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본 한국 전통 목조건물 미학과 건축 기법곡선미 산·구릉 많은 지형과 조화 이뤄… 조형미 기둥·지붕 등 각 부분 황금비율자연미 나무·흙·돌 등 천연재료로 건축숭례문·무량수전등 대표적 다포식… 해인사·경회루는 익공식목조

국보 1호 숭례문이 화마로 인해 사라졌다. 600년 역사와 혼의 증발에 국민은 망연해하고 참담함을 주체하지 못한다. 문화재 관리와 보존을 태만히 한 관련기관에 대한 질타도 잇따른다.

그러나 정작 우리 문화재, 그 중 숭례문과 같은 목축건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무지(無知)하니 몽매(蒙昧)하고 그만큼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없는 소치다.

숭례문 화재는 그러한 무지와 무관심을 일깨우는 또 하나의 역사로 국민의 가슴에 각인되어야 한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한국의 전통 목조건축물의 미학과 뛰어난 건축기법을 재조명해봤다.

■ 한중일 삼국 중에서도 뛰어난 조형미

한국 목조건물은 중국이나 일본과 차이가 나는 독특한 건축 양식을 지녔다.

주남철 고려래 명예교수는 “전체적으로 중국 건축이 장대하고 웅장한 멋을 내고 일본의 건축이 기계적이고 날카로운 맛을 낸다면 한국의 건축은 중용의 입장에서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맛을 낸다”고 설명한다.

이는 각 나라의 지리적 환경에 따른 영향이 크다. 중국은 광활한 대륙에 기반을 둔 건축이었고 일본은 섬나라의 환경을 가지며 한국은 중간자적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산과 구릉이 많은 자연환경은 한국 건축에 ‘곡선의 미’를 부여했다. 곡선과 직선이 이루는 선적 아름다움도 삼국 중 우리 목조건축만이 갖는 특징이다.

주남철 명예교수는 “한국 목조건축은 선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기단이 형성하는 수평선과 기둥이 형성하는 수직선, 다시 지붕의 유연한 처마선과 용마루선, 창호의 살 짜임새가 이루는 선이 목재의 나뭇결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통일성을 갖는다”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중국의 기둥은 대부분 목재면을 마포직으로 싸고 그 위에 회반죽을 바름으로써 우리 목조기둥이 갖는 맛을 표현하지 못한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 창호지를 창호 밖으로 바르기 때문에 입면 상으로 면적인 구성을 함으로써 한국 목조건축의 창호 짜임새인 선적인 구성과도 차이를 보인다.

이전제 서울대 환경재료과학과 교수는 “한국 목조건물은 일본의 창문에 비해 창살의 모양과 짜임새가 더 중후하면서 쾌적한 멋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목조건물은 특히 건축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조형미가 뛰어나다.

이전제 교수는 “한국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은 기둥의 간격과 높이, 건물의 규모와 지붕의 크기 등이 한국적 전통에 입각해 정착된 것으로 알맞은 비례에 의해 조화를 이룬다. 각부의 크기 비율이 오랜 경험을 통해 황금률적인 비율에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신응수 대목장은 자연미를 꼽았다. 그는 “편안함과 견고함, 정교함이 주는 아름다움은 몇 백 년이 지나도 원형 그대로 건재하는 것은 무엇보다 균형과 조화를 생각한 옛 장인들의 안목과 세심한 정성 때문이다.

목조건축은 자연과의 조화가 가장 우선시 되며 나무, 돌, 흙 등 모든 재료가 자연으로부터 얻어진다”고 말했다.

■ 땅과 건물바닥을 분리시키는 기단 양식이 특징

부석사 무량수전, 지난 7월 5일 숭례문 앞에서 파수교대식이 진행되고 있다.

목조건물은 기단, 축부, 지붕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한국목조건축은 반드시 기단(基壇, 건물을 건립하기 위하여 지면에 흙이나 돌을 쌓고 다져서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곳)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대해 주남철 명예교수는 “비교적 습한 우리나라에서 건축의 바닥이 대지에서 분리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후 기둥을 도리와 보로 연결해 축부(軸部)를 만들고 지붕을 얹는다.

주 명예교수에 따르면 목조건축을 구분하는 것은 축부 위에 공포 부분이다. 공포를 짜지 않고 축부와 지붕틀이 직접 결구하는 민도리집구조와 공포를 짜서 축부 위에 놓아 지붕틀을 결구하는 포집구조로 크게 나뉜다.

