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료 외에 교재비·교구비까지 청구… 불법 입학금 횡포도

수강료 따로 입학금 따로 거기다 교재비와 교구비까지.

다름아닌 ‘어린이 영어학원’에 등록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지불 항목’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행사비는 물론 오후 특강비와 예체능 과목과 관련된 특정 프로그램 이용료까지 고스란히 부모들의 몫이다.

이른바 ‘부대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어린이 영어학원에서 요구하는 납부금은 수강료보다 더 큰 부담으로 부모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일부 학원에서는 수강료 외 별도의 입학금까지 부과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있다.

방배동에 살고 있는 주부 김모(35)씨는 내년에 6살이 되는 딸아이를 강남의 A어린이 영어학원에 보낼 예정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또래 아이들이 이미 A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함께 보내려고 했던 것.

그러나 등록 결정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았다.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9시 30분~2시 25분까지 주 5일제 수업을 하는 A어린이 영어학원은 한달 수강료가 69만원이다.

수강료에 식비는 포함돼 있지 않아 따로 8만원을 납부해야 하고, 3개월에 한번씩은 15만원의 교재비도 내야 한다. 등록을 위해 92만원 정도의 돈을 납부해야 했고, 처음이야 괜찮지만 1년 이상 이 학원에 아이를 보낼 생각을 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다른 어린이 영어학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강남에 위치한 또 다른 어린이 영어학원 B는 학원비 부담이 더 크다. 수강료만해도 91만원, 물품 교재비로 매달 20만원을 더 내야하고, 1년에 한번씩 연간 교육재료비로 30만원을 추가 납부해야 한다.

비싼 수강료와 갖가지 부대비용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일부 학원에서는 별도의 ‘입학금’까지 받고 있다. 어린이 영어학원은 유아교육법에 의해 설립인가를 받는 유치원이 아니기 때문에 수강료 외에 입학금을 따로 받는 것은 불법행위다.

그러나 이를 어기고 버젓이 입학금을 받는 학원이 있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강남 8학군 중 한 지역으로 그 지역 내 대부분의 어린이 영어학원에서는 불법 입학금 부과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C어린이 영어학원은 한달 수강료가 72만원이다. 거기에 1년에 한번씩 교구비 명목으로 15만원을 납부하고 입학금으로 또 30만원을 내고 있다.

학원측은 입학금에 대해 “학원 가방이나 도시락, 도시락 가방 그 외 원복, 체육복, 토시, 앞치마 등 학원을 다닐 때 꼭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는데 쓰이는 비용이다”고 밝혔다.

학원은 입학금을 학원 수익으로 챙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학원 생활을 위해 받고 있는 돈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교구비를 따로 납부하고 있는데 굳이 입학금을 또 내야 한다는 게 이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결국 학원 등록을 위해 총 117만원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같은 지역에 있는 또 다른 어린이 영어학원 D는 수강료만 한 달에 99만원을 납부한다. 수강료에는 식비와 차량운행비가 포함돼 있다. 거기에 3개월마다 10만원의 교재비가 필요하고, 첫 등록 시에는 20만원의 입학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이 역시 학원법상 위배가 되는 사항이지만 학원 측은 당당하게 입학금 명목으로 돈을 받고 있다. D어린이 영어학원 측은 “체육복과 도시락 가방을 구입하는 비용으로 입학금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비싼 수강료 외에 지불해야 하는 부대비용과 뻔뻔하게 부과하고 있는 입학금은 학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하고 있다. 교육부 산하의 각 지역 교육청들이 겉잡을 수 없이 치솟은 어린이대상의 고액 영어학원비를 규제하기 위해 수업 시간에 따른 수강료 기준액을 규정하기도 했지만 수강료만 잡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수강료 규제로 늘어난 부대비용과 불법 입학금으로 인해 학부모들이 더 큰 짐을 지게 됐을 뿐이다.

4살 된 딸을 둔 주부 박모(34)씨는 “정부에서 학원비 규제를 한다고는 하지만 수강료 잡기에만 신경 쓸 뿐 정작 학원에서 요구하는 부대비용은 나 몰라라 하고 있어 높은 학원비 부담은 그대로다”며 수강료 규제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고 토로했다.

강남구 교육청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대부분 어린이 영어 학원들이 재료비나 교구비 항목으로 수강료 외 납부금을 받고 있다”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물품들이 비싸게 지불한 재료비.교구비에 합당치 않을 경우는 관할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칙적으로 학원에서는 입학금을 따로 받아서는 안되지만 신설된 학원들은 이런 규칙을 잘 모를 뿐더러 솜방망이 같은 처벌로 강력한 규제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학 시 의무적으로 납부하고 있는 물품비나 교구비를 선택 사항으로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정규 수업 외에 별도로 진행하는 프로그램 참여 여부에 대해서도 아이와 부모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마저도 학원들의 교육시스템 문제로 현실적인 수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특강이나 별도의 프로그램은 정규수업의 연장선처럼 이어지고 있고, 정규수업의 경우는 모든 원아들이 별도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전제 하에 진행되고 있다.

결국 학원 측이 마련한 특강에 참여하지 않은 아이는 정규 수업에서 뒤쳐지는 문제가 발생해 부모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부대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품비나 교구비 납부 역시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지불한다는 학부모들이 많다. 다른 아이들은 일괄적으로 물품을 배급 받고 사용하는데 우리 아이만 빠지면 혹시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다른 부모들이 시키는 것은 무리를 해서라도 덩달아 시켜야 할 것 같다는 부모들의 심리적인 이유도 대안 수용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어린이대상 고액 영어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고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강경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관련 법안 정비를 통해 학원들이 자체적으로 투명한 운영을 위해 노력하고, 학부모들의 반응과 움직임에도 항상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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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