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사용률 거의 100% 육박… 인터넷 기여도 GDP의 40% 분석도일순간 사라지면 경제시스템 마비… 의사소통 문화도 대혼란가까워진 지구촌도 다시 멀어질 것… 사이버 범죄 등 해악은 '아듀'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정철원(35ㆍ가명)씨는 인터넷 없이는 못 살 것만 같은 네티즌의 전형이다. 그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인터넷을 거의 다섯 시간 가량 사용한다.

평소 오전 6시쯤 기상하는 그는 세면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포털사이트 뉴스홈의 경제 기사를 쭉 훑어 본다. 3년 전 주식투자를 시작한 뒤로 생긴 습관이다. 출근 전까지 꼬박 30~40분 가량은 그렇게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경제 흐름을 읽고 매매 타이밍을 저울질한다.

오전 8시 40분쯤 회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컴퓨터를 켜는 일이다. 그러고는 이메일을 열어 업무 자료나 친구의 편지, 회원으로 등록된 전문사이트에서 보내오는 읽을 거리 등을 대략 살펴본다.

자신의 블로그에 들어가 간밤에 다녀간 방문자가 있는지도 물론 챙긴다. 이런 일들을 하는 데도 약 30분이 소요된다.

근무 시간 중에 주가를 체크하고 뉴스를 읽을 때도 정씨는 인터넷에 수시로 접속한다. 간혹 공과금 납부나 송금 등의 은행 일도 인터넷 뱅킹으로 해결한다. 가까운 친구, 선후배들과 메신저로 잡담을 나눌 때도 인터넷은 요긴하다.

자기 업무만 제대로 처리하면 회사는 이런 데 대해 크게 간섭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아마도 상사와 동료들 역시 정씨와 다를 바 없어서 그럴 게다. 이런 식으로 퇴근 시각인 오후 6시 30분까지 직장에서 인터넷을 쓰는 시간을 모두 합치면 약 2시간 가량 된다.

회식 등 특별한 모임 없이 일찍 가정으로 직행하는 날에는 집에서도 인터넷을 끼고 산다. 온라인쇼핑을 즐기는 아내와 함께 쇼핑몰 순례를 하기도 하고 온라인게임 사이트에 들어가 정신을 팔기도 한다. 가끔은 자신의 블로그에 들어가 글이나 사진도 남긴다. 별 것 아니지만 블로그 관리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이처럼 ‘인터넷 라이프’에 푹 빠져 사는 사람은 정씨만이 아닐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한 10~40대 네티즌치고 정씨의 하루 일과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06년 하반기 정보화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주일에 평균 21~35시간, 하루 평균으로는 3~5시간 동안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네티즌이 13.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네티즌 100명 가운데 14명 정도는 정씨와 비슷한 정도로 인터넷에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터넷 사용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국적 마케팅 조사전문업체 AC닐슨이 최근 발표한 미디어 인덱스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전세계에서 인터넷 보유율과 사용률이 가장 높은 국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AC닐슨은 한국인의 88%가 가정에 컴퓨터(PC)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인의 80% 이상이 조사 직전 1주일 동안 인터넷에 접속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인터넷 접속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한국(80%), 뉴질랜드(66%), 호주(65%), 영국(60%) 및 홍콩/미국(59%) 등 순이었다. 한국인의 일상적인 인터넷 접속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높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인의 인터넷 사용률을 연령별로 살펴보면 15~29세(98%), 30~34세(96%), 35~39세(91%), 40~44세(82%), 45~49세(73%), 50세 이상(3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15~34세 연령대는 거의 100%에 가까운 사용률을 보이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한국은 20세기 최고 발명품 중 하나인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고 있다. IT강국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도 인터넷이 없었다면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국내에 인터넷이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정도밖에 안 됐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나라는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선다’는 정부의 국가전략을 앞세워 ‘초고속’으로 국민생활 전반에 인터넷을 흡수해 왔다.

