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만 되면 반복되는 5년 주기 징크스풍년 따른 공급 초과에 품질도 떨어져… 한 관당 작년대비 1/4가격 평균 1,500원제주도 '규격 이하 출하금지'등 대책 부심… 농가들도 '직판행사'등 자구책 직접 마련

‘제주 감귤 값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면 예외 없이 폭락한다.’

‘대통령 선거=감귤 값 폭락’의 공식이 올 시즌도 어김없이 적중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겨울 시즌 마다 5년씩 돌아 가며 감귤 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

특히 올 해는 제주 감귤 수확이 예상보다 많이 늘어 공급 양이 넘쳐 나는데다 품질은 전년보다 못하다는 평가여서 감귤 재배 농가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현지 출하가 기준으로 지난 해 감귤 시세는 한 관(3.75kg) 당 5,000~7,000원 내외. 품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5,000원 시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 해 감귤 한 관 가격은 평균 1,500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품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최저 300원까지 떨어지는 것들도 있고 질이 좋다고 해 봐야 3,000원을 넘기기 힘든 정도라는 것.

올 겨울 시즌 감귤 값 폭락의 징후는 지난 해 말부터 이미 감지됐다.

지난 해 12월 초 대전농산물공판장 경우 귤 값이 지난해에 비해 반으로 떨어져 거래됐다. 노지감귤 1박스(10kg) 최상품이 지난해 소비자 판매가 기준 1만8,000원에서 9,000원으로 무려 50%가 떨어졌고 중품도 지난해 1만2,000원에서 5,000~6,000원으로 하락했다.

올 해 감귤 값이 이처럼 폭락세에 직면한 가장 큰 이유는 한마디로 예년에 비해 늘어난 감귤 ‘풍년’ 때문이다. 즉 감귤 생산량이 워낙 많아 공급이 수요를 훨씬 앞서고 있는 것. 감귤 농사가 잘 돼 수확량이 늘어났다면 농민들이 즐거워야 할 판인데 정작 넘쳐나는 물량 앞에 시장 시세가 힘을 못쓰고 있어서다.

제주도청에서 추정하는 도내 감귤 적정 생산량은 대략 50만 톤으로 추산된다.

전국민이 한 해 소비할 물량이 50만 톤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 하지만 올 해 제주 감귤 출하량은 못해도 60만 톤, 심할 경우 70만 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올 초까지 도내 출하량은 대략 33만여 톤. 제주에서는 현재 최소 20만 톤 이상이 출하를 기다리며 대기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일반 가정에서 소비하는 생식용과 가공용을 모두 감안한 수치. 더욱이 올 해는 제주 감귤 2만 톤을 해외로 수출하는데다 북한에 1만 톤의 감귤 보내기 운동을 펴고 있는 상황인데도 시장 여건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코엑스 로비에 마련한 제주 감귤 산지 효돈동의 감귤 직판장.

또 올 해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대통령 선거라는 ‘악재’가 감귤 농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보통 감귤 판매는 노점상들을 통해서도 많이 이뤄지는데 올 해는 이런 경로가 유독 줄어 들은 것.

대통령 선거에 맞춰 선거운동 등에 많은 인력이 동원되면서 공교롭게도 노점이나 소위 잡상인들을 통한 감귤 판매량도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 들었다는 소식이다. 여기에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시기면 오가는 선물량도 ‘예상 외로’ 줄어든다는데 감귤 또한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그럼 왜 감귤이 유독 올 해 풍년이 들었을까? 제주도는 보통 5월께면 장마가 드는데 지난 해 장마 시즌 저온 현상을 보인데다 자연 낙과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감귤 재배 농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면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감귤들이 생기고 그만큼은 자연히 수급조절이 되는데 지난 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

제주 도내 감귤 농가나 감귤나무 수가 눈에 띌 만큼 늘어난 것도 아니다.

때문에 이번 겨울 제주 도내 감귤 수확량도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농가들도 실감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효돈동 김덕문 주민자치위원장은 “예년의 경우 평당 수확량이 3~4관에 불과했는데 올 해는 4~5관으로 증가해 결국 한 평당 4kg 정도의 귤이 더 생산됐다”고 전한다.

귤 생산이 늘어난 만큼 소비, 즉 수요도 늘어나면 문제가 없겠지만 올 해는 그것도 아니다. 다름 아닌 감귤 품질이 예년만은 못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지난 해 고온다습해야 할 시기에 저온 현상을 겪었고 태풍 나리와 여름철 흐린 날씨가 계속 되면서 일조량이 부족, 감귤 당도가 떨어져 있는 상황인 것.

감귤 가격이 폭락하고 문제가 심화되자 제주도도 다방면으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감귤 직경이 51mm 이하로 너무 작은 감귤이나 71mm 이상으로 너무 큰 감귤들을 아예 시장에 내놓지 못하게 함으로써 가격을 떠받치려는 시도가 대표적. 크기나 당도에서 질이 아무래도 떨어지는 감귤들을 배제함으로써 나머지 일반 제품들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이 조치마저도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개별 농가에서 생산한 물량들을 그냥 내버리기 아깝다며 헐값에라도 시장에 내놓고 있어서다.

감귤 값 폭락이 심해지자 농가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이대로라면 인건비는 둘째 치고 비료값도 건지지 못한다는 것. 특히 서귀포를 위시로 한 제주 남부 지역의 상황은 더 나쁘다.

제주시 등 제주 도내 이북 지방은 감귤 외에도 여러 야채 등 농사 품종이 다변화돼 있지만 남부는 감귤 농사에 거의 의존하고 있는 상황. 때문에 감귤 풍년으로 인한 ‘돈 흉년’은 서귀포 등 이 지역을 강타, 지역 경제도 활기를 잃고 있다.

상황을 보다 못한 감귤 농가들은 자구책 마련에 직접 나서고 있다. 도매시장을 거쳐 마트나 백화점에 물건이 나가는 일반 유통경로를 벗어나 도농간 직판을 시도하고 있는 것. 코엑스의 경우 제주 효돈동 농민들과 자매결연, 1~2월 2달간 1층 로비에 상설 매장을 마련해 직접 판매에 나서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감귤 당도를 나타내는 브릭스 10이상인 우량 제품들만 모아 적절한 값에 판매하고 있는 것.

또 다른 농가들도 서울 강남, 서초구청 등과 자매결연을 맺으며 직판 행사를 벌이고 있지만 행사가 보통 하루 이틀에 그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는 않는 형편이다.

제주 서귀포시 황태희 효돈동장은 “감귤 값이 떨어지면서 소비자들이 값싸게 사먹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품질의 감귤을 적정가에 사주면 농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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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