민도리집구조는 다시 단면이 네모난 납도리집과 둥근 모양의 굴도리집으로 나뉜다. 조선시대 양반집의 사랑채와 안채에는 굴도리집구조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창경궁 연경당의 사랑채와 안채는 모두 납도리집 형태다.

공포식 구조는 주심포, 다포, 익공식으로 나뉜다. 주심포식 공포는 기둥 위에만 공포를 배치하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공포 형식이다. 국보로 지정된 23곳의 목조문화재 중 대부분이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다.

전남 강진군의 무위사 극락전, 경북안동시 봉정사 극락전과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조사당과 충남 예산군의 수덕사 대웅전 등이 주심포 양식이다.

다포식은 앞서 설명했듯 기둥 위는 물론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하는 형식이다. 숭례문을 비롯해 전북 김제시 금산사미륵전, 전남구례군 화엄사각황전, 창덕궁인정전과 창경궁명정전이 다포양식이며 보물 1호인 흥인지문(동대문)도 다포양식의 건물이다.

익공식은 주심포와 같이 기둥 위에만 익공을 얹었으나 세부기법은 다포식과 흡사하다. 경남 합천군의 해인사장경판전과 경복궁 가 대표적인 익공식 목조건축이다.

■ 숭례문 건축 구조, 양식

경회루

이번에 화제가 난 숭례문은 4대문 중 가장 외관이 장중하고 내부 구조가 튼튼했다. 도성의 정문 역할을 했던 현존하는 서울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문이기도 하다.

1961년 숭례문 중건공사에 참여했던 신응수 대목장은 “개성의 남대문과 더불어 15세기 다포식 건물의 세부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고건축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좋은 표본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건축 양식은 정면(하층) 5칸(70척 5촌), 측면 2칸(25척 6촌 5분)의 중층(重層)우진각지붕의 다포양식으로 건평 53.79평이다. 현존 성문 건물로서 가장 규모가 크다.

우진각지붕은 지붕 네 모서리의 추녀마루가 처마 끝에서부터 경사지게 오르면서 용마루 또는 지붕의 중앙 정상점에서 합쳐지는 형태를 말하며 숭례문은 이중 팔작지붕(지붕 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룬 것)이다.

신응수 대목장은 “지붕 형태를 두고 이런저런 설들이 많았으나 61년 보수공사 때 팔작지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다포식은 기둥 위는 물론 기둥 사이에도 공포(처마 끝의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는 여밈 부분)를 배치하는 형식이다.

건축 구조는 성벽보다 일단 높게 화강석으로 육교를 만들어 성로(城路)를 잇고 그 아래로 홍예문을 내어 출입하게 하고 장방형 육교 위에 중층루를 세워 완성했다.

건물 주위에는 여장(女墻, 몸을 숨기기 위하여 겅위에 낮게 쌓은 담)을 쌓았고 그 좌우 측면의 한쪽으로는 각기 통용문이 개설되어 있으며 여장내로 떨어지는 물은 석루조(石漏槽)를 통해 모두 배수하게 돼있다.

숭례문은 개성 남대문을 본떠 지은 집이지만 개성 남대문에서 이루지 못한 다포집 성문의 표본을 여기서 완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임진왜란에도 남은 몇 안 되는 건물이다.

신응수 대목장은 “남쪽에 있는 문이라 하여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는데, 이 말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우리 문화를 격하시키고자 단순히 방향만을 지칭하는 뜻의 ‘남대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라며 정식 명칭인 ‘숭례문’을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한국에 고층 목조건물이 없는 까닭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에 고층 목조건물이 없는 이유는 선조들의 건축기술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과 땅 등 자연의 기운과 흐름에 입각한 음양오행설을 중시한 결과다.

이전제 서울대 교수는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산은 양(양)이고 평지나 낮은 지대는 음(음)”이라며 “양이 강한 지세에 고층건물 즉 양의 건물을 건립하면 두 양이 서로 상극을 일으켜 지력이 쇠약해진다는 설에 따라 고층의 목조건물을 건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우리 국토는 산이 많고 평지가 적으므로 양과 양이 부딪히는 고층건물을 피한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음양오행설은 목조건물 뿐만 아니라 건축입지 선정이나 건물 자체의 규모에도 반영됐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