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실내 난방 등 원인 골머리 앓는 가정 늘어곤충도감에 없어 정체 불명… 내성 강해 퇴치도 힘들어

진드기 퇴치 방망이.
습기 많은 곳 살균제 뿌리고 하루 2차례 이상 환기를
원인 모를 비염·가려움증·천식 앓으면 전문의 찾아야

‘에이리언 보셨지요? 제 집에도 쌀알만한 작은 갈색 알에서 수십마리가 튀어나오더군요. ’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 상담란에 오른 한 민원인의 해충 투쟁담이다.

실내 생활이 길어지는 겨울철, 정체 미상의 변종 해충들이 몰려들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 오염과 함께 계절조차 가리지 않는 사계절형 실내 해충들이 기승을 부린지 오래.

특히 추위를 피하기 위해 외출 시간은 짧아지고 실내 난방 온도가 높아지는 반면, 환기나 청소 상태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기 쉬운 겨울철을 맞아 각종 해충이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전반적인 지구의 이상 기후 변화도 한 몫, 날로 살충효과가 높아지는 초강력 살충제 개발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해충들의 내성 또한 강해지면서 현재 방역기술로 쉬 제압되지 않는 해충들이다.

해충 방역업체의 단골 상담객이었던 A씨는 현재 아예 포기한 상태. 지은 지 5년된 빌라에 입주해 생활하던 중 벽과 천장, 바닥, 싱크대, 목재 가구는 물론 플라스틱 물품에까지 기어오르는 작은 벌레를 발견했다.

이후 시중에 나와있는 온갖 약품과 방법을 다 써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심지어 바닥 시멘트에서부터 벽면 칠과 도배, 장판까지 새로 갈았지만 이 ‘괴벌레’는 사라지지 않았다.

해충방제회사에 직접 처리를 의뢰했지만 그 효과도 잠시뿐, 얼마간 종적을 감춘 뒤 다시 나타났다. 오히려 환기 상태가 가장 좋은 베란다까지 점거한 상태다. 해충과의 싸움으로 A씨는 거의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또다른 피해자 L씨 역시 해충의 끈질긴 출몰에 이젠 두 손을 든 상태다.

재작년까지만해도 시도때도 없이 몰려드는 개미떼에 시달려 각종 살충제를 사용했지만 얼마뒤면 다시 나타나 질겁을 했다. 모기는 기본. 지난해에는 초겨울까지 모기향을 사용하다 한겨울에 접어들고서야 한시름 덜었다.

그래도 이따금 실내 환기가 뜸했다 싶으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모기로 밤잠을 설친다. 이 때문에 마음껏 난방도 하지 못한다.

어느 순간 개미떼가 모습을 감춘 뒤 갑자기 작고 검은 벌레가 대신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부터 늘기 시작해 식탁에 잠시 얹어둔 물잔 등 집안 곳곳에서 벌레가 발견됐다.

청소가 미진했나 싶어 더 구석구석 쓸고 닦아도 아침에 일어나보면 어김없이 자리끼로 둔 물 잔에 빠져 떠다니는 여러마리의 벌레를 본다. 이 검은 벌레를 없애고 싶지만, 그러면 혹시 예전의 개미떼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워 자포자기한 채 지켜보고 있다.

5개월짜리 아기를 둔 주부 K씨의 불안감은 더욱 크다. 한동안 바퀴벌레와 노래기 등으로 고생한 뒤, 지난해 어느날부터 갑자기 그간의 벌레 대신 개미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해충 관련 정보가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자신이 본 개미의 모양과 비교해봤지만, 모양만 흡사할 뿐 방역업체에서 알려준 살충제로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사이 개미에 대한 상식이란 상식은 거의 전문가 수준급으로 늘었지만, 정작 자신의 집에 나타난 개미는 전연 파악도, 박멸도 요원한 상태다.

모 방역업체 관계자는 “곤충도감 등 기존 문헌이나 자료에도 나와있지 않은 해충들이 최근 대폭 늘어나 실제로 현재 퇴치 가능한 해충 종류는 변종 해충수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방역 시공 의뢰를 받고 현장에 가 보면 해충 전문가인 우리조차 이름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벌레들이 발견돼, 박멸은 엄두도 못낸 채 표본부터 채집해 가져온 뒤 따로 케이스에 넣어 관찰해가며 연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전국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불빛을 쫓아 몰려든 변종 파리떼가 깨알같이 거실과 안방을 뒤덮었다.

