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국새 균열 발생으로 새 인장 만들어… 진흙거푸집 이용한 전통방식 선택옥새전각장 민홍규씨가 총괄책임자로 제작… 내함은 백동으로 외함은 철갑상어 가죽으로

지난 3일 낮 경남 산청 국새 주물 현장에서 박명재 행자부 장관이 새 국새를 찍은 한지를 선보이고 있다.(위)
지난 3일 새 국새(國璽)가 공개됐다. 정부 수립 후 제작된 네 번째 국새로 차기 정부부터 쓰일 예정이다. 이날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국새가 제작된 경남 산청을 방문해 새 국새를 시험 날인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새는 대통령령인 ‘국새 규정’에 따라 헌법공포문 전문, 훈ㆍ포장 증서, 주요 외교문서 등에 날인하는 인장(도장)이다. 새로 만들어진 국새는 가로ㆍ 세로 각 99㎜ 길이로 여론조사와 공모를 거쳐 만들었다. 인문(印文, 국새에 새겨진 글씨체)은 훈민정음체, 인뉴(印鈕, 손잡이)는 봉황모양이다. 금 합금으로 만들어진 새 국새는 진흙거푸집을 사용하는 전통방식으로 제작됐다.

새 국새 준비는 지난 해 봄부터 시작했다. 현재 쓰고 있는 3차 국새에서 균열이 발견됨에 따라 감사원이 행정자치부에 새 국새 주조를 권고하면서부터다. 올해 1억9,000만 원의 예산안이 편성되고 올해 봄 총괄책인자로 옥새전각장인 민홍규 씨가 선정됐다.

새 국새와 현재 국새의 차이점은 제작준비과정과 주조방식에 있다. 행정자치부 의정팀 김윤배 사무관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이 전적으로 국새 모양과 제작자를 선정했던 3차와 달리 이번 새 국새는 자문단이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의견을 수렴해 디자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여론조사를 거쳤지만, 인문으로 훈민정음체를 쓰고 인뉴 모양으로 봉황을 쓰는 등 디자인에 큰 변화는 없다.

현재 사용하는 국새는 현대식 주조공법으로 작고한 한국과학기술원 최주 박사가 총괄지휘했다. 그러나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균열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들렸고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의뢰한 결과 5군데에서 실제 균열이 발견됐다. 때문에 새 국새는 진흙거푸집을 사용한 한 전통방식을 택했다.

이 외에도 의장품 중 국새를 보관할 내함은 백동으로, 외함(인궤)은 철갑상어 가죽으로 제작했다. 함을 넣어둘 함장은 금색이 가미된 옻칠로 단장된다.

국새를 올려놓을 방석인 ‘석’은 한지 수백장을 다진 뒤 비단으로 싸였다. 국새를 올려놓는 상인 인상·배안상·소배안상, 상 위에 까는 비단천인 복건, 장식용 끈인 매듭인끈·다회끈 등도 최고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전통 방식으로 제작 중이다.

이전 1차, 2차 국새는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다. 첫 번째 국새는 1962년 12월31일까지 사용됐으나 2차 국새가 사용되면서 분실됐다. 국새가 찍힌 흔적만 남아 모양을 추정하고 있는데, 인뉴는 영수(靈獸)모양이라 추정된다.

행정자치부 의정팀 김윤배 사무관은 “당시에는 지금처럼 국가기록원이 없어 추측하건대 담당자가 갖고 있다 없어졌던 것 같다. 인영(印影, 도장이 찍힌 모양)은 지금 관인대장에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국새는 1963년부터 1999년까지 35년간 사용됐다. 은으로 만든 이 국새는 인뉴가 거북 모양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제작 과정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재질과 제조 공법은 알지 못한다.

김 사무관은 “2차 국새는 원형을 보관하고 있지만, 제조과정에 대한 기록이 없어 왜 거북 모양을 인뉴로 채택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세 번째 국새는 99년부터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은으로 만든 2차 국새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문 부분이 닳아 새로 만든 것이다. 18k 금으로 만든 국새는 처음에 용으로 인뉴를 새기려다 ‘용이 서양에서 악마를 상징한다’는 일부 종교단체의 반발로 봉황으로 바꾸었다. (도표 참조)

김윤배 사무관은 “영국의 경우 여왕이 바뀔 때마다 새 국새를 만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용기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는다. 2차, 3차 국새도 인문이 닳고 균열이 생기는 등 문제로 교체하기로 한 만큼 4차 국새의 사용기간이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새 정부 출범부터 사용

새 국새는 이번 주중으로 인뉴와 인문을 붙여 완성한다. 행자부 관계자는 “국새의 마무리 작업이 끝나면 비파괴검사 등을 통해 검증한다”고 말했다. 3차 국새가 사용 초반부터 균열이 생김에 따라 이번 국새는 사용 전부터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검사를 실시해 ‘합격’을 받아야만 사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사를 통해 ‘이상 없음’으로 판정이 나면 정부가 새 국새를 인수하고 관련 법령을 개정해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내년 2월부터 사용할 계획이다. 새 국새는 정부중앙청사 19층 국무회의실 옆 국새실에 보관된다. 연간 약 13,000번을 사용하는 국새는 3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임명장, 대통령 훈장과 포상증서, 각종 외교문서에 찍힌다.

■ 왕조시대 국새는 어떤 모양이었나?

과거 왕권을 상징한 국새는 그 재질이 옥으로 만들어져 옥새로 불렸다. 한반도에서 국새가 쓰인 흔적은 고대시대부터 발견된다. 기원전 108년에서 서기 314년의 낙랑시대, 평양에서 사용된 인(印)이 출토됐다.

이는 한대(漢代)의 인재(印在, 도장)가 그대로 전래된 것으로 독자적인 우리민족의 고유 인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라시대에도 국새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신라본기 7에 의하면 “문무왕 15년에 백사 및 주·군의 인(印, 도장)을 구리로 주조해 반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때는 요, 금, 원, 명나라에서 국새를 받아 사용했다. 조선왕조가 수립되면서 기존의 고려 국새를 명나라에 반납한 뒤 새 국새를 내려달라고 간청해 ‘조선왕조지인’을 받아 명나라와의 외교문서에만 썼다. 세종 때는 처음으로 체천목민영창후사위보(體天牧民永昌爲嗣爲寶)를, 성종은 시명지보(施命之寶)를 만들어 썼다.

1881년 독자적 국새인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를 사용했고, 대한제구구 출범 이후에는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보(皇帝之寶)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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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