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동영상 충격어린이도 시달리는 입시지옥… 과외 13개 받는 경우까지학업에 대한 엄청난 부담… 27% "자살충동 느낀 적 있다"

“나의 가장 큰 결점은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 이번에 친 시험점수다. 언제가 나는 공부를 제일 잘하는 OO를 이기고 싶다.”

지나친 학업 부담으로 자살한 어느 초등학생의 유서 내용이다.

‘고3병’ ‘입시 스트레스 증후군’ 등 이른바 입시병으로 고통 받는 학생들의 현실은 이제 고등학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등학생들도 이미 저학년 때부터 시험 스트레스와 성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고통 받고 있다.

‘자살하는 초등학생’ ‘정신과 상담을 받는 초등학생’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는 초등학생’…. 신문지상에 수시로 등장하는 이런 쇼킹한 제목들은 사교육에 짓눌리고 시험경쟁 속에 시달려 빗나가는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준다.

최근에는 한 인터넷 교육전문채널에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 네티즌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저는요, 학원에서 시험보면 영어는 항상 100점 맞아요. 근데 수학은 꼭 한 개나 두 개 틀려서 속상해요.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영상에서 초등학교 2학년 예영(가명)이가 한 말이다. 이 동영상은 요즘 초등학생들의 성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 웅변하고 있다.

서울지역 4~6학년 초등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얼마 전 교육커뮤니티 ‘즐거운 학교’가 스트레스 지수를 조사한 결과 ‘과외’가 초등학생의 스트레스 원인 1위로 꼽혔다. 초등학생 10명 중 9명이 과외를 하고 과외 과목은 평균 3.13개, 과외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37분이라는 것이다.

조사 결과에는 27%의 초등 학생들이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고, 그 이유가 바로 ‘성적’ 때문이라는 결론도 나와있다.

실제로 지난 2월 인천에서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방학숙제를 하다가 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했다. “학원을 조금만 다녔으면 좋겠다.” 자살한 아이가 자주 하던 말이다.

방문토론교사 정모씨는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13개나 하는 아이도 봤어요. 5, 6학년은 밤 10시까지 공부하는 게 기본이고요”라며 혀를 끌끌 찼다.

학업 부담을 느끼는 초등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해방구는 결국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이다.

“어떤 남자아이들은 부모님 몰래 밤새 게임을 하고 학교에 오기도 해요.” 초등학교 3학년 박모양의 말이다.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과 홍현주 교수는 “실제로 초등학생 중 30% 이상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고,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은 주로 게임이나 인터넷 중독에 빠진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들이 갑자기 학교를 가지 않는다거나 ‘배아프다’ ‘머리 아프다’는 등의 신체적 고통을 호소한다면 학업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이런 문제를 방치하면 중학생이 되어서는 우울증이나 비행 등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고, 치료도 더 어려워진다”며 홍 교수는 자녀와 부모 간의 충분한 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나친 사교육 열풍이 아이들의 정서를 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가정경제까지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회사원 김모(43세)씨는 “국어, 영어, 수학은 물론 피아노, 미술, 토론, 발레까지 두 아이 학원 보내느라 저축은커녕 자동차까지 팔았어요. 결혼 전에 아내가 학원에서 교사를 했었는데 얼마 전부터 애들 학원비에 보태려고 구청에서 하는 어린이 공부방 교사를 다시 하고 있어요”라고 넋두리를 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또는 초등학생 때부터 암기 위주의 학습을 계속 강요 당하게 되면 창의력이 저하되고, 협동심이 결핍되는 등 인재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충고한다.

하루 종일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평균 30분도 안 되는 어린이,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아플 때가 많다고 호소하는 어린이, 가출 충동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어린이, 이런 어린이들을 우리 사회가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초등학생들이라고 과외 등 학업 부담이 없었을까.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이 스스로 느끼는 스트레스 강도는 과거와 다르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경쟁이 훨씬 치열해진 가운데 정신적으로도 조숙해져 ‘자아’를 생각하는 수준까지 왔다. 이들은 홀로 외친다.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

■ 사교육 안 받은 학생이 학업성취도 오히려 높다

초등학생을 포함한 가계의 사교육비가 매년 25%씩 급증하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가 2004년 11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재학생 1,772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 고교 내신 등급의 경우 사교육 경험자 그룹은 평균 1.90 등급으로 비경험자 그룹 평균 1.64 등급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점수 역시 사교육 경험자가 평균 362.38점, 비경험자가 368.73점으로 비경험자가 4점 이상 높았다.

또 대학진학 이후 학업성취도를 보면 과외를 받았던 학생에 비해 과외를 받은 적이 없는 학생이, 또 받은 사람들 중에서는 장기간 받은 학생보다 짧게 받은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사교육이 곧바로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 역시 “요즘 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사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이나 학업수준이 예전 학생들에 비해 높거나 뛰어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지난 4월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국내 사교육시장 총규모는 33조 5,000억원 정도로 한 가구 당 월평균 사교육비로 64만 6,000원을 지출하고 있다. 월평균 소득의 5분의 1(19.2%)을 사교육비로 쓰고 있는 셈이다. 사교육비 충당을 위해 26%의 가구가 부업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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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