그 결과 이제 인터넷은 마치 공기나 물처럼 한국인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공공재가 됐다.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물론 정보 검색, 쇼핑, 교육, 오락, 정치적 의사표현의 창구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다. 인터넷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선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사이버 범죄, 온라인게임과 음란물 중독, 스팸메일 등의 정보공해, 개인정보 유출, 컴퓨터 바이러스 유포, 해킹 등 온갖 ‘오물’도 함께 가져왔다.

물론 선물의 가치에 비해 오물의 폐해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기는 하지만 네티즌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다.

특히 인터넷 중독 혹은 의존은 부지불식 중에 네티즌들의 생활습관에서부터 가족관계, 대인관계, 사고방식 등에까지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한국인터넷마케팅협회와 공동으로 국민 2,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의 응답자가 ‘인터넷을 한번 시작하면 생각한 것보다 오래 사용한다’, ‘인터넷을 하지 않을 때도 인터넷 생각이 자주 난다’라고 답변해 인터넷 중독 현상의 하나인 ‘강박적 집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에 대한 심리적 의존뿐 아니라 인터넷 사용시간이 많은 까닭에 일상장애도 적잖이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상장애란 과도한 인터넷 사용으로 일상 업무나 학업, 가사일 등에 소홀하게 되는 등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지장을 받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여성가족부 분석에 따르면 조사 대상 네티즌들의 ‘인터넷 건강 수준’은 약 50점(100점 만점)에 불과했다.

이처럼 인터넷 의존현상이 심각해지자 네티즌들은 스스로 인터넷 사용시간을 줄여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과도하게 인터넷에 빠져 있는 정씨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인터넷을 쓰다가도 간혹 내가 아니라 인터넷이 나를 ‘사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그럴 때는 차라리 인터넷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 들면서 컴퓨터를 꺼버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씨의 바람처럼 인터넷이 없다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흔히 ‘인터넷 세상’이라고 말할 만큼 모든 게 인터넷에 맞춰 돌아가는 시대에 인터넷이 없어지면 말 그대로 세상은 뒤집어지지 않을까.

역시 네티즌들은 대체로 인터넷이 없는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반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간혹 인터넷이 없어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다거나 아예 없는 게 낫다는 의견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이 밝히는 이유도 다양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3년 전부터 온라인게임에 재미를 붙인 아이가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는데, 말도 잘하고 똑똑하던 녀석이 언제부턴가 말수도 줄고 어눌해지더라. 아마도 인터넷을 지나치게 사용한 때문인 것 같은데 벌써부터 걱정이 크다”며 차라리 인터넷이 없으면 좋겠다는 심경을 밝혔다.

인터넷은 전자학습(이러닝ㆍe-Learning) 시대를 활짝 여는 등 교육적 용도로 매우 효과적인 수단임에는 분명하지만 역효과 또한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상당수 대학생들이 인터넷에서 얻은 자료와 정보를 짜깁기해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데다, 요즘에는 한창 기초적인 학습태도를 체득해 나가야 할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들까지 인터넷을 베껴 숙제를 제출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게 교육계 관계자들의 한숨 섞인 지적이다.

방대한 정보와 자료를 다루는 법조계는 어떨까. 거의 모든 사회영역의 인터넷 의존도가 높지만 의외로 법조계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소장 변호사는 “변호사는 업무 수행을 할 때 판례를 많이 참조한다”며 “사실 대법원에서 나오는 판례집만 있으면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인터넷을 뒤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지식 콘텐츠를 생산하는 업종의 종사자들은 다소 이중적인 반응을 보인다. 업무상 정보수집이 필수인 까닭에 인터넷 사용 빈도가 높지만 막상 자신들이 만든 콘텐츠가 인터넷 때문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할 때가 많아서다.