영하의 한파가 몰아치는 이달 현재에도 제주도 일원 지역은 물론, 서울시 송파구, 종로구, 영등포구 등 거의 대부분의 자치구 보건소 등에서 별도 방역소독반을 편성해 ‘사계절 해충’ 모기 퇴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강남구의 경우 지난 12월부터 관내 저소득 가정을 대상으로 해충퇴치서비스를 대대적으로 실시하기도 했다.

특히 모기문제는 지난 해 가을부터 확연한 이상 변동 현상을 보이면서 일면 예견됐던 결과다.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예전과 달리 이젠 한겨울에도 모기약을 찾는 손님들이 꾸준히 늘고 있어 일년내내 판매대에 비치해 두고 있다’고 말했다.

K대 부설 곤충연구소의 한 박사는 “ 지역적인 위치나 환경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곤충류 전반적으로 유해곤충, 즉 해충을 포함한 곤충들의 종전 생태 주기와 수명, 특성 등이 10년전에 비해 계속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알레르기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사실도 해충 관련 실태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집먼지진드기의 경우 알레르기 질환을 부르는 2대 요인중 한가지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알레르기 내과 장윤석 교수는 “사람의 비듬을 먹고 사는 집먼지진드기는 알레르기 비염이나 기관지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의 가장 대표적인 요인”이라 지적하며 “사람이 좋아하는 환경조건과 비슷한 환경에서 더욱 왕성하게 늘어나기 때문에 특히 실내가 따뜻한 겨울철에는 알레르기 질환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아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 교수에 따르면, 해충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이후 최근 천식환자수가 실제로 10년전에 비해 2배로 증가한 상황. 집안에 해충이 보이면 이에 대한 위생관리면에서의 대응과 함께 알레르기 증세가 보일 경우 즉각 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치료를 받도록 당부하고 있다.

변종 해충들의 출현과 함께 이에 시달리는 수요자들을 겨냥한 각종 해충 퇴치용 제품들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변종 모기의 극성이 극심했던 지난해 10월의 경우 L마트의 총 10일간 살충제 판매액이 전년도인 2006년 같은 시기,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이상 증가했다.

한 대형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이미 3년전부터 사계절 상설기획상품으로 살충제를 연중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충 살충제만을 취급, 판매하는 전문 온라인 쇼핑몰도 늘고 있다.

제품의 종류와 살충력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청소 겸 살균, 살충 효과로 최근 히트상품 대열에 오른 증기를 이용한 가전제품 ‘스팀청소기’를 비롯해, 아로마향을 사용한 제품에서부터 훈증기형 살충제, 각 해충 종류별로 세분화된 분사식 알레르기 중화제, 천연살충제 등이 있다. 또한 미니 연막 소독기 등 종전에는 전문방역업체용으로나 사용되었을 장비들이 가정용 소형 형태로 개발, 출시되는 제품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단, 살충제를 직접 사용할 경우 살충제로 인한 2차 피해에도 주의해야 한다.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 살충제를 살포할 경우, 자칫하면 살충제의 잔존 성분이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역업체를 이용할 경우에는 해당업체의 연혁과 정보력, 고객들의 이용후기 등을 꼼꼼이 살펴본 뒤 신뢰가 가는 곳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현재의 최선책은 철저한 위생관리밖에 없다. 이미 각종 질환 등 직접적인 피해를 겪고 있는 상태이더라도 관련 질환이나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더 악화시키지 않고 최소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해충이 서식하기 쉬운 조건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고 예방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특히 상당수의 해충이 침대나 소파, 침구류, 카펫 등 직물 소재의 생활용품에 쉽게 서식하므로 직물소재 가구는 가능한 한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이롭다.

집먼지진드기를 비롯한 이들 해충은 아토피성 피부염 등 피부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진드기류나 곰팡이가 번식하지 않도록 하루에 최소 한차례 이상, 오후 3시경을 전후해 햇볕에 널어 일광소독을 시키는 것이 좋다. 침대와 소파 커버, 이불, 베갯잇도 마찬가지다.

