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선진국 꽁무니 따라다니기 보다 후진국 돕기로 경제체제 개선해야복지정책 강화·정부 시장개입은 성장동력 찾기에 오히려 큰 도움

최근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펴내고 한국에 다녀간 장하준(44) 영국 캠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함정을 파헤친 특유의 비판적 시각을 토대로 한국경제와 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또 한번 반향을 일으켰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설파하는 자유무역과 자유경제의 ‘교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속임수를 논리적으로 공격한 책이다.

일반적인 시장경제 논리에 일격을 가한 세계적인 경제학자의 도발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은 외환위기 이후 자유시장 원칙을 신봉하는 세계화의 물결에 적극 동참한 우리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졌다.

그가 주장하듯 복지체제를 강화하고 정부가 개입해 시장기능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방법이 될까? 국내에서 강연과 학술토론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간 장 교수와 전화 및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장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해왔다. 지난 방한 때도 “모든 경제지표가 안 좋아졌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불평등이 확대되었으며, 고용이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복지정책의 약화다. 장 교수는 “노무현 정권은 좌파 정책을 펴지 않은 정권인데, 본인들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고, 좌파라고 욕을 먹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정부가 복지시스템을 발전시켜 고용을 안정시키고 노동자 재교육체제를 만드는 것이 대다수 국민에게 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고, 경제발전에도 좋다고 강조했다. 이는 보수층이 현 정부의 부실한 경제성과를 과도한 분배정책 탓으로 돌리는 시각과 완전히 상반된 견해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복지국가 이야기만 나오면 독일 등 유럽 일부 국가의 저성장을 지적하면서 ‘복지병’을 걱정하는데, 이는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1990년대 이전에는 복지지출이 작은 미국이 유럽 나라들보다 도리어 성장률이 훨씬 낮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성장률이 높아진 1990년대 이후에도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저성장을 한 것도 아니고, 핀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미국보다 성장이 빠른 나라들이 많았습니다.”

장 교수는 또, 미국은 노동시간이 유럽 나라들보다 10~30% 높기 때문에, 노동시간 당 국민소득을 계산하면 미국에 유리한 구매력을 기준으로 해도 노르웨이,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의 소득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그

는 “기업 차원에서 고용을 안정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실직하더라도 기본 생존을 위협 받지 않고 재기할 수 있도록 실직수당과 직업재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실직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국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선진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지도층이 부르짖고 있는 경제개방의 필연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장 교수는 지난 45년간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과거의 성장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세계화를 신봉하게 된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지난날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우리산업이 국제경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호무역정책을 펼쳤기에 가능했다.

뿐만 아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모든 선진국들은 모두 경제대국이 되기 전까지 철저히 정통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 처방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를 비롯해 지금 선진국의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부가 개입해 시장기능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성공했다는 것. 이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 시장 원칙이 왜곡됐음을 보여준다고 장 교수는 말한다.

■ 한국 경제성장 기반은 보호무역… 신자유주의 탈피 필요

“세계화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선진국들이 취하고 있는 세계화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고 있어요.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계화에 대해 중간자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선진국들에게 우리의 경험에 비춰볼 때 당신들이 지금 후진국에 강요하는 정책들은 경제발전에 유용하지 않다고 말해 국제경제체제를 후진국을 돕는 방향으로 개선하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합니다. 후진국들에게는 우리의 발전 경험을 통해 그들의 경제발전 전략에 대해 유용한 충고를 줄 수 있습니다.”

장 교수는 주류에 반격한 자신의 이론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제가 주장하는 경제발전 정책은 18세기 영국, 19세기 미국과 독일에서 시작해 20세기 일본, 한국, 대만, 21세기 중국까지 대부분의 성공한 나라들이 썼던 정책입니다. 1960~70년대에는 제가 주장하는 정책들이 ‘주류’였습니다. 지금 당장은 대세가 신자유주의인 것 같아도, 50년 후에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50년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옳다고 생각했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지난 7월 영국에서 먼저 출간됐다. 세계 주류 학자들에 도전했으니, 현지 주류 쪽 반응은 불문가지 아닌가.

“당연히 주류에서는 제 주장을 안 좋아하지요. 그러나 제 나름대로 탄탄한 이론과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들도 절대 무시하지 못합니다. 현재 주류 경제학자들이 자기들만 옳다고 생각해 소위 비주류로 분류되는 이론들은 가르치지 조차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지 학생들도 제 이론에 대해 ‘균형감각을 찾게 해주는 신선한 얘기’라며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장 교수는 그 자신이 세계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런 그가 한국의 영어광풍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영어에 엄청난 시간을 바쳐 정작 자기 전공분야에서 실력을 쌓을 시간이 모자란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는 지적이다.

“영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을 영어에 투자하더라도 전문분야의 정보습득에 필요한 독해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사람을 만나서 날씨 이야기를 유창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진문물과 정보를 빨리 습득해서 자기 전공 분야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영어 공부의 가장 큰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는 우리의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다른 나라에 대해 알려고 하며 훌륭한 것은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되, 무조건 선진국을 따라가려는 자세는 배척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 장하준 교수는?

1963년 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캠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뮈르달 상과 레온티예프 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는 ‘사다리 걷어차기’, ‘개혁의 덫’,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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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