3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한 한 출판사 대표는 “나름대로 성공 가능성을 따져보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요즘 책이 너무 안 팔린다. 인터넷이 없어진다면 출판 시장도 좋아지지 않을까”라며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인터넷에 대해 가장 이중적인 반응을 보이는 업종은 아마 신문, TV 등 전통적인 언론 종사자인 것 같다. 날마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 다녀야 하는 그들로서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 매우 요긴한 반면 포털사이트가 ‘뉴스 공룡’으로 등장하면서 자신들의 밥벌이를 무섭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인터넷이 없는 상황이 가장 두려운 사람들은 누구일까. 두 말 할 것 없이 인터넷 기반의 기업이다. 멀리는 미국의 야후, 구글에서 가까이는 네이버, 다음에 이르기까지 인터넷 기반의 기업들은 불과 10년 세월 만에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막강 권력으로 떠올랐다.

그런 그들에게 인터넷의 부재(不在)는 곧 자신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주식은 휴지조각이 될 뿐더러 직장도 잃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이 없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한 포털업체 관계자는 한 마디로 “농담도 그런 농담 말라”며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사태”라고 손사래를 쳤다.

인터넷의 부재가 인터넷 기업만의 재앙은 아니다. 인터넷이 없어진다면 경제 시스템이 한 순간에 마비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인터넷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할 것이다.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산업의 2006년 총 매출액은 14조3,200억원에 달한다. 단순 계산으로 인터넷이 없으면 그만큼의 국내총생산(GDP)이 줄어드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계산법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터넷의 국내총생산 기여도는 40% 안팎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거의 모든 산업구조가 인터넷 기반으로 전환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터넷이 없다면 대부분 기업들의 기존 경영시스템은 붕괴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시스템통합(SI)업체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현재 생산방식과 생산량은 인트라넷(회사 내부망)을 포함한 인터넷에 기반을 둔 시스템 덕분에 가능한 것”이라며 “만약 인터넷이 없다면 특히 해외사업장이 많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업무가 마비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물론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경영시스템을 재설계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현재와 같은 스피드 경영은 더 이상 꿈도 꿀 수 없다. 또 다른 SI 전문가는 “인터넷이 없다면 내부전산망과 전화, 종이문서 작업 등에 의존하던 90년대 이전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이런 경우 지금과 같은 경영성과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이 없어지면 한층 가까워진 ‘지구촌’도 다시금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클릭 몇 번만 하면 세계 어느 나라든 실시간으로 다가설 수 있지만 인터넷이 없는 상황에서는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거나 몇 일씩 걸리는 우편을 사용해야만 한다.

필리핀에서 한국인 대상 영어연수 사업을 하는 라이프세부어학원 임철수 대표는 “인터넷이 없으면 지금처럼 인터넷 뱅킹을 통한 자금 컨트롤도 할 수 없고 한국사무실과 이곳 어학원 사이에 실시간 자료 전달도 곤란해지는 등 사업환경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이 없어진다면 정치사회적 영역에서는 사이버공간을 통해 사회참여의 지평을 넓혀온 개인들의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사라지게 된다. 다수의 학문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은 사람들의 정치적 의식을 확장시켰고 사회참여와 의사표출을 보다 활발하게 만든 것으로 나타난다.

한 소장 언론학자는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은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능동적 존재로 변화해 왔다”며 “인터넷이 없다면 이는 정치적 토론과 참여 수단의 커다란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인터넷에 크게 의존해온 수많은 네티즌들은 심리적ㆍ정신적 공황을 겪게 되고 대인관계도 소원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인터넷이 없어지더라도 사람들은 일시적인 혼란을 거쳐 새로운 환경에 슬기롭게 적응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인류의 기술발전 역사가 이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정보사회진흥원 정보화전략팀 홍효진 연구원은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관계 지향적인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인터넷이 없다면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어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류 문명은 수만 년에 걸쳐 앞으로 전진해 나왔다. 그러기에 문명은 기본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속성을 지녔다. 인터넷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결국 인류 혹은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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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