여건상 일광소독이 어려울 경우, 외출 시간직전에 살충제를 뿌려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겨울철에는 오히려 타 계절보다 세탁을 자주하도록 하고, 반드시 섭씨 55도 이상(집먼지진드기가 죽는 온도)의 온도에서 세탁해야 살충 효과를 볼 수 있다. 해충이 죽었다하더라도 그 가루가 실내 바닥에 먼지처럼 앉으면서 인간의 호흡을 통해 역시 질병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청소시에도 미세먼지까지 초강력으로 순간흡수하는 고성능 진공청소기를 사용해야 도움이 된다.

천연 소재가 많이 사용된 두터운 겨울철 의류도 자주 거풍을 시키고, 옷장과 서랍장에는 필수적으로 방충제와 습기제거제 등을 비치해 두는 것이 안전하다.

습기가 많은 욕실과 주방도 주기적으로 강력 살균제를 사용해 구석구석 깨끗이 닦고 씻어낸다. 샤워를 할 경우 샤워후의 후끈한 습기가 빨리 배출되고 건조될 수 있도록 환풍기 등을 이용해 욕실 습도를 적절하고 빠르게 조절한다.

아무리 춥더라도 하루에 최소한 2차례 이상 가정 내 창문을 모두 열어두도록 한다. 실내 전체에 바깥 공기가 감돌아 나갈 수 있도록 순환시킨다. 환기시간은 한번에 최소 30분 이상 유지한 뒤 문을 닫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실내 온도는 약 18~20도, 습도는 40~60%로 유지하는 것이 생활에 적당하다.

원인 모를 비염이나 가려움증 등이 나타날 때는 즉각 병원을 찾아 전문의의 상담과 함께 증세의 원인을 찾고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한다. 기관지 천식 환자의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약물치료를 받는 방법이 효과적이고, 알레르기 질환의 경우 최근 주사나 혀 밑에 약을 넣는 치료법 등 알레르기 면역력을 높이는 최신요법이 개발돼 높은 치료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여전히 ‘최선’의 대응책에 불과하다. 변종 해충의 출현은 개별 가정이나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여러 주변 환경과도 연결된 위생사안이니만큼 완벽대응, 완전박멸이란 당장의 현실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더 가속화 될 생태계 변화에 대비해 지금이라도 보다 철저한 관련 실태 파악 및 정보 축적, 전문연구기관과 민간방역업체의 전문화 노력이 무엇보다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다.

■ 전형적인 유해곤충 블랙리스트 살펴보면

△ 흰개미

더듬이가 굽어있고, 머리와 허리,몸통 세 부분으로 몸이 구성돼 있다.

흰개미, 불개미, 애집개미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애집개미의 경우 몸이 담황 갈색이고 배는 회갈색을 띤다. 주로 장롱과 가구, 벽틈 사이에 살면서 식품을 오염시키고 사람을 물기도 한다.

△ 작은빨간집모기

생활 해충 중 가장 대표적이고 고질적인 흡혈 해충이다.

주변에 웅덩이나 하천 등이 있을 경우 특히 인근 가정에 끈덕지게 출몰한다. 일몰직후나 일출직전에 주로 교미. 집모기, 학질모기, 늪모기는 야간에, 숲모기는 낮시간에 흡혈한다. 한국산 모기로 작은빨간집모기가 보고되어 있다.

△ 큰다리먼지진드기

최근 알레르기 비염, 피부 가려움증 등 호흡기 및 피부질환의 주범으로 가장 많이 지목되는 해충이다. 주로 침구, 담요, 의류, 카페트 등에 서식하므로 겨울철에는 더욱 개체수가 많을 수 있다.

△ 톱가슴머리대장

주로 곡류 주변에 서식한다. 성충의 몸길이는 약 2.5~3.5mm다. 전체적으로 가늘고 길쭉하다. 등에는 세로로 된 두 개의 깊은 홈과 좌우에 약 6개의 톱날같은 치상돌기가 나 있다.

표면은 암갈색 또는 적갈색을 띤다. 암컷은 한번에 약 150개의 알을 곡물 속에 산란. 곡물이나 종자, 밤, 건과류 등에 침범해 피해를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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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