게 맞서고 있어서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마리오 쇼핑몰이 자리한 금천패션타운 4거리의 최근 모습을 보자. 쇼핑백을 들고 나들이에 나선 가족, 연인 등 고객들로 들떠 있어야만 할 이 곳 쇼핑가 분위기가 요즘에는 흡사 노동쟁의 현장 같이 격앙되어 있다. 다름 아닌 거리 곳곳에 붙어 있는 전투력 짙은(?) 내용의 플래카드들 때문이다.

‘산단공은 임대업을 즉각 포기하고 금천구민의 새로운 삶을 보장하라’ ‘투자 않고 주인 행세하는 산단공은 즉각 해체하라!’ ‘패션업체 1만명 종업원의 생존권을 산단공은 무조건 책임져라!!’ ‘패션단지 활성화로 금천 구민 살길 찾자!’ ‘금천구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금천패션타운의 활성화다’ 플래카드에 적힌 이런 구호들은 양 측간에 벌어지고 있는 입장차와 대립각이 얼마나 예리한지를 가늠케 해주고도 남아 보인다.

산단공과 이 곳 쇼핑타운 업체들과의 갈등이 최근 가장 첨예하게 표면에 드러난 것은 아웃렛 매장인 마리오를 둘러싼 마찰에서부터다.

‘규정에 어긋나니 나가라’고 산단공은 직격탄을 날렸고 마리오를 비롯한 패션타운 입주업체들은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며 소송 및 헌법소원 등 일전불사의 자세로 버티고 있다. 법령에 의해 공업단지로 지정된 이 지역은 사유지이지만 산단공의 관리를 받고 있다.

산단공은 지난 7월 마리오아울렛Ⅱ 매장에 대해 입주계약 해지 조치를 취하면서 ‘관련법에 따라 즉시 사업을 중지하고 3개월 이내에 잔무처리를 완료하라’고 통보했다. 공단 내 매장 시설로서 관련 규정을 위반했으니 더 이상 영업행위를 하지 말고 매장을 철수해 공단에서 떠나라는 뜻이다.

산단공이 이 같은 초강수 조치를 내린 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원래 아파트형 공장으로 지어져 허가가 난 건물인 마리오 매장에서 업주들이 공장 생산품이 아닌 중국이나 동남아 수입 상품 등 다른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산단공은 최근 마리오Ⅱ아울렛에 대한 단속을 벌여 2개 매장에서 자체 생산품이 아닌 중국산 등 외부 제품을 판매했다는 이유를 들어 마리오Ⅱ아울렛 전체에 대해 사실상 ‘폐쇄’ 명령을 내려 버렸다.

산단공이 제시한 법적 근거는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이 법 시행령 제36조에 적시된 ‘아파트형 공장에서 가능한 판매업은 입주한 자가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에 한한다’는 규정을 들고 있다.

산단공은 “원래 아파트형 공장으로 허가가 난 마리오Ⅱ 건물 내에 산단공과 입주계약을 맺은 적법한 입주 업체는 21개에 불과하다”며 “외국 브랜드나 구로공단에서 생산되지 않는 다른 백화점 브랜드 매장이 많이 입주해 있는 것은 공단 조성의 당초 취지와도 전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매장이 위치한 산업단지 구역은 애초부터 중국 또는 동남아에서 수입되는 상품 및 국내외 유수 브랜드가 판매될 수 없는 곳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입주업체들은 ‘입주한 자가 생산한 제품’이란 규정을 ‘단지 내에서 생산한 것’으로만 한정 짓는 산단공의 해석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입주 업체가 중국이나 다른 국가 및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도 응당 이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패션타운 내에서만 생산된 제품만으로는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은 어려운 업체들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탄하고 있다.

마리오Ⅰ아울렛 또한 산단공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패션단지 내 할인매장들에 대한 양성화를 위해 판매장 운영개선 추진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마리오Ⅰ 면적의 일부인 30%를 추가로 판매가 가능한 지원시설로 용도변경해 주기로 한 산단공의 약속이 지켜지고 않고 있다’는 상가 입주 업체들의 불만에서다.

지금까지 산단공으로부터 입주계약 해지를 통보 받은 곳은 패션아일랜드, 스타밸리 아울렛, 만승 등 계속 늘어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파트형 공장의 지원시설임에도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비롯, 타사 상품을 판매한 것이 적발됐다는 이유에서다.

금천패션타운 내 대부분 입주업체 및 매장 직원들은 이에 따라 “이 곳 매장 대부분이 공단을 떠나 쫓겨나가야 할 판”이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렇게 한 두 개 매장씩 적발돼 밀려나간다면 머잖아 금천패션타운이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산단공측은 “법에 규정된 원칙에 따라 집행할 뿐”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악의 상황이 실제 현실화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산단공이 지금과 같은 엄격한 잣대를 고수하며 적발을 계속할 경우 사실상 걸리지 않을 매장이나 업체가 거의 없는 것.

이 지역이 비록 공단으로 분류되어 있기는 하지만 섬유나 봉제를 기반으로 한 공장과 거기서 생산된 제품들만으로는 패션타운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적 어려움 때문이다.

