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점 오픈 후 25년 만에 종업원 1,500명 거느린 '미용왕국' 건설가정환경 어려워 14세 때부터 급사 생활… 일 즐기는 구김살 없는 성격이 성공비결공부에 한 맺힌 듯 후진양성에 대거 투자… 갤러리까지 갖춘 '토털 뷰티숍' 이끌어

요즘 미용실은 더 이상 ‘동네 미용실’이 아니다. 일종의 기업이다. 강윤선 준오헤어 원장은 1981년 서울 성신여대 앞에 준오헤어 1호점을 연 후 25년 만에 1,500명의 직원을 거느린 미용왕국을 건설했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지난달 28일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웰라 인터내셔널’에서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53개국 참가자 중 1등을 수상했다. 기술적으로 우리 미용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란 것을 증명한 셈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애브뉴준오(준오헤어의 고급 헤어살롱)를 가보면 그 규모와 시설의 호화로움에 압도된다. 유명인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밝은 표정의 직원들,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보면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지 궁금하다.

준오는 독특한 문화를 가진 조직이다. 밝고 에너지가 넘친다. 원장과 직원의 관계가 끈끈하다. 여기저기서 웃는 소리가 들리고 늘 파티 분위기 같다. 당연히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그것은 이직률에서도 나타난다. 미용업계의 평균 이직률은 30~40%에 이르지만 준오는 10~15% 정도에 그친다. 10년 넘게 근무하는 디자이너도 수두룩하다.

조직의 문화는 리더의 성격을 닮는다. 바로 강 원장이 그런 사람이다. 만나는 순간,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 권위주의나 폼 잡는 것은 전혀 없다. 흔히 보는 동네 아줌마같이 편한 느낌이다.

강 원장은 사람을 좋아한다. 직원도 좋아하고, 고객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가 처음 미용실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어느 날 동네 미장원에 갔는데 손님 한 분이 미용실 주인에게 짐을 잠시만 맡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주인이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짐 한 번만 맡아주면 단골이 될 텐데 왜 저렇게 야박하게 굴까’라고 생각한 그녀는 그 길로 미용학원에 등록해서 미용사 자격증을 딴 후 미용실을 열었다.

그녀는 정말 낙천적인 사람이다. 집안이 어려워 어린 시절 야간 상업학교를 다니며 급사 생활을 했고 아기 때는 목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과거는 얼굴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힘든 적이 없었다”고 답을 한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부모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실망 등으로 상처 투성이가 될 만한 환경인데도 힘들지 않았다니….

사실 그런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지금의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그는 열 네 살 때부터 급사 생활을 했는데 당시 별명이 발바리였다. 설치면서 열심히 일한 덕에 월급도 더 받았고 그래서 일이 재미 있었다. 집에 있는 것보다 일하는 게 즐거웠단다. 정말 성공한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한편으론 힘들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디스크 때문에 일을 못했고 대신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을 했다. 언니와 오빠가 있었지만 그를 봐줄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하고 해결했다.

그녀의 말이다. “가출을 한다는 것은 잘 사는 애들 얘깁니다. 그래서 가출한 애들이 부러웠어요. 우리 엄마는 바빠서 제가 가출해도 찾을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한 번은 가출을 했다가 10분 만에 돌아왔지요.”

강 원장을 보면 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다. 대부분 시간을 꿈 이야기를 하는 데 쓰고, 또한 꿈 덕분에 그의 오늘날이 있기 때문이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토털 뷰티’가 제 꿈이었지요. 그 꿈을 애브뉴준오에서 이루었어요.”

실제 애브뉴준오는 그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도 꿈의 무대다. 지하 1층엔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 ‘더 칼럼스’가 있다. 1층엔 VIP 고객을 위한 드레스 전용매장, 2~3층은 특별 서비스를 전담하는 헤어디자이너와 스태프들이 있는 헤어존과 VIP 고객을 위한 전용 공간, 릴랙싱 샴푸실, 네일 관리실, 스파 등이 있다.

또 6층 옥상에서는 파티와 공연을 할 수도 있다. 시간 날 때마다 동네 미용실이 아닌 ‘신데렐라’ 같은 공상을 했던 강 원장은 마침내 그 꿈을 이룬 것이다.

그녀는 독서와 학습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신이 공부를 못한 한을 풀기보다는 독서와 교육이 얼마나 사업에 도움이 되는지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방은 원장님 방이라기보다는 무슨 독서실 같다.

그녀가 늘 말하는 화제도 최근 읽은 책에 관한 것이다.

직원들에게도 독서경영을 강조한다. 책을 읽고 독후감도 발표하게 한다. 웬만한 리더십 교육은 다 수료했고 최근에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개설한 ‘지속가능을 위한 최고경영자 과정’도 수료했다. 지금 잘 사는 것보다는 지속적으로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준오는 미용업계의 사관학교 같은 존재다. 직원을 위한 헤어아카데미를 설립했고, 유명 미용사를 초빙해 실습 과정을 가르친다. 미용 외에 리더십, 심리학 등 다양한 커리큘럼을 갖춰 놓았다. 6학점을 이수해야 커트를 할 수 있으며 20학점을 마쳐야 퍼머가 가능하다. 3년간 110학점을 이수해야 정식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강 원장은 왜 그렇게 교육에 돈을 많이 쓰느냐는 질문에 “제가 배운 게 적어서 그런지 교육에 대한 갈증이 심하네요. 어디에서든 준오헤어 출신이 똑똑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준오 출신 중에 교수가 된 사람이 6명이나 된다. 강 원장은 20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란다. 쟁쟁한 실력파들이 즐비한 준오에는 억대 연봉을 받는 디자이너도 상당수다.

강 원장은 스스로를 ‘푼수’라고 얘기한다. 허술하고 즉흥적이며 잘 웃기 때문에 본인이 지은 별명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절대 그렇지 않다. 허술함 속에 날카로운 그 무엇을 볼 수 있다. 특히 사업적인 안목, 사람을 보는 눈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그녀의 철학 몇 가지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한다. 무엇이든 직원들과 나누어 먹는다. 모든 경영은 투명하게 한다. 가능한 일을 재미있게 한다. 긍정적인 ‘자성예언’(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하는 예언)을 한다. 무엇보다 강 원장의 핵심 역량은 사람을 보는 눈이다. 그녀의 주변에는 기라성 같은 부하 직원들이 즐비하다. 그가 ‘콜’하면 당장 뛰어나올 장수들로 차고 넘친다.

필자는 강 원장을 안 지 10년이 넘어간다. 강 원장을 볼 때마다 채근담에 나오는 ‘응립여수 호행사병’(鷹立如睡 虎行似病)이란 말이 연상된다.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듯 걷는다는 말이다.

즉, 고수는 허술해 보이지만 안에 날카로운 그 무엇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강 원장이 바로 그렇다. 엉성한 듯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발톱을 보아야 한다. 지금의 그런 성공은 절대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 한근태는 약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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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