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성분 함유된 기름에 노출되면 만성기침 등 호흡기 질환 발병 가능성 높아
태안군청 재해대책본부에 따르면 원유유출 사고 이후 매일 수천 명씩 늘어난 자원 봉사자는 13일께 2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전국에서 밀려드는 도움의 손길 덕에 현지 주민들도 기운을 차리고 더욱 방제작업에 땀을 쏟고 있다.
하지만 유독성분이 함유된 원유를 치우는 작업인 까닭에 적지 않은 참가자들이 두통이나 역겨움 등의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기름 방제작업 참가자들의 호흡기 질환 발병 가능성이 높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이와 관련, 몇 해 전 스페인 해상에서 발생한 ‘프레스티지’호 기름유출 사고 당시 방제작업 참가자들에 대한 건강영향 조사 결과는 주목된다.
2002년 11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역 앞바다 200km 지점에서 유조선 ‘프레스티지’호가 침몰했다. 이 사고로 벙커C유 6만7,000톤이 유출되면서 인근 대서양의 1,000km가 넘는 해안이 기름에 오염됐다. 당시 방제작업에 참여한 자원 봉사자는 모두 10만 명에 달했다.
이후 스페인 환경역학연구소와 바르셀로나 의학연구소 등은 공동으로 방제작업 참가자들에 대한 건강영향 여부를 조사했다. 조사는 2004년 1월에서 2005년 2월까지 6,780명의 지역 어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이 가운데 63%가 방제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조사결과는 방제작업과 호흡기 질환의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방제작업 참가자 가운데 하(下)기도 질환 유병률은 73%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기도 질환은 무호흡을 동반하는 쌕쌕거림, 감기와는 무관한 쌕쌕거림, 짧은 호흡으로 인한 야간발작, 만성 기침, 만석 객담(가래) 등의 증세를 포함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방제 참가자 가운데 16.1%가 만성 기침에 시달리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방제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그 발병 가능성이 2배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노출(방제작업 참여) 시간이 길수록 호흡기 질환이 생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는데, 눈여겨볼 것은 1~3일 정도 노출된 집단과 그 이상 노출된 집단 간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즉 하루라도 기름오염 현장에서 방제작업을 하게 되면 호흡기 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방제작업에 나설 때 마스크를 항상 또는 자주 착용한 경우 질환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방제작업의 종류에 따라 질환과의 상관관계도 다르게 나타났다. 작업복이나 장화 세척작업, 보트 세척 작업, 기름에 오염된 조류 수집, 기름이 묻은 용기 세척 등의 순으로 위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번 태안 원유유출 사고의 기름 유출량이 ‘프레스티지’호 사고 때의 6분의1 정도에 불과하지만 유해물질 함량이 더 많은 데다 사고지점도 훨씬 해안과 가까워 방제작업 참가자들의 피해가 더욱 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단체는 15일부터 태안군 만리포 일대에서 방제작업 참가자들에 대한 건강영향 조사를 실시했다.
환경운동연합 조한혜진 부장은 “사고원인 분석과 방제작업도 중요하지만 자원 봉사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 예방에도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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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