지금 금천패션타운에서 입주매장 및 업주들과 산업단지공단 간에 벌어지고 있는 다툼은 이 지역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원래 이 지역은 1964년 국내 최초의 수출산업단지로 지정된 이후 봉제 및 섬유관련 업체들을 중심으로 공단을 형성, 1970~80년대 우리나라 수출산업을 이끌며 경제발전 주역을 담당해왔다.

특히 구로2공단, 지금 금천패션타운으로 불리는 이 곳은 당시 진도 서광 세계물산 등 대형 국내 의류업체들이 자리를 잡는 등 한때 번영을 누렸다.

단순 제조업 위주의 공단 내 의류업체들이 위기를 겪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고임금 등의 여파로 시장 경쟁력을 잃는 가운데 외환위기로 IMF사태가 터지면서 어려움이 더 커지게 됐다.

이 때 수많은 입주 중소기업들이 도산하고 공단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자사 제품 재고를 저렴한 가격에 할인판매하던 것이 지금 패션타운 형성의 기반이 된 것. 이어 값싸고 질 좋은 의류를 판매하는 아울렛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이 곳은 국내의 대표적인 패션거리로 떠오르게 됐다. 현재 570여 업체가 성업 중이다.

때문에 이 지역을 부르는 용어도 엇갈린다. 입주업체들과 일반 시민들은 ‘금천패션타운’이란 이름으로 부르지만 산단공에서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고 호칭한다.

산단공의 조치에 맞서 입주업체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패션단지 내 204개 의류 제조공장 및 유통업체 대표자와 상인, 종사자들 1,000여명은 최근 ‘금천패션발전협의회’를 결성해 강력 대응에 나섰다. 협의회의 최종 목적은 단 한가지. 산단공 조치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금천패션단지를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것.

협의회는 이를 위해 지난달부터 100만명 가두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마리오아울렛을 비롯, 타운 내 여러 곳에서 고객 및 행인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고 나선데 이어 9월18, 19일에는 200여명이 과천정부청사 앞으로 달려가 ‘부당한 입주계약 해지처분의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갖기도 했다.

개별 업체와 매장 차원의 대응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마리오측은 지난 8월 서울행정법원에 마리오Ⅱ 입주계약해지 처분 효력정지 소송을 내 9월13일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산단공의 철수 압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당장 매장을 내놓고 철거해야만 하는 상황은 피하게 된 셈이다.

■ 1964년 국내 최초 수출산업단지 지정

마리오는 이와 함께 마리오Ⅱ 지원 판매시설의 입주계약해지처분 취소 소송과 마리오Ⅰ 관리기본계획변경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함께 청구해 놓고 있다.

특히 중국산 제품 판매 금지의 위헌 여부와 생산활동 범위에 대한 해석 여부를 놓고 헌법소원을 지난 4월 청구해 놓아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또한 패션아일랜드도 독자적으로 입주계약 해지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산단공은 강경일변도의 기존 입장에서 한치도 후퇴하지 않고 있다.

양측이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상극을 보이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지역에 대한 시각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산단공은 이 지역이 법적으로 패션타운이 아닌 ‘공단’이라는 데서 인식이 출발한다.

애초부터 공장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니 만큼 생산시설이 들어서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공단의 역할이라며 최근 수년간 과도하게 늘어난 판매 매장들이 이제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은 당연지사라는 입장이다. 한 마디로 이 곳은 ‘공단’이지 ‘패션타운’이 아니라는 것. 패션타운이란 명칭도 업주들이 붙인 것일 뿐이라면서 산단공은 아예 용어로 사용조차하지 않는다.

산단공은 이와 관련, 마리오아울렛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대규모 불법 의류판매장을 개장해 지속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고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한 마디로 공장지대에 잘 못 들어선 매장이라는 것. 실제 지난 6년여 동안 아울렛 업체들이 난립, 산업단지가 마치 의류상가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 산단공이 패션타운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입주업체들은 산단공과 관리감독기관인 산업자원부가 경제원리를 외면한 채 과도한 규제를 강요하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이미 현실적으로 패션단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뒤늦게 부당한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것이 주장의 골자.

어렵게 형성된 대규모 쇼핑명소가 정부기관의 자의적 규제에 의해 간판을 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이는 국가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불러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 정부청사 앞 집회… 행정소송도 진행

협의회 및 입주업체들은 “중국산 제품 판매를 빌미로 매장의 추방조치를 강행한다면 향후 1~2년 내 사실상 모든 매장이 다 문을 닫게 될 것”이라며 정부측을 성토하고 있다. 패션타운 내 업주 및 종업원 등 관계자 수 만 명에게는 일자리와 생업 터전이 사라지고, 서민들에게는 고급 브랜드 제품 한 번 입어보겠다며 애용하던 쇼핑 명소가 없어지는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금천패션발전협의회 박재영 총무는 “주말이면 20여만 명의 쇼핑객이 방문하는 최고 번화가를 없애려 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지역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금천패션타운은 오히려 더 보존하고 육성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힘줘 말했다.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산단공과 입주업체들간의 충돌 상황이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점치기에는 아직 일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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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