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서울세관에서 열린‘마약밀수 은닉도구 전시회’에서 시민들이 마약 은닉도구 등을 살펴보고 있다.
태국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던 차모(35ㆍ남)씨는 지난해 뉴기니아 앵무새 알 14점, 썬코뉴어 앵무새 알 15점, 미니닭 쟈부 알 2점 총 31점의 새 알을 자신의 가방 속에 몰래 숨겨 들어오다가 세관검사에 적발됐다.

그는 조류인플루엔자의 확산으로 동남아 지역 애완용 조류의 정상 수입이 어려워지자 알을 국내에 들여와 부화시켜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람들에게 고가에 판매할 목적이었다.

지난 해 11월 김모(45ㆍ남)씨는 명품 시계를 본체, 문자판, 시계줄, 연결고리 등으로 분리한 뒤 부분품 형태로 숨겨 들여오려다 세관에 들통이 났다. 김씨는 국내에서 부품을 재조립해 판매하려 했다.

밀수! ‘밀수 천국’ ‘밀수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얻을 만큼 한국에서 밀수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직장인, 주부까지 범죄의식 없이 밀수를 자행하고 있어 문제다. 전문밀수꾼이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 ‘범죄의식 없는 밀수’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제는 밀수가 평범한 직장인, 주부, 학생들에게까지 유혹의 손길을 뻗고 있고, 밀수품목도 종류를 막론하고 약간이라도 돈이 되는 물건이라면 모든 게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렇기 때문에 감시당국으로서는 앞으로 어떤 신종수법과 밀수품이 등장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 밀수 행위는 그나마 감시당국의 예측이 가능하지만 일반인이 소량으로 하는 밀수는 사실상 단속이 어렵다는 말이다.

얼마 전 항문에 마약류인 메스암페타민을 숨겨 들어오려다 세관에 붙잡힌 남성은 밀수 사실을 계속 부정했고, 결국 소변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타나자 콘돔에 싼 메스암페타민이 항문에 있다고 자백했다.

최근 관세청 조사결과 가장 많은 적발 건수를 기록한 밀수품은 비아그라 등의 약물류로 2004년 이후 3년 동안 계속 급증하는 추세다. 과거 생필품이나 전자제품이 주요 밀수품목에 해당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농수산물이나 주류, 의류 및 직물류도 요즘 밀수가 성행하는 품목으로 집계됐다. 설명했다. 물론 이는 일반인과 전문꾼들을 밀수를 망라한 통계다.

■ 생필품에서 금괴까지… 진화하는 밀수 수법

인천공항 세관검사관들이 해외여행자의 가방에서 반입물픔들을 검사하고 있다.

밀수는 국내외 경제적 상황, 환율, 관세율 등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품목과 수법이 시대상에 따라 진화해왔다.

1960년대에는 대일 활선어선을 이용한 이른바 특공대 밀수로 의류나 의약품과 같은 생필품을 많이 들여왔다. 주로 일본제 화장품 거래가 많았고, 남해안 주민들까지 합세해 밀수가 대형화, 조직화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경제성장을 이룬 70년대에는 외항선·항공기 승무원 등을 이용해 고급 전기 제품이나 금괴, 보석을 주로 밀수했다.

1980년대에는 높은 관세율과 수입제한으로 국내외에서 가격차이가 벌어진 귀금속, 시계, 골프채, 녹용 등 사치품의 밀수가 두드러졌다. 80년대부터는 밀수수법도 다양해지는데 외항 선원들이 합법을 가장하고 밀수를 하기 시작한 것도 80년대의 일이다. 80년대 이후 관계부처의 단속망을 피하기 위한 밀수꾼들의 밀수수법이 더욱 지능화하고 고도화해 갔다.

1990년대 주요 밀수 품목들 중에서는 금괴나 수산물, 중고 기계류 등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밀수꾼들은 국제우편물을 활용한 밀수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의류 및 시계ㆍ잡화, 짝퉁제품, 기계ㆍ기구류, 한약재 등은 2000년대 와서 주요 밀수품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고, 농ㆍ수산물의 밀수도 2000년대 들어 급증했다.

이 가운데 마약, 금괴, 보석은 지난 수십 년간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온 밀수계의 ‘스테디 셀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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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